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Stills
1920년대 · 풍운아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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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의 정체Stills
<괴인의 정체>(김수로, 1927)의 한 장면. 바위 아래 복면 쓴 괴인이 보인다. 극동키네마의 제1회 작품으로 ‘기사탐정극’이라고 홍보되었다. 산에서 일어난 부호의 사망 사건을 취재하러 간 기자 역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 미스터리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파견된 젊은 기자 이시민(김철산 분)과 최영옥(신일선 분), 그리고 복면 쓴 용의자(정경 분). 신일선이 ‘여기자 최영옥’으로 출연했다.
1920년대 · 괴인의 정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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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Stills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나운규가 연출한 영화 <금붕어>(1927)의 한 장면. 경성의 견지동, 관훈동, 다옥정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조 키네 <금붕어> 촬영 착착 진행", 《조선일보》, 1927.06.14., 2면 참조)
1920년대 · 금붕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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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Stills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나운규가 연출한 영화 <금붕어>(1927)의 한 장면. 경성의 견지동, 관훈동, 다옥정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조 키네 <금붕어> 촬영 착착 진행", 《조선일보》, 1927.06.14., 2면 참조)
1920년대 · 금붕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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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Stills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나운규가 연출한 영화 <금붕어>(1927)의 한 장면. 경성의 견지동, 관훈동, 다옥정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조 키네 <금붕어> 촬영 착착 진행", 《조선일보》, 1927.06.14., 2면 참조)
1920년대 · 금붕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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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길Stills
조선권번연예부가 제작한 영화 <낙양의 길>(천한수, 1927)의 한 장면. 조선권번 기생인 김난주가 주연을 맡았다.
1920년대 · 낙양의 길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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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길Stills
조선권번연예부가 제작한 영화 <낙양의 길>(천한수, 1927)의 한 장면. 조선권번 기생인 김난주가 주연을 맡았다.
1920년대 · 낙양의 길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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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찾는 무리들Stills
황운의 감독 데뷔작 <낙원을 찾는 무리들>(1927)
1920년대 · 낙원을 찾는 무리들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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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Stills
금강키네마사 영화 <낙화유수>(이구영, 1927)의 한 장면. 화가와 기생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1920년대 · 낙화유수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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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Stills
금강키네마사 영화 <낙화유수>(이구영, 1927)의 한 장면. 화가와 기생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1920년대 · 낙화유수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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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Stills
영화 <들쥐>(나운규, 1927)의 한 장면. '야서(野鼠)'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작품이다.
1920년대 · 들쥐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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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동이 틀 때Stills
<먼동이 틀 때>(심훈, 1927)의 한 장면. 10년 가까이 수감되었다가 출옥한 김광식 역의 강홍식(진훈) 클로즈업 쇼트.
1920년대 · 먼동이 틀 때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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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곡Stills
이규설과 서봉옥을 중심으로 과거 토월회 배우들이 모여서 조직한 토성회의 제1회 작품 <불망곡>(이규설, 1927)의 한 장면. 이규설이 연출했다. <불망곡>은 원래 조선극장에서 1927년 1월 7일에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도서과의 검열에서 영화 스토리와 배우들의 과작이 너무 잔인할뿐더러 자연에 버스러진 데가 많다고 하여 불허가를 받았다. 총독부 도서과 검열 이후 조선영화로는 첫 불허 작품이었다. 토성회는 일부를 다시 촬영해 당국의 검열허가를 받아 1927년 1월 22일에 개봉했다.
1920년대 · 불망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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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곡Stills
이규설과 서봉옥을 중심으로 과거 토월회 배우들이 모여서 조직한 토성회의 제1회 작품 <불망곡>의 한 장면. 이규설이 연출했다. <불망곡>은 원래 조선극장에서 1927년 1월 7일에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도서과의 검열에서 영화 스토리와 배우들의 과작이 너무 잔인할뿐더러 자연에 버스러진 데가 많다고 하여 불허가를 받았다. 총독부 도서과 검열 이후 조선영화로는 첫 불허 작품이었다. 토성회는 일부를 다시 촬영해 당국의 검열허가를 받아 1927년 1월 22일에 개봉했다.
1920년대 · 불망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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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빠진 황소Stills
‘남궁운’이라는 이름으로 배우로 활동했던 김태진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이 영화의 원작과 각색, 연출뿐 아니라 배우로도 출연했다.
1920년대 · 뿔빠진 황소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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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비련Stills
'현대학생극'이라고 선전되었던 <홍련비련>(이규설, 1927)에 출연한 복혜숙.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여배우가 출연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두 친구 김일과 현진이 사랑했던 여배우 편실 역의 복혜숙과 오빠의 친구인 김일을 사랑하는 정애 역의 이정숙이다.
1920년대 · 홍련비련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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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여Stills
대륙키네마 제1회 작품 <나의 친구여>(가와바타 모토미즈, 1928)의 한 장면.
1920년대 · 나의 친구여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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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Stills
나운규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나운규프로덕션을 설립할 때 그와 함께 조선키네마를 나와 나운규프로덕션에 합류했던 홍개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다. 나운규가 각본과 주연을 맡았고, 배우 유신방이 이 영화를 통해 데뷔했다.
1920년대 · 사나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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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Stills
나운규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나운규프로덕션을 설립할 때 그와 함께 조선키네마를 나와 나운규프로덕션에 합류했던 홍개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다. 나운규가 각본과 주연을 맡았고, 배우 유신방이 이 영화를 통해 데뷔했다.
1920년대 · 사나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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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아서Stills
영화 <사랑을 찾아서>(나운규, 1928)에서 삼보(윤봉춘 분)와 정희(전옥 분).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돈을 빌린 요릿집에 몸이 팔린 것을 알고 애인과 도망을 가던 중, 애인은 붙잡히고 정희 혼자 북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국경 근방에서 정희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떠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삼보도 그중 하나이다. 구한말 대한제국 군인이었던 남자의 가족을 비롯해 유랑하는 사람들의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간도, 두만강 로케이션까지 진행하며 제작되었다. 원래 영화의 제목은 <두만강을 건너서>였으나, 검열에서 제목이 변경되었다.
1920년대 · 사랑을 찾아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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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아서Stills
영화 <사랑을 찾아서>(나운규, 1928)에서 구한말 군대의 나팔수였던 노인(이금룡 분)이 나팔을 부는 장면. 구한말 군대의 나팔수였던 그는 어떤 사정인지 재산을 잃고 아내와 함께 만주로 향해 가고 있다. 유랑 중 젊은 청년들과 소년, 그리고 도망 중인 여인과 동행하게 되는데, 잠시 어느 마을에 정착하기도 했으나 마적의 횡포와 싸우다 목숨을 잃는다.
1920년대 · 사랑을 찾아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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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영낭자전Stills
이경손프로덕션의 창립작품 <숙영낭자전>(이경손, 1928)에서 백선군이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오는 대목의 장면.
1920년대 · 숙영낭자전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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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Stills
나운규프로덕션의 영화 <옥녀>(나운규, 1928)의 한 장면. 주삼손은 무성영화 시대에 조선영화계에서 활동한 일본인 배우이다. 그는 조선키네마에서 나운규와 함께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창립할 때 합류해 1929년에 나운규프로덕션을 탈퇴할 때까지 나운규와 행보를 같이 했다.
1920년대 · 옥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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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Stills
나운규프로덕션의 영화 <옥녀>(나운규, 1928)의 한 장면. 두 남자 사이에 격투가 벌어지고, 여자(전옥 분)가 그것을 말리는 장면.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이 나운규이다. 배우 전옥의 데뷔작이다.
1920년대 · 옥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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