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6, 대사삭제 1개처 특이사항 ㅇ 포로수용소에서 적색포로와 백색프로 간의 격렬한 갈등을 그린 영화. 문교부는 내무부 치안국장, 국방부 장관, 법무부 검찰국장, 공보실 선전국장, 대검 검사 오제도 등 광범위한 권력기관의 고위 관련자들을 검열위원으로 위촉하였다. 이는 통상적이지 않은 일인데,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영화의 특정한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ㅇ 이러한 사정을 인지한 것인지, 제작사는 자진 개작을 신청하였고 이에 검열이 1차로 4월 9일로 연기되었는데, 실제 검열은 4월 15일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ㅇ 이후 제작사는 4월 9일자로 이 영화의 재검열을 신청하였는데, 자진 개작본을 신청한 것인지, 이전 동일본을 신청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에 문교부는 4월 15일 국방부, 법무부, 공보실, 외무부, 내무부 등의 공무원으로 검열위원을 위촉하여 검열을 진행하였다. ㅇ 이 검열결과를 종합하여 통보하지 않았던 문교부는 4월혁명 이후인 5월 6일 검열위원을 다시 위촉하였다. 당시 검열위원은 김은우(아세아영화제 심사위원 및 이화여대 교수), 유호(경향신문사 문화부장), 원경수(연합신문사 기획국장), 성인기(조선일보사 부사장), 천관우(한국일보사 논설위원), 권순영(서울지방법원소년복지원장) 등 6명으로 혁명 전 검열위원과 달리 민간인사들로 구성되었다. 계획안에 따르면 검열은 5월 7일 시행 예정이었다. ㅇ 문교부는 5월 10일 4월 15일의 검열과 5월 7일의 검열결과를 종합하여 제작사에게 상영불허를 통보했다. ㅇ 이에 제작사는 5월 11일 27개처에 달하는 대대적인 재편집 후 재검열을 신청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문교부는 5월 19일 최종적으로 화면삭제 6개처, 대사삭제 1개처의 제한사항을 전제로 이 영화의 상영을 허가했다. 4월혁명 이후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제한사항이 많은 검열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기타 · 1956_1960 · 기타 · 미상 · 분단/반공
RK00586
한많은 강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없음 특이사항 ㅇ 4월혁명 이후 공식적으로 검열이 사라진 시기의 검열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상영허가” 서식이 “상영신고” 서식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 “영화윤리전국위원회”의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음에도, “영윤”의 흔적이 서류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ㅇ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서 복잡한 권리 다툼이 진행되었음을 서류에 첨부된 각종 진정서와 해명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진정과 해명의 과정을 문교부 내부 보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PDF 27쪽). “본건 국산영화 「한많은 강」 원작자이며 제작자인 「이영갑」이가 1,200만환을 소요하여 제작 도중 자금난으로 고심하고 있음을 「박재홍」(3대 민의원)이가 알자 강압적으로 제작권 등을 200여만환에 인수한 후 전기 원작자(이영갑)의 사전동의도 없이 「이병록」에게 원작권 및 제작권 등 일체를 600만환에 전매하여 현재 아세아영화사 ”이재명“의 명의로 제작완료하여 녹음하고 있는 것임.”(문교부, 1960.6.7.) 그 외 김일수가 자신의 각색의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진정한 서신 역시 함께 있다. ㅇ 그런데 상영신고서에 첨부된 영화 줄거리의 표지(PDF 34쪽)에는 “제작 이영갑 깁종성, 기획 조연묵, 감독 우상학, 제작사 예림영화사”로 표기되어 있고 이재명과 아세아영화사, 김일수 등의 이름은 없다. ㅇ 그리고 1960년 12월 2일에 이루어진 제작신고에는 원작 김일수, 제작 김만길, 제작사 새별영화사 등으로 기재되면서 원작자이자 제작자인 이영갑의 이름이 완전히 누락되었고, 원작에 김일수의 이름이 기재되었으며, 제작사 역시 바뀌었다. 이 과정이 서류에 남아있지는 않다.
기타 · 1956_1960 · 기타 · 미상 · 분단/반공
RK00632
백사부인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없음 특이사항 ㅇ 이 영화는 4월혁명 이후 국가검열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9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영화윤리전국위원회 시절에 상영신고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에 따라 상영신고서에 영윤의 “심의필” 도장이 찍혀있다. ㅇ 공식적인 검열이 사라진 시점이라 공보부의 서류에는 상영허가라는 단어 대신 상영신고라는 단어로 고쳐져 있고, 검열에 해당하는 “제한사항” 란 역시 붉은펜으로 삭제 표시가 되어 있다.
신상옥 · 1956_1960 · 신필름 · 미상 · 시대극/사극
RK00603
로맨스빠빠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대사삭제 1, 대사첨가 1 특이사항 ㅇ 상영허가서 본 서류에 검열자로 선영희와 신종성, 이강래의 실명이 기재되어 있다. ㅇ 복사본 상영허가 시 “우리 집안의 최대권력하고 싸워서 이겼다” 앞뒤 장면과 관련 검열대본과 연속방송극 대본을 비교 검토한 내용이 있으나 제한사항으로 제시되는 않았다. 해당 장면이 검열되었다는 당시 언론이 있었으나 이 서류에 의하면 최종적으로 검열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상옥 · 1956_1960 · 신필름 · 미상 · 코미디
RK00546
연애전선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2, 대사삭제 1 특이사항 ㅇ 상영허가서 본 서류에 검열자로 선영희, 신종성 두 사람의 실명이 기재되어 있다.
김수용 · 1956_1960 · 기타 · 미상 · 코미디
RK00554
명동에 흐르는 세월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1개처 ㅇ 특이사항 - 예륜의 시나리오 검열을 초심에서 무사히 통과했음에도, 문공부의 자체 검토에 의해 제작신고서가 반려되었다. - 문공부는 제작신고를 반려하면서 "폭력행위 또는 깡패를 주제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가하겠다고 수차 통보한 바 있음"이라 밝히고 있다. -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의 제작신고가 수리 거부된 것은 타 작품의 심각한 표절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타 작품이 무엇인지는 서류상 명확하지 않다.
기타 · 1971_1975 · 극동흥업 · 미성년자관람불가 · 분단/반공
RK02389
세 남매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 대사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 시나리오 검열과 제작신고 서류 이후 갑자기 1984년 공연윤리위원회의 반공영화 선정 여부 서류와 이 시기 복사판 제작, 상영기간 연장 관련 서류가 끼어있다(PDF 15-51쪽). 서류 파일링 혹은 스캔 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인다. 따라서 진행 순서대로 열람하려면 14쪽 이후 52쪽으로 가면 된다. - 예고편 검열신청과 본편 검열신청 시 이전까지는 영화제협과 진흥조합의 경유를 모두 거쳤으나 이 시기부터 진흥조합의 경유만 거치고 있다. 반면 미성년자 관람허가 서류에서는 영화제협을 경유하였다. 여전히 절차가 정비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 문공부는 10월 2일 이 영화에 대해 미성년자 불가 판정을 한 후, 10월 15일 내무부에 미성년자 심의를 의뢰하여 결국 중학생이상 관람가로 판정되었다. 문공부의 행정적 실수로 보인다.
기타 · 1971_1975 · 연방영화 · 중학생이상관람가 · 분단/반공
RK02426
독나비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 1969년 제작신고가 이루어졌으나, 1970년 제작사인 태창흥업이 제작신고를 자진취하 하였고, 1971년 다시 태창영화주식회사의 상호로 제작신고를 하였다. - 1971년 제작신고서에는 원래 예륜의 시나리오심의보고서가 첨부되어야 하나, 1969년 제협으로부터 받은 시나리오심의의견서를 첨부하여 갈음한 것으로 보인다. - 1969년 당시 정보부의 시나리오 검열을 받았고, 문공부는 이 내용을 1971년 제작신고의 시정사항에서도 통보하였다.
기타 · 1971_1975 · 태창흥업 · 고등학생이상관람가 · 분단/반공
RK02428
사랑할 때와 죽을 때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1개처 ㅇ 특이사항: 없음
기타 · 1971_1975 · 기타 · 미성년자관람불가 · 분단/반공
RK02445
훼리호를 타라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2, 화면단축 3개처 ㅇ 특이사항: 없음
고영남 · 1971_1975 · 합동영화 · 미성년자관람불가 · 분단/반공
RK02460
빨간 마후라의 사나이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6개처 ㅇ 특이사항 - 제작신고 서류에 선양흥업주식회사가 동양흥업주식회사에게 제작권 및 공연권 일체를 양도한 양도증이 첨부되어 있다. “폐사에서 작품심의 완료한 바 있는...”이라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선양흥업이 예륜으로부터 시나리오 검열을 이수한 후 양도한 것으로 보인다. - 제작신고 수리가 본편과 예고편 검열 신청 이후에 이루어졌다. 행정절차상의 오류로 보인다. 연말까지의 제작쿼터를 지켜야 할 사정 때문인지 제작신고부터 검열까지가 1개월 내에 매우 서둘러서 진행되어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기타 · 1971_1975 · 동양영화 · 국민학생이상관람가 · 분단/반공
RK02463
국제암살단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 대사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 정보부의 시나리오 검열을 받았다. 정보부는 8건의 시정사항을 통보하였고, 문공부가 이를 통합하여 시정사항으로 제작사에 통보하였다. 당시 정보부의 의견서에는 <검은 장갑을 껴라>, <홍콩의 애꾸눈> 등 3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 1969년 12월 제작신고가 수리된 이 영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작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971년 4월자로 제작신고가 취하되었고, 이후 제작사가 동양영화흥업으로 교체되어 71년 7월에 다시 제작신고를 접수되었다.
기타 · 1971_1975 · 동양영화 · 미성년자관람불가 · 분단/반공
RK02414
분노의 세얼굴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2, 대사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 본편 검열시 정보부가 수출 불가 판정을 하였고, 이는 최종적으로 반영되었다. - 미성년자 관람등급에 대해 내무부가 국민학생 이상 관람가로 판정했음에도 최종적으로 중학생 이상 관람가 판정이 내려졌다. 문공부가 임의로 변경한 것인지 내무부와 협의하에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기타 · 1971_1975 · 세기상사 · 중학생이상관람가 · 분단/반공
RK02487
동업자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3개처 ㅇ 특이사항: 없음
기타 · 1971_1975 · 기타 · 미성년자관람불가 · 분단/반공
RK02493
목소리Censorship papers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2개처 ㅇ 특이사항 - 본편 검열 시 미성년자관람가부신청을 함께 하는 것이 관례이나, 제작사의 착오 때문인지 본편 검열결과가 나온 후 뒤늦게 가부신청을 하여 불가에서 중학생 이상 관람가로 변경되었다. 관람불가 판정 시에 제한사항이 없었으나, 관람가 판정으로 변경되면서 제한사항이 추가되었다.
기타 · 1971_1975 · 기타 · 중학생이상관람가 · 분단/반공
RK02501
오발탄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 특이사항 ㅇ <오발탄>의 상영신고가 이루어졌던 1961년 2월은 4월혁명 이후 공식적으로 정부에 의한 영화검열이 철폐되었고, 이에 따라 민간자율기관인 영화윤리전국위원회의(영륜)가 심의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상영허가는 상영신고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행정적인 절차로 진행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허가번호”는 “신고번호”로, “허가기간”은 “상영기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ㅇ 내무부 치안국은 1961년 5월 28일 “한국영화 “오발탄”에 대한 여론 통보“라는 문건을 통해 이 영화가 ”실업자, 무산계급의 반항과 자포자기를 조장케 하여 공산주의적인 혁명이라도 일어나야하겠다는 인상“이라는 매우 강력한 어조로 영화를 비판하였다. ㅇ 이에 문교부는 1961년 7월 20일 내무부치안국장, 법무부검찰국장(정보과장), 중앙정보부제3국장, 재건국민운동본부예능과장, 문교부문화국장을 검열위원으로 위촉, 재검열을 실시한 결과 상영보류조치하였다. ㅇ 이 서류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중앙정보부가 검열위원으로 위촉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말까지 이어지는 중앙정보부의 영화검열 관여의 최초 기록이 아닌가 짐작된다. ㅇ 이후 제작사 측과 영화인협회의 반복되는 탄원과 진정 끝에 1963년 8월 말 공보부는 드디어 상영허가보류를 해제했다. 제작사와 영화인의 탄원보다도 더 효과가 있었던 것은 당시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미국의 영화평론가 리차드 다이어 맥칸의 구명활동과 미국으로의 영화 수입 주선,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출품 등이 명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ㅇ 재상영허가 시에 제한사항이 추가되었고, 혁명공약 4항 자막을 입히도록 했다. ㅇ 이 서류철의 마지막에 서울지방검찰청이 공보부에 <오발탄>의 상영허가 보류와 해제의 경위를 묻고 답하는 1965년 4월의 문서가 있다. 이 시기 유현목 감독은 이만희 감독이 <7인의 여포로> 사건으로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고 투옥되었던 것을 비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검찰에 의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당했다. 검찰은 기소에 앞서 유현목 감독의 전력을 논리 보강의 증빙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유현목 · 1961_1965 · 기타 · 미성년자관람불가 · 기타
RK00641
현해탄은 알고 있다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3, 대사삭제 2, 음악음량제한 1 특이사항 ㅇ 영화선재 고사 신청서라는 서류가 있는데, 이는 영화 예고편을 활용하기 전 검열을 위해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영 · 1961_1965 · 기타 · 미성년자관람불가 · 기타
RK00686
5인의 해병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2개처 특이사항 ㅇ 부전지(PDF 6쪽)에 “본건 해병대 사령부 정훈감실에서 사전 대본 및 제작에 수반한 제반업무를 감독한 바 있음”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의 제작 전과정에서 해병대의 감독 및 후원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타 · 1961_1965 · 극동흥업 · 미상 · 분단/반공
RK00679
굳빠이 죤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3, 대사삭제 2개처 특이사항 ㅇ 이 영화의 상영신고 서류에는 미 공군의 공문(“Security Review of Motion Picture”)이 포함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었다. “삼천리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영화 '굿바이 존'을 검토한 결과, 영화에 주한미군 기밀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ㅇ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서인지 상영허가 시 중앙정보부가 검열에 참여했다(1961.11.24., 공보부 시사실, 검열참석자 소령 오세웅). 정보부는 몇 장면의 삭제 수정을 조건으로 영화의 상영을 허가했는데, 그 제한사항은 본 서류 참고.
기타 · 1961_1965 · 기타 · 미상 · 분단/반공
RK01010
붉은 두목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없음 특이사항 ㅇ 정보부가 본편 검열에 참여하고 있다. 정보부가 영화검열에 참여한 초기 기록 중 하나로 보인다.
기타 · 1961_1965 · 기타 · 미상 · 분단/반공
RK05327
붉은 장미는 지다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2개처 특이사항 ㅇ 상영허가 시 중앙정보부와 국방부가 검열에 참여했다. 정보부는 제한사항 없이 상영허가를, 국방부는 2개의 제한사항 조건으로 상영허가를 판정했다. 국방부의 제한사항 2개처는 최종 제한사항에 포함되었다.
기타 · 1961_1965 · 기타 · 미상 · 분단/반공
RK00776
육체는 슬프다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 자막삭제 2개처 특이사항 ㅇ 간첩영화이나 중앙정보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기타 · 1961_1965 · 기타 · 미상 · 분단/반공
RK00704
불효자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 대사삭제 1, 화면 및 녹음삭제 1 특이사항 ㅇ 군사정권 수립 직후 영화법이 제정되지 않은 단계로, 서류의 구성이 상영허가신청과 상영허가로만 되어 있다. 이는 영화법 이후 복잡해지는 검열 행정절차와 대비된다.
이만희 · 1961_1965 · 기타 · 미상 · 기타
RK0068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Censorship papers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1, 대사삭제 2 특이사항 ㅇ 5.16 이후 영화검열의 주관부서는 공보부로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의 경우 문교부가 주관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공보부는 6월 22일에 출범하였는데, 공보부 직제 등 조직과 법령, 행정 정비 기간이 소요되어 임시적으로 문교부가 검열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신상옥 · 1961_1965 · 신필름 · 미상 · 기타
RK00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