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키쓰Flyers
전단지 구성 긴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인쇄하여 종이의 가운데를 접는 빌폴드(Billfold) 형식으로 인쇄되어 있으나, 쪽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편의상 1, 5, 6쪽에 해당하는 쪽을 앞면, 2, 3, 4쪽에 해당하는 쪽을 뒷면으로 하여 구분하고자 한다. 먼저 앞면은 칼라 인쇄된 표제 페이지와 더불어 대체로 파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노란색 계열의 단색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영화의 영어 표제와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 사진과 함께(1면), 주연 배우들의 약전(6면)이 실려 있다. 특이하게도 전단의 가운데(5면)에는 1956년 영화로 1958년 5월 10일에 중앙극장에서 개봉된 <대지의 사랑 Congo Crossing>의 토막 광고와 그 줄거리가 별도로 소개되어 있다. 뒷면은 (2, 3, 4면) 군청색에 가까운 단색으로 인쇄하였으며, 영화의 줄거리와 해설, 제작진과 출연진 소개를 실었다. “동남아시아 최초 개봉영화”라 하여 이 영화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봉되는 작품임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전단에는 배급사가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당시의 신문광고를 통해 삼광영화사에서 배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수도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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巴里의 戀人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먼저 앞면은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비롯한 여러 사진과 일러스트를 상하로 골고루 배치하였다. 하단부에는 큰 붉은색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적었으며, 그 위에는 “세계 최고의 패션모델 오드리 헵번!”이라는 홍보문구가 있다. 인쇄 당시의 오류로 색분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하단부로 갈수록 글자와 그림의 인쇄상태가 흐려지는 결함이 남아있다. 전단의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아래방향으로 “지성과 신감각과 우미(優美)의 패션모델! 뉴욕, 파리를 무대로 전개되는 도취의 명작!!”이라는 홍보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뒷면은 갈색 단색조로 영화의 출연진, 제작진, 줄거리, 해설 등을 수록하고, 감독 스탠리 도넌과 주연 배우들의 약전을 사진과 함께 수록하였다. 영화노트 1927년 조지 거슈윈이 작곡해 브로드웨이와 이스트엔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뮤지컬 <퍼니 페이스>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1927년 뮤지컬 초연 당시 주연배우였던 프레드 아스테어가 다시 주연을 맡았으나, 제작 과정에서 단 4곡의 뮤지컬 넘버를 제외하고 줄거리와 음악 전체가 완전히 개작되어 원래의 뮤지컬과는 완전히 관련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 당시 58세였던 아스테어와 29세였던 오드리 헵번이 연인으로 출연한다는 사실로 인해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고, 1957년 개봉 당시에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1964년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재개봉하게 되었고, 이때는 다시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어 현재는 1950년대 오드리 헵번의 대표 출연작 가운데 하나이자 명작 뮤지컬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58년 2월 1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2월 28일까지 14일 동안 당시로서는 장기 흥행하였고, 이후 7월 시네마코리아극장, 8월 경남극장, 9월 동화극장, 10월 서대문극장, 12월 초동극장, 이듬해인 1959년 3월 우미관, 4월 자유극장 등에서 꾸준히 재상영을 거쳤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단성사 · 불이무역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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菩提樹Flyers
전단지 구성 전단지 앞면은 여주인공 루트 로이베리크의 상반신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 배경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구성했다. 하단부는 그들이 살았던 도시의 강과 그 풍경을, 그리고 주인공과 아이들이 비누방울을 불며 한가롭게 노는 평화스러운 장면을 배치했다. 뒷면은 스탭과 캐스트 소개 및 줄거리 해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8 · 중앙극장 · 덕신공사 · 독일(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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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노酒店Flyers
전단지 구성 전단지 앞면은 마리아 셀이 부각된 사진과 배우들의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뒷면은 자세한 줄거리와 해설, 그리고 특이하게 이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2제정시대의 파리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해설은 앞서 개봉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 <금지된 장난>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과 에밀 졸라의 『두공마카르 총서』 중의 하나로서 1877년에 발표한 『목로주점』을 영화화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에밀 졸라의 『목노주점』 (L' Assommoir)를 기반으로 하지만 제목은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Gervaise 이다. 한국에서는 소설을 따라 <목노주점>을 제명으로 개봉했다. 원 영화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일생을 따라간다. 파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인간 군상들이 엮어내는 가난과 좌절, 그리고 폭력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는 삶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마리아 셀은 비극의 중심에 서서 모든 노력이 허망하게 무너져 버리고 결국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는 여주인공의 삶을 표현해서 1956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훌륭한 연기력은 한국에서도 격찬을 받았는데 이후 1958년작 <여자의 일생>뿐 아니라 1954년에 독일에서 출연한 <사랑과 죽음의 마지막 다리, Die letzte Brcke>도 1960년에 상영되었다. 르네 클레망 감독 역시 1957년 개봉한 <금지된 장난>(개봉당시는 ‘금지된 작난’)과 이 영화를 통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영화 감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지 채 십년이 되지 않았고 빈곤과 실업난에 시달리던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 전쟁의 비극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건조하게 조망하는 <금지된 장난>과 빈민가의 삶이 ‘레알하게 묘파’되었다는 평을 받은 <목로주점>은 관객에게 울림이 큰 영화였을 것이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8 · 명보극장 · 남성영화 · 합작(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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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活 : (일명)카츄샤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2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으로, 1면에는 주연 배우들의 사진 및 장면 사진을 인쇄하였고 표제 <부활> 아래에 “일명 카츄사”라는 문구를 넣었다. 2면의 경우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캐스트 및 스태프 명단 및 제작정보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전체가 붉은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된 영화의 스틸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앞면의 영화 표제 및 주연 배우 이름을 제외하고는 홍보 문구나 줄거리, 해설 등의 내용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아 매우 소략하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이 영화의 줄거리가 일제강점기부터 <카츄사>의 이름으로 소설과 연극, 영화 등을 통해 수십 년 간 당대 한국 대중에게 매우 폭넓게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노트 20세기 초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소설 가운데 하나였던 톨스토이의 <부활>은 주지하다시피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한국에 그 내용이 아주 잘 알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딱지본 등의 대중출판물, 연극, 영화(외국 영화 및 조선 영화) 등으로 여러 차례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당시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광고는 다소 드문 편이나, 그와는 별개로 실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59년 1월 9일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그 달 말일까지 무려 20일 넘게 상영되었고, 그 이후 계림극장, 경남극장, 동양극장, 초동극장 등을 거치며 그 해 8월까지 한 달도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재개봉, 재상영을 거쳤다. 한편 <경향신문> 1959년 4월 17일자에는 이 영화가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었을 당시 극장 측이 이 영화의 수익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수익을 챙기려다 세금포탈 혐의로 고발당해 극장 사장 이재준이 징역 1년 형을 구형받은 사건이 있었음을 보도하였는데, 이때 이 영화가 거두어들인 극장 수익이 9백만 환이라고 밝히고 있어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9 · 명보극장 · 기타 · 합작(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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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巴里의 燈불이다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된 전단지이나 이중 제 4면에는 인쇄된 내용이 없어 실제로는 3면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앞표지인 1면에는 찰스 린드버그로 분한 제임스 스튜어트의 사진을 크게 배치하였다. 붉은 글씨로 쓴 영화 표제 오른편으로는 하얀색 글씨로, “인류 최초의 장거!! 사나이의 의지로 엮어진 하늘의 일대 교향시!”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전단의 하단에는 역시 하얀색 문구로 “제작비 650만불, 제작기간 3년 반, 세계 최고의 감동 초로급 거작! 상영시간 2시간 반의 장대편!”이라는 홍보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제 2면과 3면에는 파란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해설과 줄거리, 그리고 출연진과 제작진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였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1927년에 있었던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로, 1954년에 출간되어 퓰리처상을 수상한 린드버그의 동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제 <The Spirit of St. Louis>는 실제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에 사용하였던 비행기인 세인트루이스의 정신(The Spirit of St. Louis)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의 제작을 위해 실제 비행기의 완벽한 레플리카 세 대가 만들어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파일럿으로 입대해 전공을 세웠던 제임스 스튜어트 본인이 직접 이들 비행기를 주행하였다. 또한 이 무렵 본 궤도에 올랐던 시네마스코프 촬영술의 장점을 살려, 린드버그의 역사적 비행을 실감나게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찰스 린드버그는 1930년대 이후 공개적으로 독일 나치 정권을 지지하고 인종주의적 성향을 밝혔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전쟁 발발 직전까지도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는 고립주의적 성향의 정치 캠페인을 펼쳤기 때문에 미국 대중 대다수의 분노를 샀던 터였다. 이 때문에 1957년에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미국 관객들은 린드버그를 영웅화하는 이 영화를 외면하였고, 결국 이 영화는 막대한 제작비와 스타 배우의 기용에도 불구하고 650만 불의 제작비의 절반도 되지 않는 260만불의 흥행에 그치며 그 해 최악의 흥행 실패작으로 전락하였다. 이 영화가 1959년 1월 한국에서 개봉되었을 당시 서울의 일류극장이 아닌 재개봉관인 명동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것 역시 이러한 영화의 흥행 실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명동극장에서의 개봉 이후 1959년 5월에 씨네마코리아 극장, 8월에 서대문극장에서 재개봉한 뒤 더 이상의 상영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국내에서의 흥행 역시 저조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9 · 명동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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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日記Flyers
전단지 구성 전단지는 한 장으로 되어있는데 앞면에는 주인공 미리 파킨스의 옆 얼굴이 크게 배치되었고, 뒷면은 해설만 제시되어 있다. 전단지의 파손된 상태로 보아 일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노트 조지 스티븐스가 감독한 이 영화는 일기를 각색한 프랜시스 굿리치와 앨버트 해킷의 연극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동명 연극의 극본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가했다.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여우조연상과 촬영상, 세트상을 수상했으며 깜찍한 외모의 신예 밀리 퍼킨스가 안네 역으로 데뷔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시기인 1960년 6월 30일, 한 전야제 광고에는 ‘미리 파킨스의 한국최초 등장을 축하하는 피로(披露) 전야제 개최’라는 문구가 실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영화가 제작되는 중이었던 1958년부터 이 작품에 대해 기사가 실렸으며 특히 신진 여배우 밀리 퍼킨스에 대해서 계속 보도되었다. 1959년 뉴욕타임지가 선정한 ‘1959년 십대 영화’에 1위로 선정된 기사 및 아카데미 수상 관련 글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했고 1960년대를 수놓을 하이틴 스타에 밀리 파킨스가 선정되는 등 1960년 초부터 이 영화는 계속 큰 관심을 끌었다. 더구나 영화가 상영되기 이전에 신협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는 제목의 연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개봉 후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예컨대 1960년 7월 1일 동아일보 영화평은 “조용한 극적 페이스를 지니며 관객의 감정을 높여주는 죠지 스티븐슨의 연출은 비좁은 셋팅 속에서 섬세한 연출기교를 부린다”라고 평가하였다. 다른 영화기사는 “좁은 세팅을 살린 극적이고 내면적인 정밀묘사나 각 인물들의 크로즈업이 바란스를 이룬 것이나 잔잔한 극적 패스를 깔면서 때로는 무서운 서스펜스를 맛보게 하는 것이나 보기 드문 미국영화의 수확”이라고 극찬했다. 이 평가처럼 좁은 다락방을 무대로 자유를 그리워하는 안네의 심경을 영화는 섬세하고 담아내고 있으며 특히 플래시백의 마지막 장면에서 점차 올라오는 독일군의 소리를 들으면서 허탈하게 자신들의 비극적 운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과 어린 소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로 끝을 맺음으로서 절망적인 그 상황을 처절하게 전달해준다. 깊은 감명을 주었던 이 영화는 1960년 개봉에 이어 1965년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재개봉했으며 1970년에 대한극장에서 다시 상영되었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60 · 대한극장 · 세기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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榮光의 鍾을 울리는 하늘 아래서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를 세로로 앞뒤로 인쇄한 2면 구성의 전단이다. 앞면은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채색사진을 위아래로 배치하였으며, 전단의 오른쪽 위부터 아래 방향으로 크게 영화의 표제를 붉은색과 노란색 글씨로 인쇄하여 배치하였다. 전단의 왼쪽 위에는 “포성이 진동하는 전장에서 불붙은 순간의 사랑! 광막한 전화 속을 찾아헤매는 남녀의 혼!!”이라는 홍보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은 파란색 단색조로 인쇄하여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해설과 줄거리를 수록하였으며, <촬영여화>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 제작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별도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전단의 하단부에는 커크 더글라스, 토니 커티스 주연의 영화 <바이킹(The Vikings)>(1958)을 상영예정작으로 소개하는 토막 광고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 해 9월 29일에 을지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1950년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의 성공 이후 파라마운트 사가 배우 윌리엄 홀든과 낸시 올슨과 맺은 전속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예산 전쟁영화이다. 매우 작은 예산으로 제작되었던 만큼, 로케이션 없이 전투 장면의 대부분과 로마 등 이탈리아 지역의 전투 장면 등을 거의 대부분 자료화면으로 채워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의없는 연출, 그리고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 등 소설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당시 비평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흥행면에서는 두 주연 배우들의 인기로 인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 브라질에서는 상당한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의 화제작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60년 7월 서울 아카데미극장, 부산 현대극장, 대구 자유극장, 대전 대전극장, 인천 동방극장의 다섯 군데 주요 상영관에서 동시개봉하였고, 이후 같은 해 10월 명동극장, 이듬해인 1961년 2월 시대극장, 미우만극장, 4월 서대문극장, 6월 동화극장, 7월 동일극장 등에서 재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60 · 아카데미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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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天幕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이다. 1면에는 영화의 주연배우 두 사람이 사막의 검은 텐트를 배경으로 하여 서 있는 모습을 칼라로 인쇄하였고, 오른쪽 상단에 붉은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그 아래 흰색 글씨로 영어 원제를 배치하였다. 2면과 3면은 파란색 단색조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영화의 줄거리와 해설을 배치하였다. 2면과 3면 상단부를 따라 “열사 휘몰아치는 리비아의 사막을 피로 물들인 통한의 비련!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답고 슬프도다!”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한편 3면 하단부에는 주연 배우 세 사람(앤서니 스틸, 안나 마리아 산드리, 도널드 신든)의 프로필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4면에는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론리맨> 광고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단성사에서 1958년 6월 12일 개봉하였다. 전단에 배급사 및 수입사 표기가 없고, 당시의 신문 광고 등에서도 배급사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구체적인 국내 배급 정보는 알 수 없으나, 1956년 이후 1959년까지 단성사에서 상영된 대부분의 외화들이 동양영화사에 의해 수입, 배급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동양영화사의 배급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화노트 영국이 리비아를 신탁통치했던 기간(1945 1951)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드문 영화로, 제작 당시에는 리비아 현지에서 촬영한 최초의 영화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노골적인 식민지배의 향수와 인종주의적 시선 등으로 인해 평단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관객 동원도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1958년 3월 20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3월 31일까지 당시로서는 제법 장기 흥행하였고, 이후 그 해 6월 계림극장, 7월 경남극장, 8월 우미관, 9월 동영극장, 10월 동보극장에서 재상영을 거듭하며 적지 않게 흥행하였다. 그러나 흥행 성적과는 달리 1958년 3월 2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영화평은 이 영화에 대해 “연출이 용장(長: 쓸데없이 길다)해서 지루한 감이 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단성사 · 미상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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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獅子들Flyers
전단지 구성 홍보문구는 “세기의 3대 스타가 불을 뿜는 금년도 미국영화 뻬스트 원인 화제의 초대작!!, 사람도 생명도 운명마저 모든 것을 전쟁에 내던진 젊은 사자들의 모습”이다. 주연을 맡은 말론 브란도와 몽고메리 클리프트, 딘 마틴을 ‘세기의 3대 스타’라 칭하면서, 이들의 연기가 경합을 벌리는 미국영화 베스트 원이라고 영화를 소개한다. 세 주인공의 소개글과 아울러 각각의 연인으로 출연하는 여배우의 소개를 함께 실었다. 그리고 소개글 아래에 세 명의 주인공이 연인과 키스하는 장면과, 제각기 다른 군복 차림으로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병치시킨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영화노트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한 시네마스코프 영화이다. 1959년 1월에 아카데미극장과 대한극장에서 동시에 개봉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세 청년이 전쟁을 경험하면서 갖게 되는 회의와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원작은 1948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동명의 전쟁소설이다. 작가가 몸소 체험한 전장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다채로운 스타일과 기법을 자유롭게 구사한 다소 실험적 소설이다. 감독은 소설을 영화로 옮겨오면서 반전의식을 좀더 강화시켰다. 당대 톱스타였던 세 배우는 제각기 캐릭터에 맞는 뛰어난 연기를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말론 브란도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컸다. 나치즘에 대한 회의와 전쟁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는 독일장교의 입체적 캐릭터가 한국 관객에게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1960년 2월 26일에 거행된 부일영화상에서는 <젊은 사자들>의 말론 브란도에게 주연남우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도 좋았지만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감명을 준 작품을 뽑는 설문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영화였다. 비슷한 성격의 영화로 <지상에서 영원으로>나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지적인 태도로 반전 감정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세 작품은 서로 닮아 있다. 세 편의 영화가 평단의 반응이나 흥행 면에서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이 시기에 반전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9 · 아카데미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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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랑켄슈타인의 逆襲Flyers
전단지 구성 “저주받은 유귀(幽鬼)의 탑에 괴물은 소생(蘇生)했다!! 화제의 괴물 십여 년만에 한국에 나타나다!!”라는 문구에서 짐작되듯이, 1950년대 후반 영국의 해머스튜디오가 만든 프랑켄슈타인 영화는 193, 40년대에 미국 유니버설 영화사가 만들었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의 기억을 불러냈다. 영화의 전단지는 메리 셀리의 원작소설 "프랑켄슈타인"부터 유니버셜의 프랑켄슈타인까지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서술하면서, 화려한 색채영화로 탄생한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의 출발을 알린다. 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 연기로 일약 스타가 된 보리스 칼로프와 론 채니 주니어에 이어 새로운 괴기영화의 스타로 크리스토퍼 리에 주목하는데, “심야에 묘를 파내는 광분(狂奔)하는 악마!”라는 문구처럼, 창조물의 광폭성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광기와 악마성이 극대화된 영화다. 영화노트 1950년대 말 영국 해머스튜디오가 제작한 저예산 공포영화는 대중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테렌스 피셔 감독의 연출로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해머스튜디오의 전성시대를 열면서 이후 <드라큘라>(1958), <미이라>(1959) 등의 연속적인 흥행을 이끌었다. 이 영화는 해머스튜디오의 첫 번째 칼라영화이자, 프랑켄슈타인 시리즈 최초의 칼라영화이기도 하다. 테렌스 피셔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고딕풍의 영화를 화려한 색채를 강조한 칼라영화로 제작해, 미국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창조한 공포영화의 미학과 비교해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내놓았다. 1818년에 출간된 메리 셸리의 원작소설을 대폭 각색해 프랑켄슈타인의 ‘미친 과학자’ 캐릭터를 부각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이후 해머스튜디오가 만든 시리즈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계속 피터 쿠싱이 연기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리는 보리스 칼로프의 기괴한 괴물 연기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드라큘라>에서 대체불가능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한국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1958년에 ‘인조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다가 제목을 변경해 ‘후랑켄슈타인의 역습’으로 개봉되었고, 검열에서는 “임신부의 관람을 금함”이라는 제한이 붙고 사람을 2층에서 떨어뜨리는 장면을 단축하라는 요구 외에 특별히 문제된 것이 없었다. 테렌스 피셔와 피터 쿠싱의 후속작 <프랑켄슈타인의 복수(The Revenge Of Frankenstein, 1958)>는 한국에서는 ‘괴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에 개봉된다. (이화진_영화사연구자)
1959 · 명동극장 · 기타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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怨恨의 道谷里 鐵橋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8면으로 구성된 팸플릿형 전단이다. 1면은 칼라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과 영화의 중심 소재인 미국 공군기들의 모습을 담았으며, 상단부에는 빨간색 글씨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로맨스와 생명을 건 전우애를 그린 새로운 스타일의 전쟁 스펙타클 영화!”라는 홍보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2면에는 제작진과 출연진 명단, 3면은 해설, 4면과 5면에는 줄거리를 실었다. 5면의 왼쪽에는 당시 불이무역주식회사에서 수입 배급하여 1960년 10월 30일에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미국 코미디 영화 <사랑의 종이 울릴 때(The Five Pennies)>(1959)의 토막광고가 실려 있다. 6면에는 주연 배우들 및 감독, 원작자의 약전을 수록하였다. 7면에는 역시 불이무역의 수입 배급으로 1960년 10월 28일 수도극장에서 개봉한 프랑스 영화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1954)의 상영예정 광고가 실려있다. 마지막 8면은 특이하게도 당시 불이무역이 한국총대리점의 자격으로 국내로 수입해 판매했던 일본전기주식회사(NEC)의 전화기 및 기타 통신기재 광고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영화를 수입해오던 무역회사들의 다양한 사업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상당히 이채롭다. 영화노트 한국전쟁 당시 미 해군의 비행대 장교로 참전했던 제임스 미치너(James Michener)의 1953년 소설로 그 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도곡리의 다리(The Bridges at Toko-ri)>를 각색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드문 대작으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미국에서는 1955년 흥행작 8위로 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에서는 1960년 8월 18일 중앙극장에서 처음 개봉되어 9월 7일까지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상영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직후인 10월 4일에는 수도극장에서도 다시 개봉하였는데, 일반적으로 1차 개봉관으로 재개봉 영화를 잘 상영하지 않던 수도극장에서 이 영화가 다시 개봉된 것은 이 영화가 당시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후 이듬해인 1961년 1월부터 11월까지 서대문극장, 미우만극장, 중부극장, 봉래극장, 화신극장, 청계극장, 시공관 등에서 지속적으로 재상영을 거쳤고, 1962년과 1963년에도 초동극장, 동대문극장, 동화극장 등을 순회하며 무려 3년 넘게 상영되는 드문 기록을 남겼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60 · 중앙극장 · 불이무역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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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타레이夫人의 사랑Flyers
전단지 구성 영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소토리오 스탭과 스타 메모, 영화에 대한 해설에 더불어 이 영화의 사회적 의미를 설명한 재래의 성 관념을 완전히 탈피한 챠타레 부인의 사랑이라는 비교적 긴 에세이가 함께 실려 있다. 여기에 덧붙여 세기영화주식회사가 수입해 개봉할 예정인 <무기여 잘 있거라>, <워록크>, <남태평양> 광고와 함께 전체 12면으로 구성된 전단지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노골적인 성 묘사로 세계 각지에서 원작소설이 판매 금지 처분을 받거나 영화가 상영 금지된 사실이 있으나, 전단은 그러한 사실을 특별히 선정적으로 홍보하기보다 ‘영국의 대문호 D. H. 로렌스’의 소설을 ‘불란서의 대표적인 서정파의 거장 말크 알레그’의 연출로 영화화했고, 각색, 촬영, 미술, 의상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스탭들이 참여한 수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의 다니엘 다류, 이태리의 에르노 크리사, 영국의 레오 겐 등 유럽의 다국적 스타 캐스팅, 프랑스 각지의 로케이션도 눈여겨 볼 것으로 안내되고 있다. 영화노트 영국작가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1928)"은 대담한 성 묘사로 출간 직후부터 전세계 출판계와 법정에서 논란을 일으킨 소설이다. 프랑스에서 이 영화가 제작된 1955년에도 영국에서는 원작소설의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다. 영화의 상영 역시 순탄치 않았는데, 미국 뉴욕에서는 간통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미국 대법원이 하급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1959년에야 개봉될 수 있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한국에 수입된 때는 분명치 않지만, 1958년 8월에 국회에서 상영되었던 기록(동아일보, 1958.08.06)으로 보아 그 무렵 영화의 수입 및 개봉 여부가 논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실제 개봉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1960년 9월에야 이루어졌다. 전단에 수록된 재래의 성 관념을 완전히 탈피한 챠타레 부인의 사랑은 “4.19 혁명 이전의 부패하고 무능무위했던 정권의 맹목 문화 정책의 공여거리로 이 영화를 희생케 할 뻔한 점”을 언급하면서 영화의 개봉이 4.19의 효과임을 암시한다. 신문광고도 “무려 5년간이나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아 개봉 보류되었던 문제의 애정 명화”(동아일보, 1960.08.31.)라는 문구로 이 점을 강조한다. 대한극장과 세기극장에서 동시 개봉한 첫날 이후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면서 대한극장의 상층을 개방했다고 하며, 그와 함께 신문광고의 홍보문구도 “색정이냐 본능이냐”, “불구의 남편을 가진 부인의… 번뇌는 성적 불만이었든가 인간적 조화의 발견을 위함인가 하인과의 정사는 비도덕적인가”(동아일보, 1960.09.02)와 같이 선정성의 수위를 높였다. 영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그 내용이 어떻든 세계 각국에서의 발매 금지와 재판 등으로 뜨거웠던 원작소설의 명성과 4.19 이후의 표현의 자유라는 한국적 맥락이 중첩되어, 개봉이 곧 흥행을 약속했던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화진_영화사연구자)
1960 · 대한극장 · 세기영화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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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스타(1977)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은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 표제를 하단에 배치하고 다채로운 원색으로 단색조 인쇄를 하여 강렬한 느낌을 준다. 앞면 오른쪽 상단과 왼쪽 하단에는 각각 "화제와 충격의 슈퍼 액션!!", "극렬한 서스펜스로 휘몰아놓은 경이의 베스트셀러 영화화!", "마의 일요일을 향해 결행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그 리더는 생로랑의 향수냄새를 풍기는 뜨거운 사랑과 신념에 사는 아름다운 요화였다!" 등등의 홍보문구가 여러 가지 단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뒷면은 주로 파란색과 빨간색 단색조로 인쇄되어 있으며, 해설과 줄거리 요약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전단 앞면에 들어간 홍보문구들과 더불어 "당신 앞에 마의 일요일의 페스티벌이 펼쳐진다!"라는 홍보문구가 역시 추가로 인쇄되어 있다. 노트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터졌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공격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토마스 해리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실제 벌어졌던 테러리스트 공격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작 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끌었으나 실제 비평이나 흥행 면에서는 평이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국에서는 1980년 10월 수입허가가 이루어져 그해 12월 29일 연말연시 특선프로로 중앙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개봉 당일 아침 아랍권 국가 대사관들의 집중되는 항의로 인해 상영이 보류되었고, 다시 이듬해인 1981년 1월 5일 상영허가가 최종적으로 취소되어 11년 뒤인 1992년 7월 17일에야 정식으로 개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전단은 1980년 최초 상영 당시에 제작된 전단으로, 실제로 배포되지 않은 매우 희귀한 전단 실물이다. - 석지훈(영화사연구자)
1961~ · 중앙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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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부 레터(1945)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의 앞뒷면을 초록색과 빨간색 두 가지의 단색조를 사용하여 인쇄하였다. 앞면에는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화의 표제를 담았고, 왼쪽 하단에 "망향의 외로움을 못 이겨 부지(不知)의 여인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는 의외로 비극을 자아낸다. 시정에 넘치는 애정무한(愛情無限)" 이라는 홍보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에는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줄거리와 해설, 주연 제니퍼 존스와 조셉 코튼의 약전이 수록되어 있다. 전단 곳곳에 원 소유주에 의한 볼펜 낙서가 있으나 전반적인 내용 판독에는 무리가 없다. 노트 크리스토퍼 매시(Christopher Massie)가 쓴 동명의 통속소설을 훗날 <마천루>의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아인 랜드가 각색한 이 작품은 평단에서는 진부한 소재와 평면적인 연출 때문에 심한 혹평을 받았지만 주연 제니퍼 존스의 인기를 타고 1945년 당시 상당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한국에서는 1954년 8월 국도극장에서 처음 개봉하였으나 별다른 흥행을 하지 못하고 단 4일만에 상영이 끝났으며, 이듬해인 1955년 4월 명동극장에서, 다시 그 해 7월에 동화극장에서 짧게 재상영하였으나 역시 큰 호응은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석지훈(영화사연구자)
1954 · 국도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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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1954)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8면으로 구성된 팸플릿 형 전단. 앞표지인 1면에는 주연 배우들의 사진을 칼라로 인쇄하고, 영화의 표제를 하단에 단순하게 배치하였다. 하단부 구석에 원 소장자가 남긴 "단성사"라는 메모를 통해 이 전단이 1957년 1월 이 영화가 단성사에서 처음으로 개봉했을 당시 배포되었던 전단임을 짐작할 수 있다. 2면에는 영화의 주제가인 <Rose Marie>의 악보와 함께,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백일희(白一姬)의 노래로 한국어 취입된 주제가 음반을 홍보하고 있어 이채롭다. 3면에서 5면까지는 영화의 해설과 줄거리, 제작진 및 출연진 명단이 수록되어 있고, 6면과 7면에는 감독 머빈 르로이와 주연 배우들의 약전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뒷표지인 8면에는 상영예정작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3)과 <갈채(The Country Girl)> (1954)의 광고가 수록되어 있다. 전단에는 별도의 배급사 정보가 나와있지 않으나, 당시 신문의 상영광고를 볼 때 동양영화사에서 수입, 배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트 1924년에 초연된 동명의 오페레타를 각색한 이 영화는 1928년과 1936년에 이어 세 번째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 가운데 1936년 작품은 주연을 맡은 성악가 커플 지넷 맥도날드와 넬슨 에디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크게 흥행하였으며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이미 영화와 주제가 음반이 소개되어 인기를 끈 바 있었다. 전작이 너무 인기를 끈 때문에서인지 이 영화는 당대 초호화 캐스팅과 제작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한 실패작으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참패를 맛보았다. 한국에서는 1957년 1월 단성사에서 개봉하였으나 이후 크게 흥행하지 못한 듯, 그 해 3월에 평화극장에서 짧게 재상영되고, 다시 이듬해인 1958년 4월 20일 시공관에서 열린 음악영화 특별상영회에서 상영된 것 이외에는 다른 상영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당시 <조선일보>에 실린 영화평 (1957.01. 12.)에서도 "지금 3,40대의 사람들이 누구나 기억하는 넬슨 에디와 지넷 맥도날드 주연의 영화는 너무나도 인상깊은 영화"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1936년판 영화에 대한 호응이 상당했고, 이것이 이 리메이크판에 대한 비 우호적인 반응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 석지훈(영화사연구자)
1957 · 단성사 · 동양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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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굳만 스토리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2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으로, 앞면에는 칼라 인쇄로 영화의 스틸사진과 영화 제목,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다채로운 색깔로 인쇄되어 있고, 상단부에는 “만인의 가슴 속에 사랑의 멜로디를 불어넣은 스윙음악의 왕 굿맨의 감동의 반생을 그린 대망의 명화!”라는 홍보 문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하단부 배급사 소개 앞으로 “레코드는 쎈츄리 레코드”라는 광고 문안이 별도로 기재되어 있는데, 당시 국내 음반사와 영화 배급사 등 간에 긴밀한 관계가 수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뒷면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해설, 캐스트, 주연 배우 스티브 알렌과 도나 리드의 약전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이채로운 것은 이 영화에 수록된 스윙 재즈 곡 29곡 가운데 15곡의 실제 곡목을 기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설에서는 이전에 제작되어 국내에 개봉된 또 다른 재즈 전기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와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어, 영화 관객 동원에 있어서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당시 국내의 재즈 애호가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대거 제작되었던 일련의 음악인 전기 영화 가운데 하나로, 그 가운데서는 이례적으로 호평을 들었다. 특히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베니 굿맨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정상급 재즈 연주자들의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당대의 많은 재즈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이래 형성된 재즈 팬 층을 비롯해 당시의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958년 3월 28일 수도극장에서 개봉하여 4월 10일까지 거의 2주일 가량 연속 상영된 뒤, 곧바로 씨네마코리아극장에서 그 해 5월과 7월에 두 차례에 걸쳐 재개봉되었고, 9월에는 화신백화점 내 극장, 10월에는 서대문극장, 11월에는 동영극장을 거쳐 12월에는 신영극장에서 계속해서 재개봉, 재상영을 거친 뒤 이듬해 3월과 10월에도 서대문극장과 동양극장 등에서 재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수도극장 · 세기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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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部人은 알고 있다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에 앞면은 세로로, 뒷면은 가로로 인쇄한 전체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앞면은 칼라로 주연 스튜어트 그레인저의 모습을 담은 원색 일러스트를 가운데에 크게 배치하고, 하단부에는 빨간색으로 영화의 표제를 인쇄하였다. 전단의 중앙부부터 하단을 가로지르며, “문답 무용! 서부의 무법지대를 휩쓰는 권총의 사나이!”라는 홍보문구가 실려 있다. 뒷면은 녹황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여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해설, 줄거리 요약 등을 실었고, 뒷면 왼쪽 최하단 부분에는 주연, 제작자, 감독, 원작자에 대한 약전이 3줄 가량의 단문으로 수록되어 있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MGM이 제작한 저에산 서부극이었던 글렌 포드 주연의 <숙명의 일탄(The Fastest Gun Alive)>(1956)이 의외의 성공을 거둔 뒤 제작된 일련의 서부극 가운데 하나이다. 비평가들에게는 거의 완전히 무시당했으나, 워낙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였던 만큼 소소한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흥행 수익을 남겼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일본 등지에서도 적지 않게 흥행하였다. 한국에서는 1958년 3월 국제극장에서 처음으로 개봉된 이후 같은 해 6월 성남극장과 평화극장에서 동시에 상영되었고, 7월 경남극장, 동화극장, 8월 문화극장, 신영극장, 화신극장 등에서 재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국제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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罪없는 美貌Flyers
전단지 구성 긴 장지를 3등분으로 접어 인쇄한 빌폴드 형태의 전단이다. 편의상 1, 5, 6,면에 해당하는 면을 앞면으로, 2, 3, 4면에 해당하는 면을 뒷면으로 부르기로 한다. 앞면은 칼라로 인쇄한 뒷표지의 왼쪽으로는 단색조로 간결하게 인쇄된 앞표지를 두었고, 그 외에 상영예정작으로 <중공탈출(Blood Alley) >(1955)를 소개하는 토막 광고가 인쇄되어 있다. 뒷면은 초록색 단색조로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줄거리와 해설, 배우 약전 등을 수록하였다. 영화노트 수영선수 출신으로 1940년대에 주로 MGM 사의 뮤지컬에서 수영실력을 뽐내며 스타덤에 올랐던 에스더 윌리엄스가 슬럼프에 빠졌다가 재기를 위해 유니버설 사로 이적한 뒤 처음으로 찍은 영화. 1950년대의 사회 문제, 즉 연쇄살인, 비행청소년과 10대 문화의 폭력성, 데이트 폭력 등의 다양한 요소를 한데 묶어 소재로 삼은 것이 당시에는 상당한 도전적인 시도로 여겨졌으나, 개연성 없는 연출과 각본, 윌리엄스의 미숙한 연기 등으로 인해 당대 흥행과 비평에서는 참패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1950년대 영화로는 드물게 여성혐오 및 데이트폭력의 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작품으로 재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1958년 4월 단성사에서 처음 개봉한 뒤 11일 동안 상영되었으나. 이후 그 해 5월 씨네마코리아극장, 12월 초동극장, 이듬해인 1959년 2월 동영극장에서 각각 2-3일간 상영되는 데에 그쳐 국내에서도 전반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단성사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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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婦는 芳年 17세Flyers
전단지 구성 총 8면 구성의 팸플릿 형 전단이다. 앞표지인 1면은 칼라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과 영화 표제, 주연 배우들의 이름 등을 다양한 색으로 구성하여 인쇄하였으며, “화려한 할리우드의 크리스마스 신년에 전개되는 러브스토리!”, “미모의 청춘스타가 경연하는 감미 연애편!” 등의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2면에는 제작진과 출연진 소개가 나오는데, 당대 전단의 대부분에 이것이 “스태프”, “캐스트” 등으로 간략히 표기된 것에 반해 “누구가 만들었나”, “누구가 나오나”의 의문문 형태로 표현한 것, 그리고 배역명에 대한 상세한 소개까지 곁들인 것은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면에서 5면까지에는 영화 해설과 영화 줄거리 소개가 수록되어 있으며, 5면 후반부에는 <절찬을 받은 미국 각지의 비평>이라는 코너와 함께 당시 이 영화에 대한 미국 내 영화잡지 등의 평을 초역하여 싣고 있다. 6면에는 출연 배우들의 약전과 함께, 원작자인 소설가 및 칼럼니스트인 루엘라 파슨스(Louella Parsons)에 대한 소개도 곁들이고 있는데, 그를 “할리우드의 무관(無冠)의 여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역시 이채롭다. 원작자 소개 옆에는 주제가인 <Susan Slept Here>의 가사를 수록하였다. 제7면에는 <촬영여화(余話)>라는 코너로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갖가지 비화 등을 수록하였고, 하단부에는 <한없는 추적(Gun Fury)>(1953)을 상영예정작으로 알리는 토막 광고가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8면에는 다시 이 영화의 광고를 전면으로 수록하였는데, "어젯밤 당신과 같이 식사하고, 당신 파자마로 당신 침대에서 잔 처녀가 누구죠"라는 다소 도발적인 홍보 문구를 노란색으로 인쇄하였으며, 아울러 이 영화가 “신춘 특별배급”으로 공개되었다는 사실 역시 밝히고 있다. 영화노트 1951년 미국 LA의 서클 극장(Circle Theater)에서 초연된 알렉스 고틀립(Alex Gottlieb)과 스티브 피셔(Steve Fisher)의 연극 <수잔(Susan)>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성년자 여성과 중년의 성인 남성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자극적인 소재 때문에 당시 보수주의자들과 카톨릭 교회 등에서 상당한 비난을 받았지만, 당시 청춘스타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데비 레이놀즈의 인기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본래는 20세기 폭스 사에서 제작이 진행되다가, 원작자와 제작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도중에 RKO 영화사로 판권과 제작권이 넘어가는 등 제작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58년 12월 27일 명보극장에서 유료시사회를 연 뒤 이듬해인 1959년 1월 30일 정식으로 개봉하였으며, 이후 2월 경남극장, 3월 계림극장, 4월 우미관, 7월 동양극장에서 재상영을 거친 뒤 다시 그 이듬해인 1960년 1월 화신극장, 3월 봉래극장 등에서 재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9 · 명보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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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이킹Flyers
전단지 구성 커크 더글라스와 토니 커티스라는 당대 유명배우 두 명의 사진을 중심으로 바이킹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선전하기 위해서 배를 전면 이미지에 배치시키고 있다. 영화설명으로는 크레딧이나 배우소개, 줄거리 외에 해양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이 영화가 내세우는 포-트·라·라토 성채를 둘러싼 이야기나 바이킹의 삶과 환경을 묘사했던 방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영화노트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영화계의 주요한 장르 하위 사이클 중 하나는 성경이야기나 고대신화 혹은 고대서사에 관련된 작품들이었다. <성의>, <벤허>, <십계>, <원탁의 기사>, <프로디갈>, <스팔타쿠스>, <알렉산더 대왕> 등의 영화들은 고예산 영화로 스타기용, 해외로케, 거대한 규모의 세트와 스펙터클한 장면 묘사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들은 고예산에 비해 미국 내에서 항상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는데, 그 간극을 메워주었던 것은 해외관객들이었다. 1950년대 후반기부터 서울 개봉극장에서 선호받았던 작품들에도 이러한 영화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바이킹> 역시 이러한 공식에 맞는 영화였다. 1960년 9월 29일 추석프로로 을지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다양한 해외로케 및 커크 더글라스와 토니 커티스, 자넷 리, 어네스트 보그나인 등의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 영화는 또한 바이킹이 공격하는 성채장면을 찍기 위해 영국 로케를 감행했으며 바이킹의 생활 및 전투장면을 묘사하기 위해서 노르웨이 해안가에서 촬영하는 등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60 · 을지극장 · 미상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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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北西로 進路를 돌려라Flyers
전단지 구성 전단지 앞면은 4개 이미지로 분할되어 있다. 각각은 영화의 유명한 장면이다. 특이하게 해설과 스텝 및 캐스트 소개가 앞면에 기록되어 있다. 뒷면은 스탭 및 캐스트 소개와 감독, 주연배우 이력, 스토리 등이 소개되어 있다. 영화노트 히치콕의 작품 이력 중 <현기증>과 <사이코> 사이에 위치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이후 북북서로)는 그의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며 가장 스펙터클한 영화이다. 이 작품은 히치콕의 007 영화라고 지칭될 정도로 수많은 스펙터클한 장면들과 아슬아슬한 액션신이 등장하며 전작 <현기증>의 흥행 실패를 만회할 만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앞선 작품인 <누명쓴 사나이>와 <현기증>이 무겁고 심리적인 은유의 비중이 큰 반면 <북북서>는 코믹하면서 긴박감 넘치는 첩보영화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영화로 머물지 않는데 이전부터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구축해왔던 오인, 누명, 추적 등의 플롯을 통해 평범한 사람에게 갑자기 사건이 일어나면서 안전한 일상이 깨지는 이야기와 아이젠하워 시대 냉전의 그림자를 교묘하게 엮어낸다. 사실 소련으로 짐작되는 밴담 일당과 미국 정부요원들은 손힐의 생명이나 안위보다는 항상 임무를 우선시한다. 그가 위험에 빠진 것도 그를 통해서 적국 스파이를 잡으려는 미국 정보요원의 태도에 기인한 바 크다. 그래서 주인공인 평범한 사람은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지푸라기 같은 단서에 매달려 뉴욕에서 시카고로 다시 러시모어산으로 북북서로 계속 올라간다. 이 제목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이 있는데 ‘North by Northwest’는 정확한 방위명칭이 아니다. 혹자는 <햄릿>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Northwest’는 비행사인 ‘노스웨스트’를 의미하는 것이며 제목의 의미는 ‘노스웨스트 항공을 타고 북쪽으로’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손힐은 시카고에서 노스웨스트를 탄다) 히치콕은 제목에 대한 질문에 별 의미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그것 역시 감독이 의도한 일종의 부조리라고 도널드 스포크는 주장한다). 이처럼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는 맥거핀으로 가득 차 있는데 손힐에게 캐플란이라는 인물이 그러하며, 밴담이 중요하게 여기는 마이크로필름 역시 그렇다. 그것을 찾기 위해 혹은 가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의미는 흐지부지되며 결국 중요치 않게 되거나 부재한 것으로 판명된다. 사족을 붙이자면 우리나라 제목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일본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60 · 단성사 · 불이무역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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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의 마타하리(1951)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은 초록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였으며 주연 배우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와 표제, 영화 스틸사진을 배치하였다. 오른쪽 상단에 "일본에서 상영금지 당한 문제의 작품! 바탄 반도의 죽음의 행진! 미모의 여간첩의 활약! 침략자 일본의 패배사!!"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은 파란색 단색조로 인쇄하여 제작진과 출연진 명단, 줄거리와 해설 등을 실었다. 전단에는 별도의 표기가 없으나 당시의 신문 광고를 통해 배급사가 아주영화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단의 가운데가 취급 부주의 등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어 전체 내용의 3분의 1 가량이 완전히 소실되어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노트 2차대전 당시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연합군 측에 전달했던 여성 스파이 클레어 필립스(Claire Philips)의 실제 경험담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사인 얼라이드 아티스트에서 제작하여 미국에서는 별다른 호응도 받지 못하고 흥행과 비평 모두에 실패했으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필리핀에서는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도산 안창호의 아들인 필립 안이 악역인 일본인 장교 역을 맡고 있는 것은 다소 씁쓸하다고 하겠다. 한국에서는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아주영화사라는 배급사에서 대개 2류 재개봉관이었던 동양극장에서 1956년 4월 처음으로 선을 보였으며, 이후 같은 해 6월 계림극장에서 잠시 재상영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상영 기록을 찾을 수 없어 국내에서도 흥행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 석지훈(영화사연구자
1956 · 기타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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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1958)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8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팸플릿 형 전단이다. 앞표지인 1면에는 타이틀 롤을 맡은 에바 가드너의 모습을 담은 칼라 사진과 표제를 배치하였고, 2면에는 군청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미국개봉 포스터를 거의 그대로 전재했다. 3면부터 5면까지는 영화의 해설과 줄거리 등을 소개하였다. 5면에는 영화의 소재가 되는 스페인의 화가 프란치스코 고야의 <나체의 마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실제 그림의 도판과 함께 덧붙였다. 6면에는 주연 배우들의 약전을 실었고, 7면에는 "대한극장 안내"라는 제목 하에 대한극장의 이용안내 및 내부 좌석배치도 등을 싣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마지막 뒷표지 8면에는 태양제약이 제조한 강장제 메사루빈정 광고가 실려있다. 노트 18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치스코 고야와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알바 공작부인 간의 로맨스를 각색한 이 영화는 상당한 제작비와 스페인 로케이션 촬영 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정작 개봉 후에는 흥행 성적이 매우 부진하여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하는 참패를 맛보았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1959년 8월 22일 서울 대한극장과 아카데미극장에서 동시 개봉하였으며, 이후 9월 4일까지 2주일 동안 연속 상영되면서 상당한 흥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10월에는 세기극장과 시네마코리아극장, 11월에는 우미관, 1960년 1월 초동극장, 2월 서대문극장, 3월 동화극장, 4월 동도극장, 5월 화신극장, 7월 청계극장, 8월 시네마코리아극장(납량특선), 1961년 1월에는 낙원극장 등에서 재상영되는 등 장장 3개년에 걸쳐 계속 흥행하였다. 한편 1961년 4월 발생하여 한동안 서울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정릉동 치정살인사건"에서 범인 백 모가 치정 및 불륜에 빠지게 된 동기로 공범 및 불륜 상대인 송 모와 이 영화를 함께 보았던 것을 지목하기도 하여 또 다른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석지훈(영화사연구자)
1959 · 대한극장 · 기타 · 합작(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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