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P영화상영반대Stills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민족혼 팔아먹은 동보극장 각성하라", "폭력·외설·섹스영화는 모두 미국으로!!!", "정부는 민족경제 말살하는 수입개방 철회하라" 등의 피켓 구호가 눈에 띈다. <007 리빙데이라이트>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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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1989년 2월 13일,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이날 궐기대회에 영협 소속 회원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작가 등 300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UIP 영화직배 저지대회 영화인협회 회원 3백명", 《한겨레신문》, 1989.02.14., 11면). 이를 보도한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영협은 "미국은 UIP직배 영화를 통해 문화의 종속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UIP사가 국내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계속 투쟁"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미영화 직배저지 대회 UIP사 완전 철수 요구", 《경향신문》 1989.02.13., 16면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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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1989년 2월 13일,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이날 궐기대회에 영협 소속 회원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작가 등 300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UIP 영화직배 저지대회 영화인협회 회원 3백명", 《한겨레신문》, 1989.02.14., 11면). 이를 보도한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영협은 "미국은 UIP직배 영화를 통해 문화의 종속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UIP사가 국내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계속 투쟁"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미영화 직배저지 대회 UIP사 완전 철수 요구", 《경향신문》 1989.02.13., 16면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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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1989년 2월 13일,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영화배우 윤일봉(당시 영협 연기분과위원회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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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1989년 2월 13일,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영화배우 태현실이 발언을 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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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1989년 2월 13일,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영화배우 마흥식과 강수연, 감독 고영남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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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1989년 2월 13일,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 모습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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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피켓을 통해 영화인협회 각 분과위원회가 참여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1989.2.13.)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태극기와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영화인들이 UIP 직배를 반대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켓에는 "UIP 몰아내어 방화산업 꽃피우자(조명위원회/감독위원회)", "문화침략 UIP 반성하고 돌아가라(조명위원회)" 등의 구호가, 시위 참여자들이 두른 어깨띠에는 "한국영화 압살하는 UIP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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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피켓을 통해 영화인협회 각 분과위들이 참여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1989.2.13.)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태극기와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영화인들이 UIP 직배를 반대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가운데, 영화배우 신성일, 남궁원 등의 모습 역시 확인된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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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건물 외벽 현수막 내용을 통해 '문예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 건물 앞'임이 확인된다. 문예회관은 1989년 2월 13일의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가 열린 예총회관과 인접한 건물로, 범영화인 궐기대회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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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피켓을 통해 영화인협회 각 분과위원회가 참여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1989.2.13.)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 피켓에는 "한국영화 압살하는 UIP 물러가라(기술위원회)"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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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사수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사진은 삭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는 박광수 감독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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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사수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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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사수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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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비대위는 6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우리영화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조직적 연대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부산에서도 같은 시각 부산역 광장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부산영화인 비대위) 주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부산영화인 궐기대회에는 영화배우 박중훈, 이혜은을 비롯해 한국영화인협회 부산 지회, 동녘필름, 시민 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참가해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 부산역사문화대전 누리집) 사진은 당시 부산역 광장에 설치된 부산영화인 비대위의 현수막과 대자보로, 현수막에는 "한국영화 다 죽이는 투자협정 반대한다!"는 구호가 적혀있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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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피켓을 통해 영화인협회 각 분과위원회가 참여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1989.2.13.)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이 궐기대회에 참여한 영협 감독분과의 모습으로 보이며,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문화침략 UIP 반성하고 돌아가라(감독위원회)", "UIP 몰아내어 방화산업 꽃피우자(감독위원회)", "한국영화 압살하는 UIP 물러가라(감독위원회)"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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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피켓을 통해 영화인협회 각 분과위원회가 참여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1989.2.13.)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영화인협회의 감독위원회와 기술위원회의 피켓이 보이며, 피켓에는 "UIP 직배에 우리영화 자살한다(**위원회)", "UIP 몰아내어 방화산업 꽃피우자(촬영위원회/기술위원회)", "한국영화 압살하는 UIP 물러가라(촬영위원회)"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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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사진 속 피켓을 통해 영화인협회 각 분과위원회가 참여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1989.2.13.)와 일련의 연속성을 지닌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이 궐기대회에 참여한 영협 감독 분과의 모습으로 보이며,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문화침략 UIP 반성하고 돌아가라(감독위원회)", "UIP 몰아내어 방화산업 꽃피우자(감독위원회)", "한국영화 압살하는 UIP 물러가라(감독위원회)", "UIP 직배에 우리영화 자살한다(감독위원회)"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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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영화인협회(영협)가 예총회관(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개최한 "UIP영화 직배저지 범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이날 궐기대회에 영협 소속 회원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작가 등 300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UIP 영화직배 저지대회 영화인협회 회원 3백명", 《한겨레신문》, 1989.02.14., 11면). 이를 보도한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영협은 "미국은 UIP직배 영화를 통해 문화의 종속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UIP사가 국내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계속 투쟁"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미영화 직배저지 대회 UIP사 완전 철수 요구", 《경향신문》 1989.02.13., 16면 참조) 사진 속 영화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비롯해 태현실·강수연·신성일 등의 배우들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영협의 각 분과위원회(연기분과위원회, 촬영위원회, 기술위원회 등)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피켓에는 "문화침략 UIP 반성하고 돌아가라", "한국영화 압살하는 UIP 물러가라", "UIP 몰아내어 방화산업 꽃피우자"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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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 직배 반대Stills
사진 하단의 타이핑된 내용으로 미루어, 1990년 7월 4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열린 'UIP 추방 궐기대회' 현장이다. 이날의 궐기대회는 UIP사의 외화 수입 추천서 위조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열린 것으로("UIP 수입추천서 위조 파문, 《한겨레신문》, 1990.06.30., 9면 참조), 영화인 4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회에서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진흥 육성을 위한 영화진흥법 통과 및 현행 전국 극장 모금 문예진흥기금의 영화진흥기금화, UIP 후퇴 등을 요구했다. ("UIP 추방 궐기대회, 《조선일보》, 1990.07.02., 6면; "UIP 추천서 위조 강력 대응", 《한겨레신문》, 1990.07.03., 3면; "영화관계자 4백명 UIP사 추방 궐기, 《경향신문》, 1990.07.05., 15면; "UIP범법 행위 엄벌하라", 《매일경제》, 1990.07.07., 13면 등)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ZT000143_01
직배영화 반대투쟁Stills
사진 하단의 타이핑된 내용으로 미루어, 1990년 7월 4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열린 'UIP 추방 궐기대회' 현장이다. 이날의 궐기대회는 UIP사의 외화 수입 추천서 위조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열린 것으로("UIP 수입추천서 위조 파문, 《한겨레신문》, 1990.06.30., 9면 참조), 영화인 4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회에서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진흥 육성을 위한 영화진흥법 통과 및 현행 전국 극장 모금 문예진흥기금의 영화진흥기금화, UIP 후퇴 등을 요구했다. ("UIP 추방 궐기대회, 《조선일보》, 1990.07.02., 6면; "UIP 추천서 위조 강력 대응", 《한겨레신문》, 1990.07.03., 3면; "영화관계자 4백명 UIP사 추방 궐기, 《경향신문》, 1990.07.05., 15면; "UIP범법 행위 엄벌하라", 《매일경제》, 1990.07.07., 13면 등) 이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한국영화 말살하는 UIP 물러가라", "UIP가 마피아냐 마피아가 UIP냐", "날뛰는 UIP 범죄 분노하는 주권국민", "UIP 범죄 행위 주권국민 분노한다"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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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비대위는 6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우리영화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조직적 연대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부산에서도 같은 시각 부산역 광장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부산영화인 비대위) 주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부산영화인 궐기대회에는 영화배우 박중훈, 이혜은을 비롯해 한국영화인협회 부산 지회, 동녘필름, 시민 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참가해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 부산역사문화대전 누리집) 사진은 당시 부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시위 참여자들이 한미투자협정을 반대하며 근조 리본을 두른 한국영화 포스터를 들고 있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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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비대위는 6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우리영화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조직적 연대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부산에서도 같은 시각 부산역 광장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부산영화인 비대위) 주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부산영화인 궐기대회에는 영화배우 박중훈, 이혜은을 비롯해 한국영화인협회 부산 지회, 동녘필름, 시민 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참가해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 부산역사문화대전 누리집) 사진은 당시 부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대회'의 모습으로, 시위 참여자들이 한미투자협정을 반대하며 근조 리본을 두른 한국영화 포스터를 들고 있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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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Stills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비대위는 6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우리영화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조직적 연대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부산에서도 같은 시각 부산역 광장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부산영화인 비대위) 주최,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부산영화인 궐기대회에는 영화배우 박중훈, 이혜은을 비롯해 한국영화인협회 부산 지회, 동녘필름, 시민 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참가해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부산영화인 궐기 대회", 부산역사문화대전 누리집)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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