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영화협회Stillscopies: 2
고려영화협회 관련 사진이다. 시모카와 마사하루의 책(下川正晴, 『日本統治下の朝鮮シネマ群像』, 弦書房, 2019, 282쪽)에 비슷한 사진이 실려 있는데, 책에 실린 사진에는 김신재, 왕평이 빠져 있는 대신 김학성 등이 같이 찍혀 있다. 해당 책에 인용된 사진은 "고려영화경성촬영소 신축용지"라는 현판을 가운데 두고 찍은 것으로, 이 사진 역시 고려영화협회 경성촬영소 신축용지에서 찍은 기념 사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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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935984_03
고려영화협회-이와사키 아키라 경성 방문 환영회Stillscopies: 2
일본의 영화평론가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 1903~1981)가 1938년 10월, 경성을 방문했을 때 고려영화협회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사진의 중앙, 한 팔에 외투를 걸고 모자를 들고 있는 남성이 이와사키 아키라이다. 그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남성이 고려영화협회의 대표 이창용이다. 그밖에 배우 심영(1열, 반무릎)과 전창근(2열 좌4), 강홍식(3열 우2)을 비롯해 촬영기사 이명우(2열 우2) 등의 모습도 확인된다. 이와사키 아키라는 1938년 가을, 만주영화계를 시찰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길에 조선을 방문했다. 그는 조선에서 고려영화협회 외에도 조선영화주식회사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제작자 이재명 컬렉션"에는 조선영화주식회사 관계자들과 이와사키 아키라의 환영회 기념사진이 일부 소장돼 있다(연관자료 관리번호 DST711756_01, DST711757_01, DST711758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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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란 조선방문Stillscopies: 2
만주영화협회(이하 '만영')의 스타 이향란(李香蘭, 본명: 야마구치 요시코 山口淑子, 1920~2014)이 경성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향란은 조선에 세 번 방문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첫 번째 방문은 1940년 7월로, 도쿄 가부키자 공연을 위해 일본으로 가던 중에 경성을 경유했다. 그녀가 묵었던 반도호텔로 영화인들과 기자들이 운집했고, 조선영화를 대표하는 여배우 문예봉과 김신재가 이향란과 짧은 좌담회를 가졌다. 이향란과 문예봉, 김신재의 좌담회는 『삼천리』 1940년 9월호에 실렸다. 이향란의 두 번째 조선 방문은 1941년 3월 초순으로, 만영영화 <철혈지심 血慧心>(1939, 일본 개봉 제명: 아름다운 희생 美しき牲)의 프로모션을 위해 고려영화협회가 초청하여 방문한 일이다. 이향란은 이때 부산, 대구, 경성, 원산, 함흥, 평양, 진남포 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어트랙션 공연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문은 <병정님>(방한준, 1944) 촬영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 김려실의 책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한국영상자료원, 2011)에 수록돼 있는데, 김려실은 이 사진을 "<아름다운 희생> 어트랙션을 위해 1941년 3월 초순 경성에 왔을 때 찍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사진에 문예봉과 김신재가 함께 있는 것을 볼 때, 사진은 이향란의 첫 번째 경성 방문 때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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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란 조선방문Stillscopies: 2
만주영화협회(이하 '만영')의 스타 이향란(李香蘭, 본명: 야마구치 요시코 山口淑子, 1920~2014)이 경성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향란은 조선에 세 번 방문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첫 번째 방문은 1940년 7월로, 이향란은 도쿄 가부키자 공연을 위해 일본으로 가던 중에 경성을 경유했다. 그녀가 묵었던 반도호텔로 영화인들과 기자들이 운집했고, 조선영화를 대표하는 여배우 문예봉과 김신재가 이향란과 짧은 좌담회를 가졌다. 이향란과 문예봉, 김신재의 좌담회는 『삼천리』 1940년 9월호에 실렸다. 이향란의 두 번째 조선 방문은 1941년 3월 초순으로, 만영영화 <철혈지심 血慧心>(1939, 일본 개봉 제명: 아름다운 희생 美しき牲)의 프로모션을 위해 고려영화협회가 초청하여 방문한 일이다. 이향란은 이때 부산, 대구, 경성, 원산, 함흥, 평양, 진남포 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어트랙션 공연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문은 <병정님>(방한준, 1944) 촬영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찍은 또 다른 사진("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 인물 편" 소장, 관리번호 DST936344_03)이 김려실의 책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한국영상자료원, 2011)에 수록돼 있는데, 김려실은 해당 사진을 "<아름다운 희생> 어트랙션을 위해 1941년 4월 초순 경성에 왔을 때 찍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사진에 문예봉과 김신재가 함께 있는 것을 볼 때, 사진은 이향란의 첫 번째 경성 방문 때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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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Stillscopies: 2
김령은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출범과 함께 발탁한 신인 배우였다. 1942년 개성의 인삼을 소개하는 문화영화 <흙에 열매를 맺는다>(안석영)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김령은 <젊은 모습>(도요다 시로, 1943)과 니시키 모토사다 각본의 <병정님>(방한준, 1944)에 출연한 바 있는데, 사진은 <젊은 모습>(도요다 시로, 1943) 촬영 당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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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935908_03
김령Stillscopies: 2
김령은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출범과 함께 발탁한 신인 배우였다. 1942년 개성의 인삼을 소개하는 문화영화 <흙에 열매를 맺는다>(안석영)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김령은 <젊은 모습>(도요다 시로, 1943)과 니시키 모토사다 각본의 <병정님>(방한준, 1944)에 출연한 바 있는데, 사진은 김령이 <병정님>을 촬영하던 당시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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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Stillscopies: 2
김소영(1913~)은 일본 영화계에서 문예봉, 김신재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즈미 쓰네오(見恒夫)는 김소영이 출연한 <심청>(안석영, 1937)을 "도쿄서 시사를 보았으나 영화 기술의 유치한 것은 말할 것 없지만 일종 소박한 시정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현대화해 버리려고 한 것이 좀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 여우 효녀-金素英[김소영]의 아름다움과 솔직한 맛은 [<나그네>(이규환, 1937)의] 文藝峯[문예봉]이 보다 좋았다"고 한다(하즈미 쓰네오, 「문예봉과 영화: 조선영화 잡감」, 『삼천리』 제10권 제5호, 1938.05.01., [ ]의 내용은 편집자 주). 재조선 일본인 작가 유아사 가쓰에(湯克衛)의 소설 「파란 저고리 い上衣」(1940, 昭和書房)에는 경성의 중학교 동창들이 영화 <국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김소영은 아름다웠"고, "뭐든지 이해해줄 듯한 친밀한" 연기를 했으며, 한은진은 "기품이 있었고" 김소영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훌륭한 여배우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언제나 <나그네>만 말하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한강>도 좋지만 그런" 작품들은 그대로 두고 조금 더 "새로운" 바람이 불 필요가 있다고 한다(유아사 가쓰에, 「파란 저고리」, 1940, 250쪽). 경성에서 학교를 다녔던 유아사 가쓰에의 자전적 경험이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한편 이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에도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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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Stillscopies: 2
김소영(1913~)은 일본 영화계에서 문예봉, 김신재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즈미 쓰네오(見恒夫)는 김소영이 출연한 <심청>(안석영, 1937)을 "도쿄서 시사를 보았으나 영화 기술의 유치한 것은 말할 것 없지만 일종 소박한 시정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현대화해 버리려고 한 것이 좀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 여우 효녀-金素英[김소영]의 아름다움과 솔직한 맛은 [<나그네>(이규환, 1937)의] 文藝峯[문예봉]이 보다 좋았다"고 한다(하즈미 쓰네오, 「문예봉과 영화: 조선영화 잡감」, 『삼천리』 제10권 제5호, 1938.05.01., [ ]의 내용은 편집자 주). 재조선 일본인 작가 유아사 가쓰에(湯克衛)의 소설 「파란 저고리 い上衣」(1940, 昭和書房)에는 경성의 중학교 동창들이 영화 <국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김소영은 아름다웠"고, "뭐든지 이해해줄 듯한 친밀한" 연기를 했으며, 한은진은 "기품이 있었고" 김소영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훌륭한 여배우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언제나 <나그네>만 말하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한강>도 좋지만 그런" 작품들은 그대로 두고 조금 더 "새로운" 바람이 불 필요가 있다고 한다(유아사 가쓰에, 「파란 저고리」, 1940, 250쪽). 경성에서 학교를 다녔던 유아사 가쓰에의 자전적 경험이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한편 이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에도 소장돼 있다.
배우 · 초상 · 모리노부 오사무(경성) 촬영 · 온라인 열람
DST936192_03
김소영Stillscopies: 2
김소영(1913~)은 일본 영화계에서 문예봉, 김신재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즈미 쓰네오(見恒夫)는 김소영이 출연한 <심청>(안석영, 1937)을 "도쿄서 시사를 보았으나 영화 기술의 유치한 것은 말할 것 없지만 일종 소박한 시정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현대화해 버리려고 한 것이 좀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 여우 효녀-金素英[김소영]의 아름다움과 솔직한 맛은 [<나그네>(이규환, 1937)의] 文藝峯[문예봉]이 보다 좋았다"고 한다(하즈미 쓰네오, 「문예봉과 영화: 조선영화 잡감」, 『삼천리』 제10권 제5호, 1938.05.01., [ ]의 내용은 편집자 주). 재조선 일본인 작가 유아사 가쓰에(湯克衛)의 소설 「파란 저고리 い上衣」(1940, 昭和書房)에는 경성의 중학교 동창들이 영화 <국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김소영은 아름다웠"고, "뭐든지 이해해줄 듯한 친밀한" 연기를 했으며, 한은진은 "기품이 있었고" 김소영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훌륭한 여배우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언제나 <나그네>만 말하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한강>도 좋지만 그런" 작품들은 그대로 두고 조금 더 "새로운" 바람이 불 필요가 있다고 한다(유아사 가쓰에, 「파란 저고리」, 1940, 250쪽). 경성에서 학교를 다녔던 유아사 가쓰에의 자전적 경험이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배우 · 초상 · 모리노부 오사무(경성)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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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Stillscopies: 2
김소영(1913~)은 일본 영화계에서 문예봉, 김신재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즈미 쓰네오(見恒夫)는 김소영이 출연한 <심청>(안석영, 1937)을 "도쿄서 시사를 보았으나 영화 기술의 유치한 것은 말할 것 없지만 일종 소박한 시정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현대화해 버리려고 한 것이 좀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 여우 효녀-金素英[김소영]의 아름다움과 솔직한 맛은 [<나그네>(이규환, 1937)의] 文藝峯[문예봉]이 보다 좋았다"고 한다(하즈미 쓰네오, 「문예봉과 영화: 조선영화 잡감」, 『삼천리』 제10권 제5호, 1938.05.01., [ ]의 내용은 편집자 주). 재조선 일본인 작가 유아사 가쓰에(湯克衛)의 소설 「파란 저고리 い上衣」(1940, 昭和書房)에는 경성의 중학교 동창들이 영화 <국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김소영은 아름다웠"고, "뭐든지 이해해줄 듯한 친밀한" 연기를 했으며, 한은진은 "기품이 있었고" 김소영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훌륭한 여배우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언제나 <나그네>만 말하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한강>도 좋지만 그런" 작품들은 그대로 두고 조금 더 "새로운" 바람이 불 필요가 있다고 한다(유아사 가쓰에, 「파란 저고리」, 1940, 250쪽). 경성에서 학교를 다녔던 유아사 가쓰에의 자전적 경험이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배우 · 초상 · 모리노부 오사무(경성)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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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Stillscopies: 2
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배우 · 초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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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Stillscopies: 2
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이 사진의 왼쪽 하단에는 화신백화점의 로고가 압인돼 있다. 화신백화점은 <그대와 나>(허영, 1941) 촬영 때 미쓰코시 백화점과 함께 조선 의상과 기모노를 각각 협찬했다.
배우 · 초상 · 화신백화점 사진부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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