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rce: Korean Film Archive (KOFA) collection register, via data.go.kr
Collection names and descriptions are shown in the archive's original Korean; no English version is 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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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014) / 이 영상은 1964년 6월 30일의 184차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콤스(Cecil B. Combs)소장과 UNC 장교들이 북한군과 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북한장교가 사진, 총알, 수류탄을 유엔군측에 보여주고, 유엔군측이 북한에 서한을 전달하고 답을 하는 순서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군사정전위원회는 유엔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공동으로 임명하는 각각 5명씩의 고급장교로 구성된다. 1964년까지 유엔사측 군정위 구성은 위원 5명 중 수석대표를 포함해서 3명이 미군 장성, 1명이 한국 장성,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영국 준장이었고, 그후에는 미국 수석대표 1명, 한국대표 2명, 영국대표 1명, 그리고 유엔참전국 대표 1명으로 재편되었다.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측 수석대표는 1953년부터 1991년까지 총 56명에 달한다. 1960년대에는 15대 수석대표 매덕스 공군소장(1959. 11. 1. ~ 1960. 4. 30.)으로 부터 35대 수석대표 아담스 해병소장(1969. 7. 28. ~ 1970. 2. 6.)에 이르기까지 총 21명이 수석대표를 역임하였다. 같은 시기 한국군 대표는 6대 최석 육군소장(1959. 8. 7. ~ 1960. 7. 6.)으로부터 19대 최철 육군소장(1969. 1. 1. ~ 1970. 4. 26.)까지 총 14명의 대표가 바뀌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군사정전위원회 공산측 수석대표는 제1대 리상조 중장(1953. 7. 27. ~ 1955. 7. 16.)으로부터 1994년 최의웅 소장(1988. 8. 24. ~ 1994. 4. 28.)에 이르기까지 총 12명이 역임하였다. 1960년대 북한측 수석대표는 4대 주창준 소장(1959. 3. 21. ~ 1964. 9. 20.)으로부터 7대 리춘선 소장(1969. 2. 19. ~ 1970. 7. 29.)까지 단 4명이다. 이 영상에서 유엔측 수석대표는 콤스(Cecil B. Combs)소장이며, 북한측 수석대표는 주창준 소장이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MK064384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195) / 이 영상은 1964년 5월 28일, 6월 12일에 각각 콤스(Cecil B. Combs) 소장과 UNC 대표단이 북측 대표단과 군사정전위원회를 열어 회의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MK064385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196) / 1964년 8월 27일 개최된 제276회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 회의(Commission Meeting)의 유엔사 및 북한군 대표단의 회의 장면, 1964년 6월 27일 베트남 떤선녓(Tan Son Nhut) 공군기지에서 CH-21 헬기를 UH-1 헬기로 대체하기 위한 이별식 행사와 거기에 참여한 베트남 미군지원사령부의 사령관 델크 M. 오든 준장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이다. 군사정전위원회는 소장급을 대표로 하는 본회의, 비서장(대령급)을 대표로 하는 비서장 회의, 쌍방 2~3인씩의 영관급 장교로 구성된 대표단이 진행하는 공동감시소조 회의, 매일 한차례 씩 개최되는 공동일직장교 회의, 매주 수요일 개최해서 통·번역 문제를 다루는 언어장교 회의 등 여러 층위의 회의로 구성되었다. 이 영상이 보여주고 있는 회의는 양측의 비서장들이 진행하는 비서장 회의이고, 유엔군사령부 대표는 폴 힌클리 대령(Col Paul P Hinkley, US)과 존 도슨 미해군대령(Admiral John L Dawson, US)이며, 북한측 대표는 김영수이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 베트남 미 공군기지
MK064386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379) / 이 영상은 앞부분에 1964년 8월 19일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 참여한 유엔사 및 북한군 대표단의 회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고 있으며, 뒷부분은 미국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Fort Riley) 기지에서 1964년 7월 17일에 실시한 ROTC(제5군)의 여름캠프 장면, 특히 화생방 훈련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장면에서는 간첩 행위로 사살 혹은 체포된 북한군 사진을 유엔측이 북한측에 제시하자 이를 거부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통상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는 기조연설을 통해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을 하면 상대편에서 그에 대응하는 발언을 하고 폐회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인 토의보다는 일방적 선적목적으로 소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 캔자스 포트 라일리 미군기지
MK064387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798) / 이 영상에는 1964년 7월 28일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유엔사 대표단에 사진 증거를 제시하고 이에 항의하는 북한대표단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60년대 군사정전위원회는 1960년 2월 11일 제114차부터 1969년 11월 14일 제297차 본회의까지 총 183회 개최되었다. 이 중 공산측 제안에 의한 것이 134회였고, 유엔사측 제안에 의한 것이 49회였다. 이러한 통계는 공산측이 군사정전위원회를 이용한 선전전에 보다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통상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는 기조연설을 통해 어떤 주장을 하면 상대편에서 그에 대응하는 발언을 하고 폐회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인 토의보다는 일방적 선전목적으로 소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영상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회의가가 진행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상에서 다루는 1964년 7월 28일의 군사정전위원회는 북한이 소집을 요구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루는 의제는 아마도 유엔사 혹은 남한이 보낸 ‘간첩행위’에 대한 항의였을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내내 공산측은 항공기와 무장 인원 침투, 선박의 정찰행위를 위한 침범, 간첩 북파, 한국 어선을 통한 간첩 침투 등을 이유로 유엔사측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영상도 공산측이 체포한 이들 ‘간첩’들의 사진을 제시하며 유엔사측에 항의하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MK064389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778) / 이 영상은 세가지 다른 주제를 촬영한 푸티지를 묶은 것이다. 첫 번째 부분은 1965년 5월 3일의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두 번째는 미시시피강이 범람한 1965년 5월 4일의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상황을 항공촬영한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1965년 4월 15일에 미국 알래스카 포트 리차드슨 육군기지에서 군용 방한복, 배낭 등의 성능시험의 일환으로 캐나다의 서전트 빙원(Sergeant Ice Field)을 처음으로 횡단하려고 준비 중인 모습, 그리고 새 군용 마스크 및 비니 등의 착용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기록됐다. 1965년 5월 3일 군사정전위원회는 동해 상에서 북한 MIG 17기가 미 RB-47기를 공격한 것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1960년대 군사정전위원회는 1960년 2월 11일 제114차부터 1969년 11월 14일 제297차 본회의까지 총 183회 개최되었다. 이 중 공산측 제안에 의한 것이 134회였고, 유엔사측 제안에 의한 것이 49회였다. 이러한 통계는 공산측이 군사정전위원회를 이용한 선전전에 보다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통상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는 기조연설을 통해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을 하면 상대편에서 그에 대응하는 발언을 하고 폐회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인 토의보다는 일방적 선적목적으로 소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영상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회의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에서 다루는 1965년 5월 3일 군사정전위원회는 1960년대 유엔사측이 제안한 소수의 회의 중 하나였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MK064388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830) / 이 미군 기록영상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세 번째 영상은 1965년 5월 14일과 17일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 합동참모 회의(Joint Miltary Armistice Commission Meeting)를 기록한 것이다. 통상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는 기조연설을 통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면 상대편에서 그에 대응하는 발언을 하고 폐회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인 토의보다는 일방적 선적목적으로 소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영상에서는 유엔사측에서 먼저 강하게 발언하고, 그에 대응하는 북한측 대표의 반응이 나온 것으로 보아 유엔사측에서 먼저 제안해서 열린 것으로 보인다. 또, 지도를 통해 미군이 어떤 지역을 가리키고 이어 해당 위치를 항공촬영한 장면이 나온다. National Archives의 설명에 따르면 DMZ 표지판을 서로 상대방이 소각했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두 영상 사이에 삽입된 두 번째 영상은 미국 캔자스의 미군 기지 포트 라일리(Fort Riley)에서 ‘기병대 최후의 말’로 불렸던 말 ‘Chief’를 1959년 10월 27, 28일에 촬영한 것이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 캔자스 포트 라일리 미군기지
MK064390_P01
[이 영상은 19세 이상만 열람 가능합니다. 연령 확인을 위해 로그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892) / 이 영상은 1965년 5월 21~22일간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에 의한 L-19 남한 항공기 격추 사건의 진위 파악 및 후속 절차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영상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는 양상과 회의의 결과 격추된 조종사의 유해가 송환되는 것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자료이다. 회의를 통해 쌍방의 주장을 교환하거나 피격기의 잔해를 실사하는 장면, 협의 결과 조종사의 유해가 송환되고 이를 촬영한 모습이 포함됐다. 군사정전위원회는 기본적으로 공개를 원칙으로 했지만, 불시착 조종사의 송환 문제,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문제, 귀순 조종사 문제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부 사건의 경우에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 영상의 회의가 공개되었다는 것으로부터, 사망한 조종사 유해의 송환 문제가 이들보다 오히려 덜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 L-19기 피격 사건
MK064391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48921) / 이 영상은 1965년 6월 4일과 11일에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6월 11일 회의 장면이 먼저 나오고 뒷부분에 6월 4일 영상이 나온다. 1965년 5월 14일과 17일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 합동참모 회의를 기록한 영상(111-LC-48830)과 비교하면 이때와 동일한 안건인 DMZ 표지판 소각 주체 규명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회의에서는 미군이 지도를 통해 어떤 지역을 가리키며 설명했고, 이날의 회의에서는 북한군이 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유엔군측이 특정 지역에서의 북한측의 정전협정 위반 사건을 지적했고 이에 대해 북한측이 반박하는 흐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MK064392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428-NPC-41096) / 이 푸티지영상은 미해군 태평양함대사령부 전투카메라단(Pacific Fleet Camera Group)이 1968년 10월 21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제280차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장면과 회의가 열린 판문점 주변의 여러 풍경과 사람들을 촬영한 것이다. 이 회의는 1968. 2. 2. ~ 12. 22.까지 열린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문제를 다룬 28차례의 비공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중 하나이다. 회의 장면과 함께 판문점의 물리적 구조 및 외부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비공개 회의이므로 공개 회의 장면을 기록한 다른 영상과 비교할 때 창문을 통해 회의장 안을 보고 있는 민간기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며, 회의장 내부 장면보다는 바깥의 여러 풍경을 풍부하게 기록하므로 판문점의 변화 과정 및 특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편, 1965년경까지 판문점에 위치한 공동경비구역은 비록 제한이 있었지만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때마다 남·북한군이 비교적 자유롭게 구역 내를 오갈 수 있었다. 1965년까지 진행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촬영 영상을 살펴 보면 양측의 군인, 기자, 관광객들이 섞여 판문점 부근을 비교적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상에서는 이미 북한 구역과 남한·미군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서로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 등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처럼 남북 사이의 경계가 명확해진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판문점/DMZ ·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MK064398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56454) / 1971년 2월 16~17일 한국 카투사와 미군의 DMZ 순찰 활동을 담은 푸티지 영상이다. 1967년 비무장지대 전체에 철책과 초소가 만들어진 이후의 DMZ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비무장지대 내의 표지판은 대부분 두 가닥 철조망 울타리에 부착되어 있었다. 또한 거대한 흰 십자가와 벤치, 그 옆의 폴 마틴 병장을 기리는 추모 동판이나 DMZ에 출입하기 위한 인력 및 차량 조건을 표시한 표지판, 북한 간첩 정보 신고 안내판 등 이 영상에 보이는 DMZ 지역의 여러 기물들은 1960년대 초반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판문점/DMZ · DMZ 순찰 · 마틴(Martin) 벙커
MK064393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56455) / 1971년 2월 17일 한국 카투사와 미군의 DMZ 순찰 활동, 관물대를 막사로 나르는 장면 등을 기록한 푸티지이다. 순찰 장면에서는 1967년 비무장지대 전체에 철책과 초소가 만들어진 이후의 DMZ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비무장지대 내의 표지판은 대부분 두 가닥 철조망 울타리에 부착되어 있었다. 다만 이 영상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일부 철조망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철책 대체 작업이 완전히 진행된 것은 1972년 무렵이다.
판문점/DMZ · DMZ 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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