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rce: Korean Film Archive (KOFA) collection register, via data.go.kr
Collection names and descriptions are shown in the archive's original Korean; no English version is 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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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ID: USMC 102817) / 1952년 8월의 대홍수로 임진강에 있는 X-RAY Bridge가 파손된 모습을 다리 북단에서 촬영한 것이다. X-RAY Bridge는 임진강을 따라 건설된 작전교량 중 하나로서, 미군은 훗날 이 위치에 교량을 재건한 후 리비교(Libby Bridge)라고 명명했다. 경기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431 인근에 위치했으며, 오늘날 리비교 역사문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다리 외에도 물살이 강하고 홍수가 잦은 임진강의 작전교량들은 매년 여름 자주 파손, 개보수의 과정을 거쳤다. X-RAY Bridge의 역사는 1951년 10월 임진강 하류 X-ray 지점(군사작전상 명칭인 'X' 지점을 군용음성기호로 부른 것)에 미 제1군단 공병대가 부교(浮橋)로 처음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제62공병건설대대는 부교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1951년 12월에 저형고(低桁高, low-level bridge)로 대체하여 건설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52년 2월부터 4월까지는 교량의 폭을 확장하고 고형고(高桁高, high-level bridge) 구조로 새로 건설했다. 그러나 이해 7월 30일의 기록적인 폭우로 상류 교량이 파손되면서 떠내려온 잔해로 인해 교각 2개가 파손됐고, 이어 8월 24일부터 이틀 동안 내린 폭우로 교각 6개에 해당하는 범위가 추가로 파손됐다. 원 소장처인 미국 남캐롤라이나대학 도서관의 카탈로그 정보에 따르면 이 영상은 1952년 8월 1일에 촬영됐는데, 영상에서 확인되는 교량의 파손상태는 훨씬 심각하여 8월 하순의 2차 폭우 이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제 촬영시기는 폭우가 멎은 직후인 8월 26일 이후로 추정된다. 이 해 파손된 X-RAY Bridge는 한동안 임시 부교로 대체됐으며, 미 제84공병건설대대가 보다 견고한 콘크리트 기반의 구조로 재건을 시작, 1953년 7월에 새 다리가 완공되면서 리비교(Libby Bridge)로 명명됐다.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 1952 · 작전교량 · 미 해병대 · US Marine Corps Collection
MK064495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4118) / 1952년 10월부터 약 1년 간 추진된 ‘Yongsan Project(용산 프로젝트)’, 즉 용산기지 재건 및 미군 재배치 계획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던 1953년 8~9월 시점에 새 통신시설을 설치, 운용하는 모습을 담은 일련의 기록영상(111-LC-34115, 111-LC-34116, 111-LC-34117, 111-LC-34118) 중 하나이다. 용산 프로젝트는 전, 후방으로 나뉘어 있던 미8군 지휘소를 단계적으로 용산으로 통합 이전하여 상설기지화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대구 후방지휘소의 군수참모부(G4) 및 기술병과부서가 먼저 용산으로 재배치되고 이어 행정병과부서, 그 다음으로 서울대 문리대 건물(현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예술인의 집)의 전방지휘소가 용산에 합류하기로 예정됐다. 이 영상은 통신시설을 구축하는 장면에만 슬레이트에 ‘8A Rear OPR's Room’(미8군 후방 통신운용실)로 표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시점은 이미 대구 후방기지의 용산 합류 이후이므로 당시 기준으로 ‘후방기지에서 용산기지로 이전한 통신센터’ 또는 '동숭동 전방지휘소 대비 후방에 구축 중인 용산기지'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통신시설 구역의 복구작업은 용산 프로젝트에서 전기, 수도, 난방 등 기간시설 다음으로 최우선순위로 추진되어 이미 1952년 10월 16일에 완료됐고 위치는 용산기지 North Post 구역의 북단, 이후 캠프 코이너(Camp Coiner)로 명명된 부지였다. 이 영상은 캠프 코이너의 통신센터가 운용 중인 9월의 구역별 근무 장면에 이어 8월에 각 구역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기록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National Archives · 1953 · 기지 통신센터 구축 · 미 육군 통신대
MK064472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4117) / 1952년 10월부터 약 1년 간 추진된 ‘Yongsan Project(용산 프로젝트)’, 즉 용산기지 재건 및 미군 재배치 계획이 진행이 막바지에 도달한 1953년 8~9월 시점에 새 통신시설을 설치, 운용하는 모습을 담은 일련의 기록영상(111-LC-34115, 111-LC-34116, 111-LC-34117, 111-LC-34118) 중 하나이다. 용산 프로젝트는 전, 후방으로 나뉘어 있던 미8군 지휘소를 단계적으로 용산으로 통합 이전하여 상설기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통신시설 구역의 복구작업은 용산 프로젝트에서 전기, 수도, 난방 등 기간시설 다음으로 최우선순위로 추진되어 이미 1952년 10월 16일에 완료됐고 위치는 용산기지 North Post 구역의 북단, 이후 캠프 코이너(Camp Coiner)로 명명된 부지였다. 이 영상은 구축이 완료된 캠프 코이너 통신센터의 각 구역에서 통신망 운용, 메세지 송수신 유형과 프로세스를 기록한 데 이어 반송파 통신장비실(Carrier Operations Room)이 한창 구축되던 한 달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National Archives · 1953 · 기지 통신센터 구축 · 미 육군 통신대
MK064471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4116) / 1952년 10월부터 약 1년 간 추진된 ‘Yongsan Project(용산 프로젝트)’, 즉 용산기지 재건 및 미군 재배치 계획이 진행이 막바지에 도달한 1953년 8~9월 시점에 새 통신시설을 설치, 운용하는 모습을 담은 일련의 기록영상(111-LC-34115, 111-LC-34116, 111-LC-34117, 111-LC-34118) 중 하나이다. 용산 프로젝트는 전, 후방으로 나뉘어 있던 미8군 지휘소를 단계적으로 용산으로 통합 이전하여 상설기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통신시설 구역의 복구작업은 용산 프로젝트에서 전기, 수도, 난방 등 기간시설 다음으로 최우선순위로 추진되어 이미 1952년 10월 16일에 완료됐고 위치는 용산기지 North Post 구역의 북단, 이후 캠프 코이너(Camp Coiner)로 명명된 부지였다. 이 영상은 이러한 중심 통신망이 구축된 이후에도 서울 인근의 각 참호 간 유선 통신망의 구축 작업과 이동식 무선 통신차량의 세팅 작업이 진행됐음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통제된 상황에서의 반복 촬영 장면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기록 외에 교육, 홍보의 목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National Archives · 1953 · 기지 통신센터 구축 · 미 육군 통신대
MK064470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185) / 이 영상은 1952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2대 대통령 취임식과 7회 광복절 행사를 담고 있다. 이날 행사는 재선된 이승만 대통령과 함태영 부통령의 취임식을 겸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당일 행사장에는 도쿄 극동사령부에서 온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주한미대사 무초, 미8군사령관 밴 플리트 외에도 한국 삼부요인과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오전 10시 정각에 개최되었다. 국민의례 이후 헌법 제54조에 의한 대통령취임선서, 신익희 민의원 의장의 국회의 개회 선포, 이 대통령의 취임사와 클라크 대장의 축사, 대통령 깃발 증정, 대통령찬가 제창(이화여자중학교 학생들)이 이어졌고,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신 민의원 의장, 김 대법원장, 국무위원 기타 각계로부터 꽃다발 증정이 있었다. 그 이후 장면 국무총리의 선창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만세 삼창을 하고 오전 11시에 식을 마쳤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국전쟁은 공산제국주의와 자유주의 세계가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의 정치야욕과 야당 정치 탄압의 결과물이었다. 1951년 5월 25일 이승만은 국회해산을 강행하고자 부산과 경남, 전남북 23개 시, 군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어서 이승만 정권은 5월 26일 내각제를 주장하는 야당 의원 50여 명을 헌병대를 동원해 언행하고 의원 12명을 국제 공산당 관련 혐의로 구속하는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켰다. 1952년 7월 4일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군경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했다. 이에 장택상과 신라회 출신 국회의원들은 기립하는 방식으로 투표하여 '발췌 개헌안'(대통령 직선제 및 내각책임제 혼합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952년 8월 5일 대통령 직선 투표로 이승만이 74.6%를 획득, 무소속 조봉암(11.4%)과 이시영(10.0%) 후보를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National Archives · 1952 · 기타 · 미 육군 통신대
MK064455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283) / 이 영상은 1952년 8월 17일 미 제8군 전방 사진부대(EUSAK ADV PHOTO)가 미국 심리전팀의 대북 확성기 방송 과정을 촬영한 것이다. 지프와 트레일러로 장비를 옮긴 후 확성기를 조립하고 마이크와 확성기를 앰프에 연걸한 후 정해진 대본을 읽어 확성기를 출력하게 하는 과정이 담겼다. 한국전쟁기 미8군의 심리전은 1950년 7월 17일 민간인 국장 1명과 장교 2명, 사병 2명으로 정보참모부(G-2)에 소속되었고 1951년 1월 24일 일반명령 40호에 따라 작전참모부(G-3)로 임무를 이관시켰다. 이 시기 심리전은 공중에서 삐라 살포, 한국군 여성을 이용한 공중 확성기 방송, KBS, 미국의 소리(VOA), 유엔사령부의 소리(VOUNC) 등의 방송을 통한 방식 등이 있었다. 확성기를 이용한 심리전은 미8군의 경우 가까운 전선에서 북한인민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들을 대상으로 자국의 언어로 투항을 권유하거나 향수를 자극하는 식이었다.
National Archives · 1952 · 심리전 · 미 육군 통신대
MK064457_P01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995) / 이 영상은 1952년 9월 17일 경인선을 달리던 통근기차가 오전 7시 23분에 영등포를 3.3km 앞둔 지점의 어느 천을 건너던 중 기관실 보일러 폭발로 인해 철교 위에서 급정거하면서 전복됐던 사건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사고 현장 확인, 부상자 응급조치, 유해 수습 및 소지품 확인, 선로 복구 작업 및 전복 차량 처리 과정이 영상으로 담겼다. 당시 사고지점을 ‘구로천철교’라고 언급한 기사가 있으나 현재의 안양천 어느 지점을 건너는 철교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無名鐵橋(무명철교)”로 보도한 기사도 확인된다. 이날 오후 4시경 파악된 희생자는 15명 사망, 1,700여 명 중경상자에 이르렀으며, 인근의 이탈리아 제68적십자병원에서 급파된 응급비상대기반은 총 161명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그 중 39명의 중상자들을 병원에 후송, 회복 치료를 진행했다.
National Archives · 1952 · 기차 사고 · 미 육군 통신대
MK064464_P01
[이 영상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996) / 이 영상은 1952년 9월 17일 경인선을 달리던 통근기차가 오전 7시 23분에 영등포를 3.3km 앞둔 지점의 어느 천을 건너던 중 기관실 보일러 폭발로 인해 철교 위에서 급정거하면서 전복됐던 사건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사고 현장 확인, 부상자 응급조치, 유해 수습 및 소지품 확인, 선로 복구 작업 및 전복 차량 처리 과정이 영상으로 담겼다. 당시 사고지점을 ‘구로천철교’라고 언급한 기사가 있으나 현재의 안양천 어느 지점을 건너는 철교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無名鐵橋(무명철교)”로 보도한 기사도 확인된다. 이날 오후 4시경 파악된 희생자는 15명 사망, 1,700여 명 중경상자에 이르렀으며, 인근의 이탈리아 제68적십자병원에서 급파된 응급비상대기반은 총 161명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그 중 39명의 중상자들을 병원에 후송, 회복 치료를 진행했다. 동일한 사고 현장을 기록한 다른 영상(111-LC-30995)과 유사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으나 사체 수습 작업에 더 초점을 두고 촬영되어 전반적인 사고 복구 및 처리 과정을 확인하기는 다소 어렵다.
National Archives · 1952 · 기차 사고 · 미 육군 통신대
MK064465_P01
원 소장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ID: USMC 100837) / 1943년 11월 미 해병대의 타라와 전투 상황과 태평양전쟁 징용 조선인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비통제적’ 푸티지 영상이다. 타라와(Tarawa)는 중앙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길버트 제도의 남쪽에 위치한 환초로 이루어진 섬이다. 미군은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길버트 제도(현 키리바시 공화국)로 진격하여 갈바닉 작전으로 알려진 작전을 수행했다. 이 작전은 태평양 제도의 일본 전초기지를 장악하기 위한 연합군의 '섬 호핑'(Island Hopping)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이를 통해 연합군은 태평양 전역에 걸쳐 공중전에서의 우위와 일련의 기지를 구축하여 일본 본토로의 공격로를 확보하려 했다. 1943년 11월 20일, 미 제2해병사단과 육군 제27보병사단 병력 약 35,000명이 타라와의 베티오 섬과 마킨 환초에서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태평양 전쟁의 기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미군 병력이 집결한 것이었다. 마킨섬에서는 일본군의 방어가 약해 미군 사상자가 적었지만, 베티오섬의 요새화되고 집중된 방어로 인해 타라와 전투가 진행된 76시간의 전투 동안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단기간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베티오섬은 타라와 환초에서 가장 큰 섬이다. 전투 당시 이 길고 좁은 섬에는 일본군 비행장과 길버트 제도의 일본군 대다수가 주둔하고 있었다. 1943년 11월까지 일본군 2,500여 명이 일본인 건설 노동자 1,000여 명과 한국인 강제 징용자 1,200여 명과 함께 이 섬을 방어했다.1943년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미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로 6,400여 명의 일본군, 미군, 한국인이 사망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으로 보이는 포로 10여 명이 등장하는데, 헤어진 군복을 입고 있으며 절반 가량은 상의를 걸치지 않았다. 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의 타라와 전투 기록에 의하면,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1,200여 명에 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사망했으리라 보지만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 없다. 미국정부와 기관들에 의해 발굴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중에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도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 1943 · 태평양전쟁과 강제징용노동자 · 미 해병대 · US Marine Corps Collection
MK064491_P01
원 소장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ID: USMC 100896) / 1943년 11월에 동태평양의 타라와 환초(Tarawa Atol)에 있는 베티오 섬(Betio Island)에서 촬영된 푸티지 영상이다. 1943년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진 타라와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에 미군과 영국군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과 생포된 일본군 포로 및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촬영지인 타라와 아톨은 키리바시의 옛 수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던 섬이다. 1943년 11월 20일,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일본군과 미군 및 연합군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고, 76시간 동안 지속된 격렬한 전투 끝에 총 6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결국 미 해병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작은 섬에서 3일간 벌어진 전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시간 및 공간 대비 사상자 비율이 다른 어떤 전투보다도 높았다. 섬은 순식간에 파괴되고 해변에는 수천구의 시체가 쌓여 있고 도처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상황이었다. 영상에 담긴 것은 전투가 끝난 직후에 휴식을 취하는 미해병대와 영국군의 여유로운 모습이지만, 온전히 승리한 전투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타라와 작전에 동행했던 전투 특파원들이 전투의 현장을 언론에 보도하게 되면서, 전투가 가져온 상당한 인명 피해와 성과 여부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타라와의 피비린내 나는 해변”과 같은 헤드라인을 내건 기사를 비롯하여 당시 일간지들은 이 전투의 참상과 피해 규모를 알렸고, 맥아더 장군은 “타라와에서와 같은 해군의 정면 공격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미국인 인명 학살”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국방부 장관에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전투에서 치른 대가가 매우 크고 혹독했기 때문인데, 의회에 특별 조사를 진정할 정도로 타라와 전투의 성과 문제는 간단히 않은 것이었다.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 1943 · 태평양전쟁과 강제징용노동자 · 미 해병대 · US Marine Corps Collection
MK064492_P01
원 소장처: 미국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ID: HNR 31.272) / 이 영상은 오늘의 뉴스(NEWS of the DAY)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된 뉴스릴로서, 1960년 4월혁명으로 인한 이승만 거취에 대한 대중의 관심, 4월혁명에서 희생된 시민의 장례식 및 애도의 분위기, 그리고 하야 결정 직후의 혼란스런 의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은 대규모의 군중들이 어떤 곳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952년 제2대 대선 홍보물을 포함해 이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몇가지 장면을 보여준 후 다시 어느 대로변에 모여든 군중들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군중에서 시작해서 군중으로 끝나는 이 시퀀스는 4월혁명의 결정적인 순간 이후 이승만의 행보에 대중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시퀀스는 4월혁명의 과정에서 숨진 희생자의 장례식과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희생자의 관과 그 옆에 찬송가를 부르며 모여있는 시민들의 추도 장면, 추도행렬 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 여성들과 관 앞에 모여들어 슬퍼하는 군중들, 아이 옆에서 엉엉 울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차례로 보여 진다. 그들의 슬픔과 애도의 분위기가 잘 전해지고 있다. 4월혁명 동안 숨진 사람들의 수는 약 200여 명, 부상자수는 약 6천 여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 시퀀스는 국회에서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지는 광경이 담겼는데,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승만의 하야와 차기 내각의 구성을 둘러싼 국회의 혼란스러운 모습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 1960 · 4.19혁명 · Hearst Corporation · Hearst Metrotone Newreel Collection - News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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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ID: HNR 31.273) / 이 영상은 오늘의 뉴스(NEWS of the DAY)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된 뉴스릴이며,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리 시위 장면이 등장하고, 시위대가 이기붕 저택을 공격하는 모습, 이기붕이 4월 28일 새벽 5시에 아내 박마리아, 아들 이강석, 이강욱과 함께 경무대 관사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허정 과도정부 수반이 등장하며, 시민과 학생들이 탱크에 올라타고 행진하는 모습도 기록됐다. 이 탱크 장면은 4월혁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 장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진곡풍의 연주곡이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 1960 · 4.19혁명 · Hearst Corporation · Hearst Metrotone Newreel Collection - News of the Day
MK064489_P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