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특산품 전람회Stills
1938년 4월에 조선일보가 주최한 '조선특산품전람회' 홍보와 관련된 사진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 기타 · 조선특산품전람회(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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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자료-이정래 기증(20201111)Stills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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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Stills
시기 미상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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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Stills
시기 미상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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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Stills
조선총독부 도서과장 후루카와 가네히데(古川兼秀)가 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를 방문했을 때 촬영소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1939년 경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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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진Stills
배우 한은진의 프로필 사진. 한은진은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창립작으로 내놓은 영화 <무정>의 영채 역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1935년 동양극장 연구생이 된 한은진은 1937년에 홍해성이 연출한 연극 <춘향전>으로 데뷔했다. 1938년 동아일보사 주최 연극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연기를 인정받고 수상한 것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한 한은진은 박기채 감독에게 발탁되어 조선영화주식회사와 2년간 계약을 체결하고 영화 <무정>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무정>의 원작자인 춘원 이광수는 한은진의 연기를 보고 '이번이 데뷔라는 한은진 양이 이 과백(科白)도 동작도 없는 영채의 역으로 그만큼 관중의 주의를 끝까지 끌고 가는 성의와 역량은 큰 장래를 약속하는 것 같사와 기쁨을 금치 못하나이다'라고 평했다(이광수, "영화 <무정>으로 공개장, 감독 박기채 씨에게 보내는 글", 《삼천리》, 1939년 6월).
1930년대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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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Stills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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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Stills
1930년대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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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Stills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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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Stills
196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제10회 아시아영화제(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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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석Stills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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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Stills
1940년대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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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란Stills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일본의 연극연출가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를 초청해 제작할 예정이었던 <춘향전>은 춘향 역을 공모했다. 만 17세 이상 23세까지 중등 이상의 학력을 갖춘 여성으로, '미모', '조선적일 것', '음성이 고울 것'이라는 조건에 부합해야 응모할 수 있었다. 당시 모집 공고에 따르면, 춘향 역에 캐스팅 되면 작품수당 외에 매월 백 원 이상의 급여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수십 명의 여성이 지원한 가운데 춘향 역으로 합격해 조선영화주식회사에 입사한 인물이 방란(方蘭)이다. 그러나 <춘향전> 촬영이 늦어지면서 방란은 안석영 감독의 <여학생>에 먼저 출연하게 된다. <여학생> 역시 제작을 마치지 못함에 따라 화제 속에 입사한 방란의 주연 데뷔는 무산되었다.
1930년대 · 기타 · 춘향전(미제작)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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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Stills
1930년대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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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택원Stills
조선영화주식회사가 기획했던 영화 <춘향전>의 이몽룡 역에 캐스팅된 조택원의 테스트 사진. <춘향전>의 연출을 맡기로 한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는 이몽룡 역으로 무용가 조택원을 캐스팅했으며, 춘향 역은 공모를 통해 방란(方蘭)을 발탁하였다.
1930년대 · 기타 · 춘향전(미제작)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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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Stills
196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제10회 아시아영화제(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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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과 이화삼Stills
극연좌(극예술연구회의 후신)에서 함께 활동했던 배우 김동원(당시 활동명은 김동혁)과 이화삼. 조선영화주식회사는 <새출발>(이규환, 1939) 이후 수출을 염두에 두고 조선의 자연풍경과 농민 생활을 제재로 한 영화를 기획했다. <풍년기>(1938, 미완성)는 조선영화협회, 극예술연구회, 학생예술좌 등 세 개 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프로젝트다. 극작가 유치진 원작을 주영섭의 각색과 이병일의 연출로 영화화하고자 했던 <풍년기>에는 신극 무대에서 활동해온 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킬 계획이었다. 이런 이유로 무대에서 활동해온 이화삼과 김동원을 <풍년기>에 캐스팅하고자 했다. 이재명은 1930년대 전반기 일본에 머물 때 재일본 조선인 연극 단체에서 배우로 활동한 바 있었다. 이때 역시 일본에서 활동했던 이화삼, 김동원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 기타 · 풍년기(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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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란Stills
시기 미상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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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이 다시 오면Stills
1950년대 · 단체·기념사진 · 그 밤이 다시 오면(1958) · 아세아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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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주식회사Stills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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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영Stills
안석영 감독의 프로필 사진. 안석영은 조선영화주식회사(조영)가 아직 회사로 등기되기 전인 1936년에 조선영화주식회사 창립 발기인에도 이름을 올렸을 만큼, 초창기 조영에 깊이 관여했다.
1930년대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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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Stills
1930년대 후반 조선영화는 로컬 컬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던 만큼, 이 사진에 기록된 <무정>(1939)의 야외 촬영지 역시 초가집과 흰옷을 입은 인물, 지게 등을 통해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1930년대 · 제작현장사진 · 무정(1939)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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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Stills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무정(1939)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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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Stills
일본의 연극연출가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 방문 기념 사진. 1938년 5월 말이나 6월 초로 추정된다. 조선영화주식회사는 1938년에 일본의 극단신협을 이끄는 무라야마 도모요시에게 영화 <춘향전>의 연출을 의뢰했다. 일본에서 극단신협은 가부키 형식으로 <춘향전>을 무대에 올려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이재명은 1938년 3월 말에 일본 출장에 나서는데, 이때 영화 <춘향전>과 관련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두 달 후, 무라야마는 영화와 관련해 더 논의하기 위해 직접 조선을 방문했다. 이때의 조선 방문은 무라야마 도모요시의 소설 「단청」(《중앙공론》 1939년 10월호)의 소재가 되었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춘향전(미제작) · 조선영화주식회사 · 무라야마 도모요시 조선 방문(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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