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Scripts and storyboardscopies: 2
「<오발탄> 인쇄본 시나리오: S#1~S#122」(이하 '인쇄본 시나리오'; 관리번호 DCKN002169_01)의 S#1~S#29 부분을 수정한 버전으로, 중간 중간에 원고지 뒷면에 적은 육필 수정 내용이 삽입돼 있고, 상단에는 1부터 42까지의 쪽수가 적혀 있다. 여기서 수정된 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쪽은 원고지 뒷면에 작성한 수정 장면으로, 기존의 인쇄본 시나리오(CKN002169_01)의 S#1~3을 S#1과 S#2로 간략하게 줄였다. 특히 S#1의 자막은 기존 두 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세 줄로 줄여 놓았다. - 5쪽의 S#4와 8쪽의 S#6에서는 명숙과 경식의 대화 및 갈등 장면을 간략하게 수정했다. - 6쪽의 S#5는 영화에서 생략된 장면이나, 인쇄본 시나리오에 비해 전쟁의 상처에 대한 만수와 영호의 대사 강도가 조금 높아졌다. - 10~11쪽의 S#7과 S#8은 해방촌 입구 설희의 집 장면으로, 병약한 설희의 상태와 설희를 흠모하며 바라보는 영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설희와 영호의 첫 만남은 「<오발탄> 육필 시나리오: S#1~S#58」(관리번호 CKN002518_01) 및 인쇄본 시나리오에서는 'S#33 건늘목'에서 등장하며, 영화 역시 이와 같다. - 26쪽에 육필로 적힌 S#18은 인쇄본 시나리오의 S#18과 동일하다. - 27쪽의 S#19는 분수대 앞 벤치에 앉은 명숙이 양공주와 미군병사가 만나는 것을 목격하는 내용이다. - 28~29쪽의 S#20 계리사 사무실 장면은 퇴근시간이 지나고 철호가 대야에 손을 담궈 풀린 잉크와 오른손 장지의 콩알만한 못이 박힌 손을 보는 장면으로, 소설 「오발탄」의 도입부를 가져왔다. - 30~31쪽의 S#21 유정 안 장면은 곽 하사가 유정에 나와 영호를 만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좀 더 압축적으로 사용되었다. - 32쪽의 S#22 빌딩 앞 장면은 인쇄본 시나리오의 S#23과 유사하다. - 마지막 장인 42쪽은 S#29 골목길(인쇄본 시나리오에서는 S#30)로, 영호가 경식에게 명숙과의 관계를 독려하는 내용이다.
오발탄 · 1960년대 · 시나리오 · 온라인 열람
DCKN003083_01
오발탄Scripts and storyboardscopies: 2
「<오발탄> 인쇄본 시나리오: S#1~S#122」(이하 '인쇄본 시나리오'; 관리번호 DCKN002169_01)의 S#99~S#123 부분을 수정한 버전으로, S#99 경찰서 수사계 안, 경찰에 체포된 영호를 면회하는 철호 장면의 중간부터 S#123 교차로 밤거리 엔딩 장면까지이다. 총 18쪽 분량으로, 왼쪽 상단에 붉은 색연필로 쪽번호(119~136)를 크게 적어 놓았다. 시나리오에는 수정 혹은 추가된 대사나 장면들이 육필로 적혀 있다. 예를 들어 [S#108 경찰서 앞] 장면에서 멍하니 길을 걷는 철호 앞에 간장이 끊어질 듯 한 소리로 피리를 부는 노인이 등장하거나 [S#109 거리]에서 걸어가는 철호 주위에 무언가를 뿌리는 소년이 있다거나, [S#114 서울역 부근] 장면에서 기적소리가 두 어번 길게 울린다는 묘사가 추가되어 있다. 모두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S#118 동대문 부인과 산실] 장면에서는 명숙의 대사가 수정돼 있으나, 영화에서는 수정 전의 대사가 사용되었다. 붉은 색연필로 적힌 쪽번호 135쪽에는 [S#121 교차로] 장면이 추가되어 있다. 육필로 적혀 있으며, 철호가 탄 택시 앞으로 민호가 신문을 옆에 끼고 "내일 아침 서울 신문"을 외치며 뛰어간다는 내용이다. 인쇄본 시나리오(DCKN002169_01)에는 없는 내용으로, 이 장면은 영화에 반영되었다. 이 시나리오의 마지막 페이지 오른쪽 일부분이 찢겨져 있고, [S#122 하늘]과 [S#123 교차로] 장면이 남아 있다. 한편 인쇄본 시나리오를 통해 확인되는 찢겨진 부분의 내용은 택시를 탄 철호가 택시 기사에게 "가자"를 외치는 장면이다.
오발탄 · 1960년대 · 시나리오 · 온라인 열람
DCKN013612_01
아리랑Scripts and storyboardscopies: 2
원고지에 쓴 <아리랑>(유현목, 1968)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다. S#62로, 현구와 영희가 재회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아리랑> 시나리오(유현목 용)」(관리번호 CKN002310_01)의 S#45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영화에서는 시나리오의 S#45 장면이 사용되었다.
아리랑 · 1960년대 · 시나리오
CKN002551_01
<아리랑> 橋工事場 ScheduleOther materialcopies: 2
가로줄이 쳐진 노트 낱장 양면에 정리된 <아리랑>(유현목, 1968) 철교 공사장 장면의 촬영 스케줄이다. 철교 공사장 전경부터 공사장 부근, 공사장 앞, 공사장 감독실, 창고 등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철교 공사장 장면 촬영은 1967년 12월 21일~23일까지, 3일 간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3일 간의 낮과 밤 촬영 스케줄로 분류해, 총 6개의 촬영 일정으로 정리되어 있다. 해당일에 촬영할 신 넘버, 출연 배우의 이름, 엑스트라 수, 특별 출연진 등이 적혀 있다.
아리랑 · 1960년대 · 제작실무자료 · 온라인 열람
ZK0000530_01
콘티 관련 메모Other materialcopies: 2
<아리랑>(유현목, 1968) 일부 장면과 관련된 메모들이다. 가로줄이 쳐진 종이에는 "재공사 97, 102, 104, 106 / 복구공사 166"에 대한 메모가 있다. S#97과 97A, S#102, S#104에 대해 줄콘티처럼 설명이 적혀 있고, S#97과 S#104 부분에는 카메라 포지션을 그린 그림도 있다. 한편 200자 원고지에는 "황폐한 농토, 공사장 풍경" 등 연출 관련 키워드들을 적어 놓았다. 그 밖에도 황색 종이에 적은 S#140~S#143에는 지문과 대사들에 줄이 그어져 있고, 컷을 나눈 듯한 번호가 적혀 있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 장면으로, 철교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는 현구와 영희를 겁탈하려는 기호를 발견하는 영진의 모습, 기호와 영희, 영진, 현구가 한 장소에서 얽히는 장면이다.
아리랑 · 1960년대 · 제작실무자료 · 온라인 열람
ZK0000531_01
임꺽정 S#46Scripts and storyboardscopies: 2
원고지에 세로쓰기로 작성한 <임꺽정>(유현목, 1961) 육필 시나리오의 일부로, S#46만 있다. 「<임꺽정> 육필 시나리오: S#59」(관리번호 DCKN002553_01)와 필체가 다르다. 실제 <임꺽정>의 각본은 김강윤, 이정선, 나소운이 공동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8장의 원고지에 쓰여 있고, 원고지 상단 중앙에 1부터 6까지의 쪽 번호가 적혀있다. 3쪽이 원고지 앞뒤로 2장, 4쪽도 원고지 앞뒤로 2장씩 작성돼 있는데, 각각 동일한 장면이나 원고지 뒷장에 쓰여 있는 대사들이 영화와 더 유사하다. S#46은 서울 장안으로 들어온 임꺽정(신영균 분)과 그를 따르는 양반 승옥(유춘 분)이 기방인 소향(유계선 분)의 집에서 만나 회포를 푸는 장면이다. 여기서 임꺽정은 왕의 눈을 가린 탐관오리들의 처단을 위해 사람을 모아달라고 부탁하며, 왕에 대한 대역죄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임꺽정>은 원래 유현목, 김학성 콤비가 <성웅 이순신>의 후속으로 준비했던 작품이었으나, <성웅 이순신> 촬영이 중단된 탓에 먼저 제작하게 되었다(동아일보 1961.08.09., 4면). <임꺽정>은 1961년 8월 19일, 한강 동작동 나룻터 로케이션 촬영으로 크랭크 인했다. 임꺽정을 잡으러 달려온 기마포졸이 임꺽정으로 오인한 돌쇠(황해 분)에게 얻어맞고 강물에 빠지는 장면이다(동아일보 1961.08.22., 4면). 한편, 그해 9월 창동에 오픈세트 화형장을 짓고 마지막 촬영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조선일보 1961.09.25., 4면)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1961년 11월 초에 촬영이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조선일보 1961.11.11., 4면). 조선왕조실록 중 명조실록 제2권의 임꺽정 난의 기록을 간추려 소재로 삼았고, 여 주인공 복실 역을 맡은 주난지의 데뷔작이다(조선일보 1961.09.25., 4면).
임꺽정 · 1960년대 · 시나리오 · 온라인 열람
DCKN003082_01
임꺽정 S#59Scripts and storyboardscopies: 2
원고지에 세로쓰기로 작성한 <임꺽정>(유현목, 1961) 육필 시나리오의 일부로, S#59만 있다. 「<임꺽정> 육필 시나리오: S#46」(관리번호 DCKN003082_01)와 필체가 다르다. 실제 <임꺽정>의 각본은 김강윤, 이정선, 나소운이 공동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적힌 S#59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으로,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의 영화 전개를 고려해 볼 때 「<임꺽정> 육필 시나리오: S#46」(관리번호 DCKN003082_01) 이후 탄실(문정숙 분)의 죽음, 탐관오리의 청석골 학살 등 진지한 내용이 주가 되는 중에 코믹한 캐릭터인 최돌과 함께 등장하는 S#59가 다소 이질적이라 판단되어 촬영 전에 삭제되었을 수 있다. S#59 산속 장면은 암행 중인 관료 서진(최남현 분)이 쉬고 있는 나무 그늘에 임꺽정(신영균 분)과 술독을 들고 있는 최돌(윤왕국 분)이 들어오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서진이 임꺽정을 떠보는 말을 던지고, 최돌이 대거리를 하며 다투지만, 서진은 임꺽정이 가는 방향에 사냥을 나온 관가 사람들이 있다며 주의를 준다. 실제 영화에서 서진과 임꺽정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암행 중인 서진이 탐관오리의 횡포를 경험하며 우연히 임꺽정과 말을 나누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에 서진이 탐관오리인 양주목사 이흠례(이예춘 분)에게 벌을 준 뒤 임꺽정에게 유대감을 표시하는 장면이다. <임꺽정>은 원래 유현목, 김학성 콤비가 <성웅 이순신>의 후속으로 준비했던 작품이나, <성웅 이순신> 촬영이 중단된 탓에 먼저 제작하게 되었다(동아일보 1961.08.09., 4면). <임꺽정>은 1961년 8월 19일, 한강 동작동 나룻터 로케이션 촬영으로 크랭크 인했다. 임꺽정을 잡으러 달려온 기마포졸이 임꺽정으로 오인한 돌쇠(황해 분)에게 얻어맞고 강물에 빠지는 장면이다(동아일보 1961.08.22., 4면). 한편, 그해 9월 창동에 오픈세트 화형장을 짓고 마지막 촬영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조선일보 1961.09.25., 4면)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1961년 11월 초에 촬영이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조선일보 1961.11.11., 4면). 조선왕조실록 중 명조실록 제2권의 임꺽정 난의 기록을 간추려 소재로 삼았고, 여 주인공 복실 역을 맡은 주난지의 데뷔작이다(조선일보 1961.09.25., 4면).
임꺽정 · 1960년대 · 시나리오 · 온라인 열람
DCKN002553_01
김약국의 딸들: ContinuityScripts and storyboardscopies: 2
<김약국의 딸들>(유현목, 1963)의 콘티로, S#2 부터 S#91A까지(일부 신 누락)의 내용이다. 감독이 직접 만든 콘티 양식에 작성되었으며, 때로 빈 종이에 기록한 장면도 있다. 일례로 S#55 강풍에 어선이 전복된 뒤 선착장에 사람들이 모인 장면, S#38 교회 안 장면의 5개 컷은 빈 종이에 세로로 간단한 숏 사이즈와 대사, 노래만 적혀있다. 콘티의 구성은 시퀀스 별로 앞부분에 개요가 되는 장이 있고, 그에 해당하는 신/컷의 콘티가 이어진다. 개요 장에는 각 신별 컷 수와 등장인물 소품이 정리돼 있다. 한편 콘티에서는 소품 연출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도 발견된다. - S#11 C#1의 왼쪽 하단 [NOTE] 부분에는 “눈 마그네슘 5포대”라고 적혀 있다. 새신랑 성수를 찾아 가는 언덕길 장면인데, 아쉽게도 실제 촬영된 영상에서는 눈이 잘 구현되지는 않은 것 같다. - S#12 C#1은 황폐한 집(도깨비집)으로 도망간 새신랑 장면으로, "푸덕거리며 나르는 새, 흑색 실로 가지 등을 잡아 당길 것”이라 적혀 있다. 실제 촬영된 영상 전경에 새가 지나가는 모습이 언뜻 보인다. - S#90 C#4 미친 용란이 기두에게 달려가 한돌이라 부르며 도망가자고 하는 장면의 콘티에는 중요 표시로 “손에는 조개껍질”이라 적힌 내용 위에 줄을 긋고 “전복 껍질”이라고 수정되어 있다. 영화를 보면 용란이 오른손에 전복껍질을 쥐고 있는데 기두에게 도망가기 위해 훔쳐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밖에도 공보부의 듀프 네가 필름을 활용한 흔적도 발견된다. S#85 어선 장면의 개요 페이지에는 등장인물 목록이 있고, 그 하단에 “Dupe-Nega 공보부” 및 ""황기사 공보부”라고 적혀 있다. S#85 C#1 “어망 속의 눈이 부시게 뛰는 고기들” 콘티 하단에도 “Dupe-Nega 공보부 황기사”라 적혀 있다. 이로 미루어, 영화 후반, 어선 그물에 가득찬 은갈치가 화면 가득한 장면은 아마도 공보부에서 보유 중인 필름을 듀프 네가로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콘티와 영화의 후반 부분이 상이하다. 콘티의 마지막 장면은 S#91A 선창가 장면으로, 7개 컷으로 구성되었다. 기두, 용옥, 서 노인은 배에 짐을 싣고 떠난다. 울면서 떠나는 용옥과 그 가족을 용빈과 강극이 배웅한다. 용빈도 떠나겠다고 하자 강극이 용빈에게 청혼한다. 용빈은 부정하듯 고개를 흔들고 돌아서 가 버린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통영을 떠나기 위해 선창가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는 용빈에게 용옥과 기두가 와서 배웅한다. 용옥과 기두는 통영에 남기로 한다. 쪽배에서 물을 퍼내는 노파를 보며 용빈은 강극을 떠올리고, 강극이 용빈에게 달려와 청혼한다. 아버지가 언덕 위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고, 용빈은 강극의 청혼을 받아들여 통영에 남기로 한다. 컬렉션에 소장된 육필 시나리오(관리번호 CKN002522_01)와 이 콘티의 후반 장면 그리고 영화의 후반 장면을 비교해 보면, 엔딩 장면에 대한 유현목 감독의 고민이 엿보인다.
김약국의 딸들 · 1960년대 · 콘티 · 온라인 열람
DCKT000034_01
의상 관련 메모Other materialcopies: 2
<김약국의 딸들>(유현목, 1963) 의상에 관한 메모이다. 통지서 뒷면에 빨간 색연필로 작성한 것으로, 2월 3일 최성호(김봉룡 역)의 의상과 2월 4일 박노식(기두 역)의 의상이 적혀있다. 1963년 2월 3일은 최성호가 등장하는 S#4~S#7 중의 일부를 촬영한 날로 보인다.
김약국의 딸들 · 1960년대 · 제작실무자료 · 온라인 열람
ZK0000501_01
金藥局의 집 平面Other materialcopies: 2
<김약국의 딸들>(유현목, 1963)의 주된 공간인 김 약국네 집 평면도이다. 유산지에 검은색 연필로 그린 평면도로, 대문, 헛간, 방, 부엌, 광, 마루, 마당, 장독, 대나무 숲 등 집 내부의 평면과 크기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김약국의 딸들 · 1960년대 · 제작실무자료 · 온라인 열람
ZK0000503_01
스토리라인Other materialcopies: 2
두 장의 원고지에 육필로 정리한 <김약국의 딸들>(유현목, 1963) 시퀀스 개요문. 전체 스토리가 13개 단락으로 정리돼 있는데, 시퀀스와 신으로 나누어 놓은 듯하다. 예를 들어, 단락 1은 S#1~7로 성수의 부친과 모친의 스토리이며, 단락 2는 S#8~12로 성장한 성수의 결혼 및 부모님이 살던 집에 관한 스토리이다. 원고지 첫 장은 단락 9까지의 내용이 적혀 있는데, 시퀸스 개념과 유사하게 스토리를 구분해 놓았다. 원고지 두 번째 장에는 단락 10부터 13까지가 정리돼 있는데, 시퀀스에 비해 좀 더 큰 덩어리로 스토리를 구분해 놓았다. 한편 엔딩 부분에 해당하는 단락 13은 "선장, 용빈, 용란 기두와 죽음, 용옥 성경 얘기, 아버지 전송, 용빈 서울로" 식으로 간략하게 서술돼 있다. 실제 완성된 영화의 결말과는 다르나, 컬렉션의 「<김약국의 딸들> 육필 시나리오: 일부 장면(원고지)」(관리번호 CKN002522_01)와 「<김약국의 딸들> 콘티: S#2~S#91A (일부 신 누락)」(관리번호 DCKT000034_01)의 결말과 동일하다. 한편 정리된 단락이 끝나는 지점마다 O.L(오버랩) 혹은 F.O(페이드 아웃) 등의 화면 전환 효과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김약국의 딸들 · 1960년대 · 제작실무자료 · 온라인 열람
ZK0000504_01
시나리오 관련 메모Other materialcopies: 2
원고지에 쓴 <아리랑>(유현목, 1968) 시나리오 관련 메모이다. 주로 마을을 묘사하는 내용이고, 앞에 쓰여진 숫자는 신 번호로 추정되지만 인쇄된 시나리오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4, 5, 6은 영화 도입부에서 우체부가 마을을 돌며 배달할 때 보이는 전경을 묘사하는 지문으로 보인다. 유현목 감독이 아닌 다른 이의 필체로 여겨진다.
아리랑 · 1960년대 · 제작실무자료 · 온라인 열람
ZK0000532_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