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키다 켄지Stillscopies: 2
스스키다 겐지(薄田二, 1897~1972)는 1925년 막심 고리키 원작 〈밑바닥에서〉의 경찰 역할을 맡으며, 쓰키지소극장 무대에 섰다. 1931년 일본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에 가입했다. 조선영화에서는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에서 다시로 선생 역을, <젊은 모습>(도요다 시로, 1943)에서는 다카야마 교장 역을 연기했다. 1940년 신쓰키치극단이 탄압을 받아 해산한 후에는 다이에이(大映)의 나가타 마사카즈(永田雅一)의 소개로 시대극에 다수 출연했다. 1946년 다키자와 오사무(修) 등과 함께 도쿄예술극장을 만들었으며, 1947년에는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제2차 신쿄극단에 참가했고, 1957년 7월에는 일본 연극인 대표로 무라야마 도모요시, 우노 주키치(宇野重吉) 등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사진의 왼쪽 하단에는 "H. JOKAKU / KYOBASHI"라는 글자가 압인돼 있는데, 도쿄 교바시(京橋)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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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히로 요시코Stillscopies: 2
스에히로 요시코(末弘美子)는 "도쿄 교외의 유원지인 화월원의 동화가극부"출신으로, 쇼치쿠가극단에서 활동하며 쓰키치소극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1934년 신쿄극단 설립 시 입단했으며 가타오카 데쓰 원작 <신부학교>, 체홉 원작 <곰>, <화산지대>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경성일보』 1938.10.21., 4면). 신쿄극단의 <춘향전> 도쿄 공연 때는 기생을 연기했지만, 조선 공연에서는 춘향의 어머니 월매를 연기했다. 1941년 도요타 시로(豊田四)의 영화 〈내 사랑의 기록 わが愛の記〉(도쿄발성영화제작소)에 세키 시호코(志保子)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은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조선 공연 특집 보도에 싣기 위해 배경을 지운 것으로, 실제 이 사진은 『경성일보』 1938년 10월 21일자 4면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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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킨조Stillscopies: 2
신긴조(信欣三, 1910~1988)는 도교좌익극장에서 활동하다가 1933년 영화 <강건너 청춘 河向の春>(기무라 소토지)에 출연했다. <강건너 청춘>에는 도쿄에 있던 조선 영화인들이 참여했고, 특히 이병우(이노우에 칸)가 카메라 보조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34년 신쿄극단 창립멤버로 활동했고, 1940년에는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신쿄극단의 나카무라 에이지(中村二), 다키자와 오사무(澤修), 미요시 히사코(三好久子), 우노 주키치(宇野重吉), 아카기 란코(赤木蘭子), 오자와 사카에(小) 등과 함께 치바 야스시(千葉泰樹)의 영화 <벽돌공장 여공 煉瓦女工>에 출연했다. 같은 해 무라야마 도모요시, 아카기 란코 등과 함께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신긴조는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춘향전> 도쿄 공연(1938년 3월)에서는 수인 역할을, 경성 공연(1938년 10월)에서는 농민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경성 공연 특집 보도를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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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키 란코Stillscopies: 2
아카기 란코(赤木蘭子, 1914~1973). 본명은 쓰쓰이 치요(筒井千代)이다. 1929년 신쓰키치극단에 입단, '아카기 란코'라는 이름으로 신극 무대에 서게 되었다. 1934년 극단 신협의 창립 멤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1939년 같은 극단의 신긴조(信欣三)와 결혼한 후 한 때 신 치요(信千代)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와 연극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는데, <춘향전>의 도쿄 공연 당시에는 몽룡 역할을, 조선 공연에서는 도쿄 공연 당시 춘향을 연기한 이치카와 하루요(市川春代)를 대신해서 춘향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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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 우자쿠Stillscopies: 2
일본 신쿄극단 극작가 아키타 우자쿠(1883~1962). 사진은 『경성일보』 1938년 10월 9일자 4면에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 일본 신쿄극단 극작가 및 연출자), 니키 도쿠진(仁木獨人, 일본 신쿄극단 매니저)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이 지면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춘향전"이라는 제목의 아키타 우자쿠의 글과 "신협극단 춘향전 공연에 부쳐"라는 제목의 기사 등, <춘향전> 공연에 거는 각계 각계 각층의 기대가 실려 있다. 또한 <춘향전> 경성 부민관 공연 광고 역시 같은 면에 실려 있다. 사진 위의 청회색 칠은 신문에 싣기 위해 인물 주변의 배경을 지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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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와 하루요Stillscopies: 2
신쿄극단 <춘향전> 일본 공연의 한 장면으로, 왼쪽의 여성이 춘향 역을 연기한 이치카와 하루요(市川春代, 1913~2004)이다. 이치카와 하루요는 일본 최초의 뮤지컬 영화 <오시도리가합전 鴛鴦歌合>(마키노 마사히로, 1939)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다. <춘향전> 조선 공연에 이치카와 하루요는 출연하지 않았고, 일본 공연에서 이몽룡을 연기한 아카기 란코(赤木蘭子)가 조선 공연의 춘향 역을 맡았다. 사진 위의 청회색 칠은 신문 등에 싣기 위해 이치카와 하루요 주변 배경을 지운 흔적이다. 사진의 이치카와 하루요 옆, 얼굴이 지워져 있는 인물이 일본 공연에서 이몽룡을 연기하고 있는 아카기 란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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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타다오Stillscopies: 2
이케다 타다오(池田忠夫, 1911~1999)는 전전에는 연극배우로, 전후에는 성우 및 TV드라마 배우로도 활동했다. 사진 뒷면에 배우의 이름과 함께 "客-扮 [객-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경성 공연 특집 보도를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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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토시오(추정)Stillscopies: 2
인물을 특정할 수 없지만 신쿄극단 배우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사진 뒷면에는 "今村*男"이라는 글자가 수기로 적혀 있다.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의 신쿄극단 소속 인물들의 사진과 함께 있는 것으로 미루어,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경성 공연 특집 보도를 위해 수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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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 유리코 기증 인물미상Stillscopies: 2
인물 미상의 초상사진. 사진 오른쪽 하단에 "Tenko,Keijo"라는 글자가 압인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당시 경성의 일본인 상업 사진가였던 무라카미 텐코(村上天紅, 1887~1958)가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라카미 텐코는 청일전쟁 전후에 조선으로 와 조선통감부의 어용사진사로 일했던 아버지 무라카미 텐신의 뒤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한 인물로, 조선총독부의 생활조사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많은 조선의 사진을 남긴 바 있다.
초상 · 무라카미 덴코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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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 유리코 기증 인물미상Stillscopies: 2
인물 미상의 스냅사진. 덕수궁 쪽에서 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1927년 건립) 쪽을 향해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성당 오른쪽의 건물은 조선체신사업회관으로, 1937년에 건립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 사진은 1937년 이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상/스냅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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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 유리코 기증 인물미상Stillscopies: 2
사진 왼쪽 하단에 "JANG AN PHOTO STUDIO"라는 글자가 압인돼 있으며, 사진 뒷면에는 "長安寫眞場 / 長安ビル二階 / TEL.K.2814"라 적힌 인장과 "남순 扮[분]"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사진 속 인물은 미상.
초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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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 유리코 기증 인물미상Stillscopies: 2
미상 인물 5인의 단체 사진. 사진 뒷면에 "八ネタスタテイオ (東京, 銀座, 五/一 電銀(57) 三九五一)"라는 내용의 도장이 찍혀있어, 도쿄 긴자의 하네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일상/스냅 · 긴자 하네다 스튜디오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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