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스 스미코Stillscopies: 2
기요스 스미코(州すみ子,1914-1997). 쇼치쿠소녀가극단 출신으로 1935년에 신쿄극단에 입단했다. <춘향전> 조선 공연에서는 행인 역을 맡았다.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와 결혼 이후인 1934년에 함께 도쿄예술좌를 만들었다. 1955년 무라야마가 사망한 후 동 예술좌의 대표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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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에이지Stillscopies: 2
나카무라 에이지(中村二, 1907~1966)는 프롤레타리아 연극 활동을 하다 신쿄극단에 입단했다. 이후 다수의 영화와 TV드라마에 출연했다.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춘향전> 도쿄 공연(1938년 3월)에서는 이방 역할을, 경성 공연(1938년 10월)에서는 호방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경성 공연 특집 보도를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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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 고이치Stillscopies: 2
니시 고이치(西康一, 1923~2006)는 일본의 전전프롤레타리아연극운동의 분기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전후에는 극단Q를 운영하며 주로 간사이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1930년에 신쓰키치극단(新築地劇)에 연구생으로 입단했고,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춘향전> 도쿄 공연(1938년 3월)에서는 호방 역할을, 경성 공연(1938년 10월)에서는 이방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사진의 뒷면에는 이방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극단 신협 5주년사에서는 니시 고이치가 일본 공연과 조선 공연에서 모두 호방을 맡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니시 고이치는 "책을 많이 읽으며, 다른 예술 장르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구보 사카에 선집 제6편』, 1951년, 주오고론샤). 사진은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경성 공연 특집 보도를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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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 모토사다 외 단체사진Stillscopies: 2
두 번째 줄 제일 오른쪽에 서 있는 남성이 니시키 모토사다(西龜元貞, 1910~1978)이다. 더 이상의 정보는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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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 유리코 기증 인물미상Stillscopies: 2
니시키 모토사다(西龜元貞, 1910~1978)로 추정되는 남성이 한 목조 건물 앞에 서 있다. 더 이상의 정보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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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도쿠진Stillscopies: 2
일본 신쿄극단의 매니저 니키 도쿠진(仁木獨人, 1908-1939). 사진은 『경성일보』 1938년 10월 9일자 4면에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 일본 신쿄극단 극작가 및 연출자), 아키타 우자쿠(秋田雨雀, 일본 신쿄극단 극작가)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이 지면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춘향전"이라는 제목의 아키타 우자쿠의 글과 "신협극단 춘향전 공연에 부쳐"라는 제목의 기사 등, <춘향전> 공연에 거는 각계 각계 각층의 기대가 실려 있다. 또한 <춘향전> 경성 부민관 공연 광고 역시 같은 면에 실려 있다. 사진 위의 청회색 칠은 신문에 싣기 위해 인물 주변의 배경을 지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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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카 토모타카(추정)Stillscopies: 2
다사카 도모타카(田坂具隆, 1902~1974)는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와 함께 일본 영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감독이다. 1938년 <다섯 명의 정찰병 五人の斥候兵>과 <흙과 병사들 土と兵隊>로 각각 제6회와 제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일본영화계의 거장 반열에 올랐다. 전후 대표작으로는 <햇빛 쏟아지는 언덕길 陽のあたる坂道>(1958)이 있다. 다사카 도모타카는 허영이 연출한 <그대와 나>(1941)의 감독지도를 맡아 조선에 온 적이 있는데, 사진은 그 당시에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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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사나에Stillscopies: 2
다카스기 사나에(高杉早苗, 1918~1995)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니시키 모토사다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쓴 <지옥의 계절 地獄の季節〉(오다 모토요시, 1949)에 출연한 바 있다(『新映』 6(2) 1949년 2월호, 36쪽. 후에 영화 제목이 <지옥의 귀부인 地獄の貴婦人>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 다카스기와 니시키가 함께 작품을 한 것은 패전 후지만 1930년대부터 다카스기 사나에는 이미 조선에서도 유명한 배우로, 니시키가 일하던 『경성일보』에서 다카스기의 특집 기사를 다루었으며, 그녀가 경성을 여러 번 방문했다는 점에서 이 사진은 니시키가 조선에 거주하던 시기에 수집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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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자와 오사무Stillscopies: 2
다키자와 오사무(澤修, 1906~2000)는 1924년 중학교 졸업 후 쓰키치소극장의 신인 양성을 위한 연구회에 참가하며 무대에 섰다. 1929년 오사나이 가오루(小山)의 급사로 극단이 분열되자 쓰키치소극장을 나와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의 도쿄좌익극장에 참가했다. 1934년 무라야마 도모요시 등이 신쿄극단을 결성할 때도 참가해, 신쿄극단의 1회 공연 작품부터 출연했다. 신쿄극단이 <춘향전>을 조선에서 공연할 때(1938년 10월) 이몽룡 역할을 맡았다. 도쿄 공연(1938년 3월)에서는 이몽룡과 춘향 역할을 둘 다 여성배우(차례로 아카기 란코 赤木蘭子, 이치카와 하루요 市川春代)가 맡았다. 사진은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조선 공연 특집 보도에 싣기 위해 배경을 지운 것으로, 실제 이 사진은 『경성일보』 1938년 10월 13일자 4면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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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하시 가즈코Stillscopies: 2
모토하시 가즈코(本槁和子). 신쿄극단의 <춘향전> 조선 공연에서 행인 역할을 맡았다. 신쿄가 해산한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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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시 히사코Stillscopies: 2
미요시 히사코(三好久子). 신쿄극단의 <춘향전> 조선 공연에서 기생을 연기했다. 1940년 극단 신쿄의 중심 멤버들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잡혀가면서 극단이 해산되자, 남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제작사 닛카쓰(日活)에 입사했다. 이후 영화 <벽돌여공 煉瓦女工>(치바 야스키, 1940년 제작·1946년 개봉, 난오영화사)에서 주인공 미사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는 등, 주로 영화계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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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 시호코Stillscopies: 2
신쿄극단의 <춘향전> 조선 공연에서 향단을 연기한 세키 시호코(志保子). 1938년 6월 우노 주키치(宇野重吉)와 결혼한 그녀는 같은 해 8월에 우노가 징집되자,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신쿄극단에 입단했다고 한다(『경성일보』 1938.10.22., 4면). 신쿄극단에 입단하기 전에는 신주쿠 물랑루즈, 신희극좌, 요시모토 쇼 등에서 활약했다. 1940년 3월 일본 최초의 드라마 <저녁 식사 전 夕餉前>에는 같은 신쿄 단원인 하라 센코(原泉子)와 함께, 1941년 도요타 시로(豊田四)의 영화 <내 사랑의 기록 わが愛の記>(도쿄발성영화제작소)에는 스에히로 요시코(末弘美子)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은 『경성일보』의 무라야마 도모요시 <춘향전> 조선 공연 특집 보도에 싣기 위해 배경을 지운 것으로, 실제 이 사진은 『경성일보』 1938년 10월 22일자 4면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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