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해 신분증명서Objects
한국영화감독협회(회장 김소동)가 1959년 1월 9일에 발행한 김일해의 한국영화감독협회 회원증. 김일해의 사진과 생년월일 및 주소 등이 적혀있다. 김일해(1906~2004)는 1935년 영화계에 데뷔해 <춘풍>(박기채, 1935), <오몽녀>(나운규, 1937), <한강>(방한준, 1938), <반도의 봄>(이병일, 1941), <집 없는 천사>(최인규, 1941), <출격명령>(홍성기, 1954), <단종애사>(전창근, 1956), <장남>(이두용, 1984) 등의 작품에 출연하는 한편, 1958년에 자신의 영화 생활 30년을 기념하는 <인걸 홍길동>을 연출했다.
195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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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 임명패(김종원)_1986Objects
기증자(김종원)는 백상예술대상의 명칭이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이던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3년간 연속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이 자료는 김종원의 제22회 백상예술대상(1986) 심사위원 임명패로, 이 해부터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은 한국일보의 창업주 장기영의 호를 따 '백상예술대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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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 임명패(김종원)_1987Objects
기증자(김종원)는 백상예술대상의 명칭이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이던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3년간 연속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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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 임명패(김종원)_1988Objects
기증자(김종원)는 백상예술대상의 명칭이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이던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3년간 연속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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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 임명패(김종원)_1989Objects
기증자(김종원)는 백상예술대상의 명칭이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이던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3년간 연속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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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네마타운 탁상용 시계Objects
미상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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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소리Stills
태창흥업 제작, 김수용 연출 <까치소리>(1967)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64년부터 68년까지 학원사에 재직하며 『주부생활』 편집차장을 역임했는데, 이 스틸은 이 무렵 그가 『주부생활』에 '우수영화운동'이라는 코너를 통해 태창흥업의 작품들을 소개하던 중 입수한 스틸이다. 한편 기증자는 태창흥업과 이때 맺은 인연으로, 1968년과 1979년, 태창흥업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과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등의 작품을 기획했다.
196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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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소리Stills
태창흥업 제작, 김수용 연출 <까치소리>(1967)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64년부터 68년까지 학원사에 재직하며 『주부생활』 편집차장을 역임했는데, 이 스틸은 이 무렵 그가 『주부생활』에 '우수영화운동'이라는 코너를 통해 태창흥업의 작품들을 소개하던 중 입수한 스틸이다. 한편 기증자는 태창흥업과 이때 맺은 인연으로, 1968년과 1979년, 태창흥업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과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등의 작품을 기획했다.
196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2865_01
까치소리Stills
태창흥업 제작, 김수용 연출 <까치소리>(1967)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64년부터 68년까지 학원사에 재직하며 『주부생활』 편집차장을 역임했는데, 이 스틸은 이 무렵 그가 『주부생활』에 '우수영화운동'이라는 코너를 통해 태창흥업의 작품들을 소개하던 중 입수한 스틸이다. 한편 기증자는 태창흥업과 이때 맺은 인연으로, 1968년과 1979년, 태창흥업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과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등의 작품을 기획했다.
196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2866_01
산불Stills
태창흥업 제작, 김수용 연출 <산불>(1977)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64년부터 68년까지 학원사에 재직하며 『주부생활』 편집차장을 역임했는데, 이 스틸은 이 무렵 그가 『주부생활』에 '우수영화운동'이라는 코너를 통해 태창흥업의 작품들을 소개하던 중 입수한 스틸이다. 한편 기증자는 태창흥업과 이때 맺은 인연으로, 1968년과 1979년, 태창흥업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과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등의 작품을 기획했다.
197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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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Stills
태창흥업 제작, 김수용 연출 <순애보>(1968)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68년과 1979년, 태창흥업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과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등의 작품을 기획했다.
196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164_01
슬픔이 파도를 넘을 때Stills
태창흥업 제작, 조문진 연출 <슬픔이 파도를 넘을 때>(1978)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68년과 1979년, 태창흥업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과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등의 작품을 기획했다.
197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47_01
족보Stills
197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2879_01
26 x 365 = 0Stills
197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83_01
가시를 삼킨 장미Stills
197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78_01
가시를 삼킨 장미Stills
197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79_01
바다로 간 목마Stills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80_01
바다로 간 목마Stills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82_01
불새Stills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2877_01
불새Stills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2878_01
아픈 성숙Stills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3205_01
창밖의 여자Stills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282880_01
버려진 청춘Stills
한림영화사 제작, 정소영 연출 <버려진 청춘>(1982)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82년부터 83년까지 한림영화사 기획실장으로 재직했다.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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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청춘Stills
한림영화사 제작, 정소영 연출 <버려진 청춘>(1982) 장면사진. 기증자(김종원)는 1982년부터 83년까지 한림영화사 기획실장으로 재직했다.
198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DSKT097518_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