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Stills
이종명 원작, 김영팔 각색, 김유영 연출, 임화 주연으로 제작된 조선영화예술협회의 <유랑>(김유영, 1928). 김유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1920년대 · 유랑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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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의 비밀, 일명 흑진주Stills
유장안은 일본 쇼치쿠에서 영화를 배운 가와바타 모토미즈(川端基水), 그리고 촬영기사 니시카와 미즈오(西川秀男)와 함께 대륙키네마를 창립했다. 가와바타 감독의 <나의 친구여>(1928)의 조연출로 참여했던 유장안이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중국 안동현 봉천 등지에서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영화의 원제는 <흑진주>였으나, 개봉 전에 <지나가의 비밀>로 바뀌었다.
1920년대 · 지나가의 비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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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의 비밀, 일명 흑진주Stills
유장안은 일본 쇼치쿠에서 영화를 배운 가와바타 모토미즈(川端基水), 그리고 촬영기사 니시카와 미즈오(西川秀男)와 함께 대륙키네마를 창립했다. 가와바타 감독의 <나의 친구여>(1928)의 조연출로 참여했던 유장안이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중국 안동현 봉천 등지에서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영화의 원제는 <흑진주>였으나, 개봉 전에 <지나가의 비밀>로 바뀌었다.
1920년대 · 지나가의 비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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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의 비밀, 일명 흑진주Stills
유장안은 일본 쇼치쿠에서 영화를 배운 가와바타 모토미즈(川端基水), 그리고 촬영기사 니시카와 미즈오(西川秀男)와 함께 대륙키네마를 창립했다. 가와바타 감독의 <나의 친구여>(1928)의 조연출로 참여했던 유장안이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중국 안동현 봉천 등지에서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영화의 원제는 <흑진주>였으나, 개봉 전에 <지나가의 비밀>로 바뀌었다.
1920년대 · 지나가의 비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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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Stills
<혈마('재활')>(홍개명, 1928)의 한 장면. 경상북도 어느 부호 가문에서 일어난 근친상간 실화를 영화화했다. 무언가를 보며 놀란 표정의 안금향. 기생 출신이었던 안금향은 일본에 건너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일본 유니버설, 마키노 영화사 등에 있다가 귀국해 <혈마>에 출연했다.
1920년대 · 혈마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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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Stills
영화 <벙어리 삼룡>(나운규, 1929) 중 주인집 아들(주삼손 분)과 삼룡(나운규 분).
1920년대 · 벙어리 삼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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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Stills
영화 <벙어리 삼룡>(나운규, 1929)에서 삼룡(나운규 분)에게 발길질 하는 아들(주삼손 분)을 말리는 하인들.
1920년대 · 벙어리 삼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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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걸인(세동무)Stills
금강키네마와 서광키네마가 합동해 만든 영화 <세동무>(김영환, 1928)의 한 장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삼걸인'이었으나, 당국의 검열로 '세동무'로 변경했다. 단성사 변사였던 김영환이 연출했다. 이원용, 이재현, 추청운이 세 친구로 출연했다.
1920년대 · 세동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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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가Stills
영화 <혼가>(김유영, 1929)의 한 장면. 고향을 떠난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20년대 · 혼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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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놈Stills
대동영화사(대구)가 제작한 영화 <도적놈>(윤봉춘, 1930)의 한 장면. 주인규(좌)는 대장간에서 일하는 노동자 고철수 역을 맡았다.
1930년대 · 도적놈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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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놈Stills
대동영화사(대구)가 제작한 영화 <도적놈>(윤봉춘, 1930)의 촬영 현장. 사진에서 경찰의 위협에 몸을 낮춘 노인이 감독 겸 배우 윤봉춘, 카메라 뒤에 서있는 사람이 촬영감독 이진권이다.
1930년대 · 도적놈 ·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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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싸우는 사람들Stills
대구 녹성키네마가 제작한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양철, 1930)의 한 장면.
1930년대 ·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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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비곡Stills
조선일보에 연재된 최독견의 장편소설을 이구영이 영화화한 <승방비곡>(1930)의 한 장면. 소설 연재 당시에는 매회 연출된 스틸 사진을 삽화 대신 게재했다. 연재된 스틸사진에서는 여 주인공을 신일선이 연기했으나, 실제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는 김연실이 출연했다.
1930년대 · 승방비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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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비곡Stills
조선일보에 연재된 최독견의 장편소설을 이구영이 영화화한 <승방비곡>(1930)의 한 장면. 소설 연재 당시에는 매회 연출된 스틸 사진을 삽화 대신 게재했다. 연재된 스틸사진에서는 여 주인공을 신일선이 연기했으나, 실제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는 김연실이 출연했다.
1930년대 · 승방비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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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후편Stills
영화 <아리랑 후편>(이구영, 1930)의 한 장면. 정신이상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최영진이 출옥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랑>의 원작자 나운규가 후편에도 출연했다. <아리랑 후편>은 이구영 감독의 연출작이지만, 당시 좌파 논객들은 이 영화를 ‘나운규의 영화’로 인식하고 강하게 비판했다.
1930년대 · 아리랑 후편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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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노래Stills
영화 <젊은이의 노래>(김영환, 1930)의 한 장면. 조선극장영화부와 중앙키네마가 합동해 제작한 영화로, 조선극장 주임변사로 있던 김영환이 연출했다. 나웅, 김정숙, 서월영 등이 출연했다.
1930년대 · 젊은이의 노래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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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곡Stills
왕덕성, 김영태, 이진권 등이 참여한 아성키네마의 창립작 <회심곡>(왕덕성 감독, 1930)의 한 장면.
1930년대 · 회심곡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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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한Stills
원산만프로덕션의 <금강한>(나운규, 1931). 일본 시대극 배우 도야마 미쓰루(遠山滿)가 조선에 건너와 와케지마 슈지로(分島周次朗)의 경성촬영소에 설립한 것이 원산만프로덕션이다. 나운규프로덕션이 해체된 후 '조선영화계의 스타' 나운규가 여기에 참여하자 나운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1930년대 · 금강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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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한Stills
원산만프로덕션의 <금강한>(나운규, 1931). 일본 시대극 배우 도야마 미쓰루(遠山滿)가 조선에 건너와 와케지마 슈지로(分島周次朗)의 경성촬영소에 설립한 것이 원산만프로덕션이다. 나운규프로덕션이 해체된 후 '조선영화계의 스타' 나운규가 여기에 참여하자 나운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1930년대 · 금강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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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타령Stills
영화 <방아타령>(김상진, 1931) 중 한 장면. 흥선대원군이 집권했던 시대 종교 탄압과 민란으로 혼란한 중에 마을을 떠난 남자가 수십년이 지나 돌아온 고향에서 옛 약혼녀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조선의 아돌프 멘주’라고 불렸던 이경선이 주연을 맡았다. 일본 유학 중 귀국해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던 김인규(다른 이름 ‘김한’)도 배역을 맡아 출연했다.
1930년대 · 방아타령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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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타령Stills
영화 <방아타령>(김상진, 1931) 중 한 장면. 흥선대원군이 집권했던 시대 종교 탄압과 민란으로 혼란한 중에 마을을 떠난 남자가 수십년이 지나 돌아온 고향에서 옛 약혼녀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조선의 아돌프 멘주’라고 불렸던 이경선이 주연을 맡았다. 일본 유학 중 귀국해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던 김인규(다른 이름 ‘김한’)도 배역을 맡아 출연했다.
1930년대 · 방아타령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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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Stills
대경키네마가 제작한 영화 <수일과 순애>(이구영, 1931)의 한 장면. 원작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금색야차(金色夜叉)』를 번안한 소설 『장한몽(長恨夢)』이다. 1926년에 계림영화협회가 <장한몽>(이경손, 1926)을 제작한 바 있는데, 1931년에 조직된 대경영화사가 다시 한번 『장한몽』의 영화화를 추진했다. 단성사 선전부를 이끌며 무성영화 시대 조선영화계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했던 이구영이 메가폰을 잡은 <수일과 순애>는 단성사 개봉을 앞두고 관객의 호기심을 끌 수 있도록 이벤트를 기획했다. 출연 배우들(이경선, 윤봉춘, 주삼손, 박제행, 김연실)이 영화 속에서 각각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를 맞추는 현상 응모를 진행했고, 개봉 후 입장 관객 500명에 한하여 조미료 ‘아지노모토(味の素)’의 견본 1병을 무료 증정한다고 광고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미 유명했기에, 영화에 대한 평가는 기술적 측면에서 진전을 보였다는 점이 주로 언급되었다. (인돌, <수일과 순애>를 보고, 『동아일보』, 1931.3.14.)
1930년대 · 수일과 순애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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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덤Stills
영화 <큰 무덤>(윤봉춘, 1931)의 한 장면. 영화는 인천에 있는 중국인 자본가 소유의 공장을 배경으로 한다. 공장 감독의 직공들에 대한 가혹한 횡포에 맞서 공장 직공들의 소요가 일어난 장면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 큰 무덤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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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Stills
사회주의 영화 운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서울키노의 영화 <화륜>(김유영, 1931)의 한 장면. <화륜>은 조선시나리오작가협회 창립 후 처음으로 이효석, 안석주, 서광제, 김유영 등이 공동집필한 시나리오를 서광제가 각색하고 김유영이 연출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청복키노의 <지하촌>이 공개가 무산되었던 것과 달리 <화륜>은 1931년 3월에 개봉될 수 있었는데, 각색과 연출, 그리고 총독부의 검열을 거치며 영화는 애초의 시나리오로부터 상당히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화륜>을 둘러싸고 비평가 임화, 서광제, 김유영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1930년대 · 화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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