오몽녀Stills
영화 <오몽녀>(나운규, 1937)의 한 장면. 나운규가 일본 개봉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집필한 후 원작자 이태준의 허가를 얻어 영화화에 착수했다.
1930년대 · 오몽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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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항로Stills
한양영화사가 제작한 안종화 감독의 영화 <인생항로>(1937)의 한 장면.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 <춘향전> 이후 발성영화로의 전환이 한창 논의되기 시작한 때였으나,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청춘의 십자로>에서 주연을 맡았던 이원용이 '용선' 역으로 출연했다.
1930년대 · 인생항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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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Stills
천일영화사 제작 <국경>(최인규, 1939)의 한 장면. 최인규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제작된 <국경>은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의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빈농 김용태로 출연한 태을민(후경), 그리고 김용태가 어려서부터 기른 고아 세림 역의 최운봉(전경 중앙).
1930년대 · 국경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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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Stills
천일영화사 제작 <국경>(최인규, 1939)의 한 장면. 최인규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제작된 <국경>은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의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빈농 김용태로 출연한 태을민(좌), 그리고 김용태가 어려서부터 기른 고아 세림 역의 최운봉(우).
1930년대 · 국경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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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빠진 황소Stills
한양영화사의 <귀착지>(이영춘, 1939)의 한 장면. <귀착지>는 1938년에 김갑기가 한양영화사를 인수한 후 제작한 첫 영화로 1939년에 개봉되었으나, 제작 지분 문제로 갈등을 빚어 필름이 차압되었다가 1941년에 재개봉되었다. 원작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연출한 이영춘은 일본에서 다년간 영화 연출 수업을 받고 돌아왔다고 하는데(《동아일보》, 1938.07.30), 이후의 행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30년대 · 귀착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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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Stills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창립작품 <무정>(박기채, 1939)의 한 장면. 양산을 쓴 여성은 선형 역의 김신재.
1930년대 · 무정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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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Stills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창립작품 <무정>(박기채, 1939)의 한 장면.
1930년대 · 무정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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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너 마을Stills
영화 <성황당>(방한준, 1939)의 한 장면. <한강>(방한준, 1938)을 제작한 반도영화사는 제2회 작품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정비석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한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 속에서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며 우직하게 살아가는 현보(최운봉 분)에게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집앞에 있는 성황당에서 비는 순박한 아내 순이(현순영 분)가 있다. 순이를 탐내던 산림간수 김주사의 계략으로 현보가 주재소에 붙들려가고, 김주사는 자기 말만 들으면 남편을 나오게 해주겠다고 순이를 위협한다. 마침 광산판으로 다니며 돈을 많이 벌었다는 칠성(전택이 분)이 나타나, 순이를 두고 두 남자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칠성은 순이가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비단옷을 가져와 순위를 유혹하고, 순이는 칠성을 따라 길을 떠난다. 그러다 문득 정든 산골과 남편 현보가 그리워진 순이는 칠성을 속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무사히 주재소에서 나온 현보도 집으로 돌아온다.
1930년대 · 성황당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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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Stills
영화 <성황당>(방한준, 1939)의 한 장면. <한강>(방한준, 1938)을 제작한 반도영화사는 제2회 작품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정비석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한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 속에서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며 우직하게 살아가는 현보(최운봉 분)에게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집앞에 있는 성황당에서 비는 순박한 아내 순이(현순영 분)가 있다. 순이를 탐내던 산림간수 김주사의 계략으로 현보가 주재소에 붙들려가고, 김주사는 자기 말만 들으면 남편을 나오게 해주겠다고 순이를 위협한다. 마침 광산판으로 다니며 돈을 많이 벌었다는 칠성(전택이 분)이 나타나, 순이를 두고 두 남자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칠성은 순이가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비단옷을 가져와 순위를 유혹하고, 순이는 칠성을 따라 길을 떠난다. 그러다 문득 정든 산골과 남편 현보가 그리워진 순이는 칠성을 속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무사히 주재소에서 나온 현보도 집으로 돌아온다.
1930년대 · 성황당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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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Stills
영화 <성황당>(방한준, 1939)의 한 장면. 순사에게 잡혀가는 남편 현보(최운봉 분)와 그 뒤에 남은 아내(현순영 분). <성황당>은 1939년 9월 25일에 경성의 약초극장에서 개봉되었다.
1930년대 · 성황당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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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송(환무곡)Stills
영화 <애련송>(김유영, 1939)의 한 장면. 동아일보 ‘영화소설현상공모’에서 선정된 최금동의 『환무곡(幻舞曲)』이 『애련송(愛戀頌)』으로 제목을 바꿔 1937년 10월 5일부터 12월 14일까지 50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동아일보사의 후원 하에 극예술연구회 영화부가 제작을 맡았다. 김유영 감독이 연출했다.
1930년대 · 애련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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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송(환무곡)Stills
영화 <애련송>(김유영, 1939)의 한 장면. 동아일보 ‘영화소설현상공모’에서 선정된 최금동의 『환무곡(幻舞曲)』이 『애련송(愛戀頌)』으로 제목을 바꿔 1937년 10월 5일부터 12월 14일까지 50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동아일보사의 후원 하에 극예술연구회 영화부가 제작을 맡았다. 김유영 감독이 연출했다.
1930년대 · 애련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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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송(환무곡)Stills
영화 <애련송>(김유영, 1939)의 한 장면. Y여자전문학교 음악과 학생으로 음악가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교육사업이 위기에 처하자 청년부호의 후처가 되기로 결심했던 안남숙(문예봉 분)은 결혼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수녀원에 들어간다.
1930년대 · 애련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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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Stills
영화 <수선화>(김유영, 1940)의 스틸 사진. 조선영화주식회사가 <무정>(박기채, 1939), <새출발>(이규환, 1939)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작품으로, 김유영 감독의 유작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의 노력을 다했던 김유영이 1940년 1월 4일 사망한 후 완성이 미뤄지던 <수선화>가 같은 해 5월에 완성되자,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이재명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배급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개봉되지는 못했고, 조선에서는 1940년 8월에 성보극장에서 공개되었다. 조혼한 남편을 일찍 여의고 수절하던 여성이 재산을 탐낸 사람들이 퍼뜨린 소문으로 누명을 쓰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자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내용인데, 문예봉이 꼬마신랑에게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 유 씨를 연기했다. 호수에 몸을 던지려는 유 씨(문예봉 분)와 그 모습을 목격하고 안타까워하는 백 선생(김일해 분).
1940년대 · 수선화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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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Stills
영화 <수선화>(김유영, 1940)의 스틸 사진. 조선영화주식회사가 <무정>(박기채, 1939), <새출발>(이규환, 1939)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작품으로, 김유영 감독의 유작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의 노력을 다했던 김유영이 1940년 1월 4일 사망한 후 완성이 미뤄지던 <수선화>가 같은 해 5월에 완성되자,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이재명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배급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개봉되지는 못했고, 조선에서는 1940년 8월에 성보극장에서 공개되었다. 과부 유 씨의 양자 재길(정찬조 분)과 백 선생(김일해 분). 유 씨(문예봉 분)와 석매(김신재 분)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1940년대 · 수선화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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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료Stills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의 한 장면. <수업료>는 경일소학생신문(京日小學生新聞)의 현상모집에서 총독상을 수상한 광주 북정 심상소학교 4학년 우수영의 수기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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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병Stills
일제강점기 말에 제작된 선전영화 <지원병>(안석영, 1940)의 한 장면. 문예봉은 조선인은 군인이 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농촌 청년 춘호(최운봉 분)의 연인 분옥을 연기했다.
1940년대 · 지원병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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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만리Stills
영화 <복지만리>(전창근, 1941)의 한 장면. 조선을 넘어 일본과 만주까지 시장을 확장하고자 했던 고려영화협회의 대작 프로젝트였던 <복지만리>는 만주영화협회와 합작한 ‘선만(鮮滿)영화의 첫 악수’로 홍보되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또 만주로 떠도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해 만주 이주 정책 등 시국에 부합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집필에서 개봉까지 무려 2년 5개월이 걸렸고, 총 제작비 10만원이 투여되었으며, 조선, 일본, 만주를 배경으로 한 로케이션 촬영과 최초의 크레인 촬영을 시도했다. 심영, 진훈(강홍식), 주인규가 조선, 일본, 만주로 유랑하는 조선인 노동자들로 출연했다.
1940년대 · 복지만리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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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만리Stills
영화 <복지만리>(전창근, 1941)의 한 장면. 조선을 넘어 일본과 만주까지 시장을 확장하고자 했던 고려영화협회의 대작 프로젝트였던 <복지만리>는 만주영화협회와 합작한 ‘선만(鮮滿)영화의 첫 악수’로 홍보되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또 만주로 떠도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해 만주 이주 정책 등 시국에 부합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집필에서 개봉까지 무려 2년 5개월이 걸렸고, 총 제작비 10만원이 투여되었으며, 조선, 일본, 만주를 배경으로 한 로케이션 촬영과 최초의 크레인 촬영을 시도했다. 심영, 진훈(강홍식), 주인규가 조선, 일본, 만주로 유랑하는 조선인 노동자들로 출연했다.
1940년대 · 복지만리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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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만리Stills
영화 <복지만리>(전창근, 1941) 촬영 현장. 조선을 넘어 일본과 만주까지 시장을 확장하고자 했던 고려영화협회의 대작 프로젝트였던 <복지만리>는 만주영화협회와 합작한 ‘선만(鮮滿)영화의 첫 악수’로 홍보되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또 만주로 떠도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해 만주 이주 정책 등 시국에 부합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집필에서 개봉까지 무려 2년 5개월이 걸렸고, 총 제작비 10만원이 투여되었으며, 조선, 일본, 만주를 배경으로 한 로케이션 촬영과 최초의 크레인 촬영을 시도했다. 심영, 진훈(강홍식), 주인규가 조선, 일본, 만주로 유랑하는 조선인 노동자들로 출연했다.
1940년대 · 복지만리 ·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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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없는 천사Stills
1940년대 · 집없는 천사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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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원제: 돌쇠)Stills
이규환 감독의 영화 <창공>(1941)의 한 장면. 협동예술영화사가 제작하고 경성영화과학공장이 제공했다. 1939년 11월 말에 ‘돌쇠’라는 제목으로 크랭크인했으나, 개봉 시에는 '창공'으로 제목이 변경되었다(경성 개봉, 1941년 8월 21일).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해온 이화삼이 협동예술좌 소속으로 있으면서 <창공>의 제작을 맡는 동시에 주인공 '돌쇠'로 분했다. 독은기, 전택이, 문예봉 등이 출연했다. 촬영은 <춘풍>(박기채, 1935), <군용열차>(서광제, 1938), <한강>(방한준, 1938) 등의 양세웅이 맡았다.
1940년대 · 창공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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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열매를 맺는다Stills
인삼재배를 권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영화 <흙에 열매를 맺는다>(안석영, 1942)의 한 장면.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조선영화사에 의뢰해 제작되었다. 안석영 감독이 연출했다.
1940년대 · 흙에 열매를 맺는다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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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러라 창공(원제:仰げ大空)Stills
김영화 감독의 영화 <우르러라 창공>(1943)의 한 장면. 조선군보도부와 체신국 항공과가 후원한 선전영화이다. 소년 항공병을 꿈꾸는 정길은 비행기 헌납금을 내기 위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근로 봉사에 나가며 고군분투하지만, 노동이 힘에 부쳐 병이 난다. 정길의 진심은 동생 영길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길은 형을 위해 애견을 개장수(이화삼 분)에게 넘긴다. 돈을 든 개장수에게 애견을 넘겨야 하는 소년의 표정이 굳어있다. <우르러라 창공>은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의 시나리오를 쓴 니시키 모토사다가 각본을, 김영화 감독이 연출한 조선의 첫 항공영화이다.
1940년대 · 우르러라 창공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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