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조선Stills
오케레코드사의 영화제작부가 경성촬영소 기술진의 도움으로 제작한 <노래조선>(김상진, 1936)의 한 장면. 1936년 2월부터 3월까지 오케연주단의 일본 공연 영상과 국내에서 촬영한 '코믹 춘향전'을 편집한 것으로, '조선 최초의 음악영화'이다. 고복수, 이난영, 김해송 등 오케레코드사 전속 가수들이 출연하고 오케째즈밴드가 연주했다.
1930년대 · 노래조선 · 장면 사진 · OK레코드
DSKT014621_04
노래조선Stills
오케레코드사의 영화제작부가 경성촬영소 기술진의 도움으로 제작한 <노래조선>(김상진, 1936)의 한 장면. 1936년 2월부터 3월까지 오케연주단의 일본 공연 영상과 국내에서 촬영한 '코믹 춘향전'을 편집한 것으로, '조선 최초의 음악영화'이다. 고복수, 이난영, 김해송 등 오케레코드사 전속 가수들이 출연하고 오케째즈밴드가 연주했다.
1930년대 · 노래조선 · 장면 사진 · OK레코드
DSKT014622_04
장화홍련전Stills
경성촬영소가 <춘향전>(이명우, 1935), <아리랑고개>(홍개명, 1935)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발성영화 <장화홍련전>(홍개명, 1936). 고려영화주식회사(대표 이창용)가 조선에서 배급했고, 일본 개봉은 산에이샤가 진행했다. 오사카 경찰이 조선인이 몰려드는 상황을 우려해 <장화홍련전>의 상영을 금지하여 논란이 되었다. 장화 역은 문예봉, 홍련 역은 지경순이 연기했다.
1930년대 · 장화홍련전 · 장면 사진 · 경성촬영소
DSKT014617_04
장화홍련전Stills
경성촬영소가 <춘향전>(이명우, 1935), <아리랑고개>(홍개명, 1935)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발성영화 <장화홍련전>(홍개명, 1936). 고려영화주식회사(대표 이창용)가 조선에서 배급했고, 일본 개봉은 산에이샤가 진행했다. 오사카 경찰이 조선인이 몰려드는 상황을 우려해 <장화홍련전>의 상영을 금지하여 논란이 되었다. 장화 역은 문예봉, 홍련 역은 지경순이 연기했다.
1930년대 · 장화홍련전 · 장면 사진 · 경성촬영소
DSKT014618_04
장화홍련전Stills
경성촬영소가 <춘향전>(이명우, 1935), <아리랑고개>(홍개명, 1935)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발성영화 <장화홍련전>(홍개명, 1936). 고려영화주식회사(대표 이창용)가 조선에서 배급했고, 일본 개봉은 산에이샤가 진행했다. 오사카 경찰이 조선인이 몰려드는 상황을 우려해 <장화홍련전>의 상영을 금지하여 논란이 되었다. 장화 역은 문예봉, 홍련 역은 지경순이 연기했다.
1930년대 · 장화홍련전 · 장면 사진 · 경성촬영소
DSKT014619_04
나그네Stills
성봉영화원의 영화 <나그네>(이규환, 1937)의 장면 사진. 조선에서의 로케이션 외에는 세트 촬영과 녹음 전부를 일본의 신코키네마 오이즈미(大泉)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일본 배급에서는 도와상사가 홍보했다. 일본 개봉 제목은 <여로>. 문예봉은 주인공 복룡의 아내로 출연했다. 이 사진은 일본 쪽 홍보 이미지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1930년대 · 나그네 · 장면 사진 · 성봉영화원
DSKT299375_03
도생록Stills
천일영화사 제1회 작품 <도생록>(윤봉춘, 1938)의 한 장면. 유치진 원작, 윤봉춘 연출. 강재봉 역의 이금룡.
1930년대 · 도생록 · 장면 사진 · 천일영화사
DSKT014623_04
도생록Stills
천일영화사 제1회 작품 <도생록>(윤봉춘, 1938)의 한 장면. 가난 때문에 딸 순이를 부호의 첩으로 들여보내려 했던 강재봉(이금룡 분)과 순이와 사랑하던 사이인 석주(최운봉 분).
1930년대 · 도생록 · 장면 사진 · 천일영화사
DSKT014624_04
한강Stills
방한준 감독의 영화 <한강>(1938)의 로케이션 촬영 현장.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 6일,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현장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25_04
한강Stills
방한준 감독의 영화 <한강>(1938)의 로케이션 촬영 현장.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 6일,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현장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29_04
한강Stills
방한준 감독의 영화 <한강>(1938)의 로케이션 촬영 현장.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방한준의 고향인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 6일,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현장 사진 · 반도영화사
DSKT301713_03
한강Stills
방한준 감독의 영화 <한강>(1938)의 한 장면. 한강 나룻터의 뱃사공 박 노인(윤봉춘 분)과 그의 아들(이금룡 분). <한강>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 6일,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26_04
한강Stills
방한준 감독의 영화 <한강>(1938)의 한 장면. <한강>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 6일,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27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0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1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2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3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6_04
국경Stills
영화 <국경>(최인규, 1939)의 장면 사진. 빈농 김용태의 딸 영자로 분한 김소영, 그리고 악독한 채권자이면서 영자를 짝사랑하는 동일 역의 이금룡. <국경>은 천일영화사가 <도생록>(윤봉춘, 1938)에 이어 제2회 작품으로 공개한 영화이다. 천일영화사의 기획부장 누카가 기요토(額賀淸人)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배급 계약을 추진했다. <국경>의 조선 배급은 고려영화, 일본 배급은 산에이샤가 맡았다. 최인규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제작된 <국경>은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 빈농 가족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소영은 색주가를 전전하며 타락해가는 ‘영자’ 역을 통해 요염하면서도 애수를 자아내는 연기로 주목받았다.
1930년대 · 국경 · 장면 사진 · 천일영화사
DSKT014637_04
국경Stills
최인규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국경>(1939)의 장면 사진. 물방앗간에서 격투하는 장면이다. 빈농 김용태(태을민 분)가 어려서부터 기른 고아 세림(최운봉 분)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신의주에서 밀수꾼이 된다. 세관에 쫓기다가 귀향한 세림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국경>은 천일영화사가 <도생록>(윤봉춘, 1938)에 이어 제2회 작품으로 공개한 영화이다. 천일영화사의 기획부장 누카가 기요토(額賀淸人)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배급 계약을 추진했다. <국경>의 조선 배급은 고려영화, 일본 배급은 산에이샤가 맡았다. 최인규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제작된 <국경>은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 빈농 가족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1930년대 · 국경 · 장면 사진 · 천일영화사
DSKT014638_04
국경Stills
최인규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국경>(1939)의 장면 사진. 빈농 김용태(태을민 분)가 어려서부터 기른 고아 세림(최운봉 분)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신의주에서 밀수꾼이 된다. 세관에 쫓기다가 귀향한 세림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사진은 치사죄로 잡혀가는 세림(최운봉 분), 세림과 헤어지게 된 영자(김소영 분)의 모습이다. <국경>은 천일영화사가 <도생록>(윤봉춘, 1938)에 이어 제2회 작품으로 공개한 영화이다. 천일영화사의 기획부장 누카가 기요토(額賀淸人)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배급 계약을 추진했다. <국경>의 조선 배급은 고려영화, 일본 배급은 산에이샤가 맡았다. 최인규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제작된 <국경>은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 빈농 가족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소영은 색주가를 전전하며 타락해가는 ‘영자’ 역을 통해 요염하면서도 애수를 자아내는 연기로 주목받았다.
1930년대 · 국경 · 장면 사진 · 천일영화사
DSKT014639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4_04
한강Stills
<한강>(방한준, 1938)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로, 경기도 이천의 부원리에서 촬영을 시작해 한강 상류에서 4개월 여간 장기 촬영을 했다. 1938년 5월에 조선 경성의 명치좌와 우미관에서 개봉한 <한강>은 이듬해인 1939년 7월 19일에 일본의 도쿄 히비야영화극장에서 개봉했다. 조선영화가 도쿄의 대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강>이 처음이었다("조선영화 <한강>, 《조선일보》, 1939.7.08., 4면). 주로 유럽영화 배급에 주력해온 일본의 도와상사(東和商事)가 <나그네(旅路)>에 대한 일본 평단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한강>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고 일본 배급을 진행했다. 도쿄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재일본 조선인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 한강 · 장면 사진 · 반도영화사
DSKT014635_04
수선화Stills
영화 <수선화>(김유영, 1940)의 장면 사진. 조선영화주식회사가 <무정>(박기채, 1939), <새출발>(이규환, 1939)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작품으로, 김유영 감독의 유작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의 노력을 다했던 김유영이 1940년 1월 4일 사망한 후 완성이 미뤄지던 <수선화>가 같은 해 5월에 완성되자,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이재명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배급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개봉되지는 못했고, 조선에서는 1940년 8월에 성보극장에서 공개되었다. 조혼한 남편을 일찍 여의고 수절하던 여성이 재산을 탐내는 사람들이 퍼뜨린 소문으로 누명을 쓰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자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내용인데, 문예봉이 꼬마신랑에게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 유 씨를 연기했다. 정찬조는 유 씨가 양자로 들이는 소년 재길, 김일해는 백 선생 역을 맡았다.
1940년대 · 수선화 · 장면 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DSKT014641_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