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배영화 반대시위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사진 우측 하단, 사진이 촬영된 날짜가 '90.12.8로 찍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에서 일부 영화인들의 삭발식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T679332_01
직배영화 반대시위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사진 우측 하단, 사진이 촬영된 날짜가 '90.12.8로 찍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에서 일부 영화인들의 삭발식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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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영화 창간호(1호)Periodicals
《충무로영화》는 영화평론가 양윤모를 편집인으로 한 '공동체영화'가 발행한 영화신문(구체적인 발행 주기 및 연속 발행 여부 미상). 창간호에 실린 "창간사"에 따르면 "영화인의 공통의 문제와 정당한 요구를 언론화시키고 영화계의 시사·정보에 관하여도 영화인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엄정히 다루는" 영화인 대상의 정보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충무로영화》 창간호는 영화 민주화를 위한 영화법 개정 및 검열제도 폐지에 대한 영화인들의 요구, 영화 스태프 임금 문제, 미국영화 직배와 관련한 영화계 이슈 등을 다루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JNK408_0001_1
우리영화 창간호(1호)Periodicals
《우리영화》는 '미국영화직배저지·영화진흥법쟁취영화인투쟁위원회'(위원장 조문진)의 비정기 간행물로, 1988년 10월 8일자로 창간호를 발행했다. '미국영화직배저지·영화진흥법쟁취영화인투쟁위원회'는 1988년 9월 21일, 영화인협회 소속 감독분과위원회와 청년영화인협의회가 공동으로 발기한 '미국영화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가 이윽고 변경한 명칭으로, 직배저지 투쟁과 영화진흥법 쟁취 투쟁이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영화》 창간호에는 1988년 7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의 영화법 개정 및 직배 저지 투쟁 경과가 정리돼 있는 한편, 영화계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진흥법 시안 전문 역시 수록돼 있다. 한편 4면에 게재된 글(「[투쟁논단] 직배저지 투쟁에서 영화진흥법 쟁취 투쟁으로 떨쳐나가자!」)은 영화인들의 직배 저지 운동이 영화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영화인운동본부 · 온라인 열람
DJNK409_0001_1
우리영화 2호Periodicals
1988년 10월에 발행된 창간호와 비교해, 1989년 5월 22일 발행된 《우리영화》 2호는 발행처가 '미국영화직배저지·영화진흥법쟁취 영화인 투쟁위원회'(위원장 조문진, 이하 영투위)에서 '미국영화직배저지·영화진흥법쟁취·영화계민주화 영화인운동본부'(공동대표 김정현, 이장호, 홍기선, 이하 영화인운동본부)로 변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영화》 창간호를 발행한 '영투위'는 1988년 9월 21일, 영화인협회 산하 감독위원회와 청년영화인협의회가 '미국영화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라는 이름의 단체를 공동으로 결성한 후 이내 '미국영화 직배저지·영화진흥법쟁취 영화인투쟁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한 것인 한편, 《우리영화》 2호의 발행처인 '영화인운동본부'는 1989년 2월 20일, 한국영화감독협회(회장 권영순)와 민족영화위원회(위원장 이장호)가 공동 결성한 단체이다. 그러나 '영투위'를 공동 발족한 영화인협회 산하 감독위원회의 감독들이 1988년 11월 30일, 영협을 탈퇴해 한국영화감독협회를 결성하였다는 점과 청년영화인협의회가 1988년 12월 17일, 민족영화위원회 창립과 함께 해체, 각 소위로 흡수되었다는 점에서 '영투위'와 '영화인운동본부'의 연속성이 확인된다. 한편 본 자료 1면의 "영화진흥법 쟁취, 어디까지 왔나"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직배저지 투쟁과 영화진흥법 쟁취 투쟁, 영화계 민주화 운동 등, 3가지 성격의 운동이 하나의 연대로 통합된 연유 및 당위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글은 그간의 직배 저지 투쟁의 문제, 즉 "직배 저지 투쟁과 법 쟁취 투쟁을 동일시하거나 이 둘을 단계론적으로 파악"해온 것에 대한 문제의식 및 "이 둘을 영화계 민주화 투쟁의 의식적·조직적 토대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또 유기적이고 전반적인 영화계 민주화 투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은 영화인들의 중론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우리영화》 2호는 직배 저지 및 영화법 개정 관련 영화계 민주화를 위해 전개한 1988년 이후 1년 여간의 운동을 점검하고 영화인 분열 및 반목 현상을 당면 문제로 설정하는 한편, 영화 운동의 조직화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영화인운동본부 · 온라인 열람
DJNK409_0002_1
예술정보 23호Periodicals
《예술정보》는 1987년 8월, 신촌 옛 연우소극장 자리에 개관한 "예술극장 한마당"(대표 유인택)이 발행한 예술계 소식지로, 1987년 11월 15일 창간호를 시작으로 월 2회(발행일: 1일, 16일) 정기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간행물은 "민족예술을 가꾸고 키워간다"는 표어 아래, 연극 및 공연, 영화 및 각종 행사, 전시 및 강습 등, 예술계를 망라한 소식 및 문화예술 평문, 기획기사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예술정보》 23호(1988년 10월 18일 발행)에는 다양한 공연, 행사, 전시, 강습을 소개하는 한편 장선우 감독이 기고한 직배 투쟁 및 영화진흥법 제정과 관련한 시론, "미국영화 직배상영 저지와 영화진흥법쟁취 투쟁에 대하여"가 게재되어 있다. 이 시론에서 장선우 감독은 "분단을 넘어서고, 동구권과도 대등하게 교류하는 시대에 그 나라 대중문화 수준을 그대로 대변하는 영화가 미국영화의 식민지 상태로 전락한다는 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일인가. (...중략...) 영화인들의 투쟁은 단순히 미국영화 직배 상영을 저지하고 저질 미국영화를 몰아내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의 부끄러운 한국영화의 작태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데 있으며, 정말 민족 대중 속에서 지지받는 영화로 다시 태어나길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다. 그 희망을 처음부터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행 영화법이기에 우리는 새로운 영화진흥법의 제정을 또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라 말하며, 미국영화 직배 저지 운동을 영화진흥법 쟁취 투쟁으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영화계 민주화를 이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JNK410_0001_1
직배영화 반대시위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사진 우측 하단, 사진이 촬영된 날짜가 '90.12.8로 찍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에서 일부 영화인들의 삭발식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T679338_01
직배영화 반대시위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사진 우측 하단, 사진이 촬영된 날짜가 '90.12.8로 찍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에서 일부 영화인들의 삭발식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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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배영화 반대시위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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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전 영화인 총단결로 영화진흥법 쟁취하자!", "영화인 대동투쟁! <사랑과 영혼> 물러간다", "직배영화 몰아내어 한국영화 꽃피우자"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영화인들 사이로 영화배우 윤일봉,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배우 김지미, 신성일 등의 모습이 눈에 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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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전 영화인 총단결로 영화진흥법 쟁취하자!", "영화인 대동투쟁! <사랑과 영혼> 물러간다", "직배영화 몰아내어 한국영화 꽃피우자", "<사랑과 영혼> *영하는 곽정환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영화인들 사이로 영화배우 윤일봉,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배우 김지미, 신성일 등의 모습이 눈에 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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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영화직배저지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직배영화 결사반대", "영화인 대동투쟁! <사랑과 영혼> 물러간다", "직배영화 몰아내어 한국영화 꽃피우자", "<사랑과 영혼> 관람거부!! 한국영화 ****"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영화인들 사이로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배우 김지미, 신성일 등의 모습이 눈에 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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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 직배 반대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사진 좌측, 영화배우 신성일이 메가폰을 들고 있으며, 영화배우 윤일봉,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배우 김지미 등의 시위 대열에 함께 앉아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42_01
조협소식 창간호(1호)Periodicals
1989년 3월에 발족한 '한국영화조감독협의회'가 발행한 소식지로, 구체적인 발행 주기 및 연속 발행 여부는 미상이다. 《조협소식》 창간호(1989년 5월 1일 발행)에는 한국영화조감독협의회 결성 배경 및 결성대회 보고, 조직 구성 및 임원명단, 결성선언문 및 강령, 사업계획 등이 자세히 게재돼 있다. 특히 3면에 수록된 "조감독협의회 강령"에는 조협이 결성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서 "미국 거대 독점 영화 자본의 제국주의적 수탈 방법인 '직접배급'"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실천 강령으로 영화계 도제제 및 도급제 폐지, 정당한 임금 요구, 미국영화 직배 독점 원천 봉쇄, 영화진흥법 쟁취, 민주적 조직 및 제도 개혁, 영화인 연대 및 단결, 민족영화 건설 등을 다짐하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JNK411_0001_1
88 스크린쿼타이행현황Other material
전국 각 시·도 소재 공연장에 대한 1987년도 스크린쿼터 이행 현황 및 위반 공연장 행정조치 결과 등의 문서를 모아놓은 문화공보부 예술1과의 서류철이다. 이 시기에 스크린쿼터 관리·감독 권한은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가 전국 각 시·도에 위임하고 있었으며, 권한을 위임 받은 시·도는 각 지역에 등록 신고된 공연장에 대해 한국영화 상영 일수 조사 및 위반 공연장 행정 조치를 시행하고 이를 문공부에 보고토록 돼 있었다[근거법령: 영화법 제23조 제4호 및 동법 제30조 2(권한의 위임); 동법 시행령 제20조의 4(권한의 위임)]. 이 자료를 통해 1988년도에 실시된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이 서류철에는 ① 공연장 스크린쿼터 이행 실태 조사 배경과 위반 공연장에 대한 행정처분 및 조치 사항, 근거 법령 등을 정리한 내부 문서 "일일업무보고"(문화공보부 예술국, 1988.3.26.) [PDF 원문 pp.47~57 참조], ② 교호상영제 불이행 공연장에 대한 행정조치 권한 및 법적 근거에 대한 문공부의 유권해석을 살펴볼 수 있는 "교호상영제 불이행 공연장에 대한 처분"(예일 35170-4490, 1988.3.25)과 "교호상영 불이행 공연장에 대한 벌칙규정에 관한 질의(문공 35171-89, 1988.1.22.), "질의 내용 검토" [이상 PDF 원문 pp.20~22 참조], ③ 서울 신영극장의 UIP 직배 영화 <위험한 정사> 상영과 영화계의 대응(신영극장에 대한 영화 배급 중단)에 따른 한국영화의무상영 및 교호상영 미준수 사태에 대해 신한극장 측이 문공부에 제출한 선처 민원 서류 및 문공부의 답변서 "질의에 대한 회신(예일 35171-16752, 1988.11.2.)과 "스크린쿼터제에 관한 질의"(신영 제1호, 1988.10.22.) [이상 PDF 원문 pp.14~15] ④ 스크린쿼터에 대한 철저한 감독을 요하는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스크린쿼터 연구조사단'(1988년 4월 발족)의 민원 서류와 이에 대해 문공부가 각 시·도에 시달한 공문 "스크린쿼타 철저 실시와 관련 민원 처리"(예일 35171-6660, 1988.5.2.), "스크린쿼타 철저 실시에 관한 건"(영협(감·위)제66호, 1988.4.15.) [이상 PDF 원문 pp.16~17 참조]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이 서류철에는 1988년 1~2월경 전국 각 시·도가 문공부에 제출한 1987년도 각 공연장 영화 상영 현황이 첨부돼 있는데, 이는 1987년 현재 각 지역의 공연장 현황을 일별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1기(제5~6공화국)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DZZ0001380_01
민주화를 갈망하는 애국영화인에게 드리는 글 ⅡOther material
애국영화인 일동'의 명의로 1987년 12월 11일, 제13대 대선을 앞두고 작성된 글이다. 전두환 정권이 감행한 미국영화 수입 개방을 규탄하며,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의 야권 단일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글은 특히 미국영화 수입 개방을 "미국영화에 의해 활개도 제대로 못펴는 한국영화의 현실에 (중략) 한국영화의 숨통을 결정적으로 막아버리는 반민족적 행위"라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 글에 앞서 '애국영화인 일동'은 1987년 12월 1일, 「민주화를 갈망하는 애국영화인에게 드리는 글 I」을 작성, 배포한 바 있으며, 첫 번째 글의 원문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성하훈, "한국영화운동 40년(11) 충무로라는 토양에 영화운동의 새로운 싹을 틔우다"(2020.05.16.)에서 확인할 수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ZZ0001349_01
이땅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애국시민에게 드리는 영화인의 글 - 국민적 민중후보 김대중 선생을 대통령으로 추대한다.-Other material
1987년 12월 14일 '이땅의 영화인들' 명의로 작성된 글로, 제13대 대선에 출마한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내용이다. 본 컬렉션의 또 다른 자료, 「민주화를 갈망하는 애국영화인에게 드리는 글 II」(관리번호 DZZ0001349_01)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ZZ0001350_01
평화민주당에서- 이땅의 영화인에게 드리는 글Other material
제13대 대선 당시 평화민주당이 발표한 영화계 관련 공약문으로, 특히 스크린쿼터 제도와 관련해 현행 외화 대 방화 상영 비율 6:4를 5:5로 조정하는 안이 담겨있다. 한편, 1988년 11월, 임권택, 이장호 감독 등 영화인 17명은 이 자료를 근거로 평민당사를 방문, 영화진흥법안의 정기국회 공동발의 약속 이행을 요구한 바 있다. ("영화진흥법안 국회 발의 촉구", 《한겨레신문》, 1988.11.09., 12면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ZZ0001351_01
한국 영화개혁 선언문Other material
「한국영화 개혁 선언문」은 1987년 12월 28일, '한국영화개혁실천준비위원회(가칭)'가 작성한 문서로, 한국영화개혁실천준비위원회는 영화 민주화를 위해 영화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 28인이 발기인으로 참여, 발족한 단체이다. 발기인 명단에는 '감독위원회'로 이장호, 이두용, 유현목, 김수용, 정지영 등 20인의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위원회'로 최금동, 이희우, 백결 등 7인의 시나리오 작가 이름이 올려져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ZZ0001352_01
UIP 직배 반대Stills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이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을 개봉하자,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인협회 소속 영화인들이 12월 1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에 이어, 영화인협회는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모든 영화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12월 8일, 서울시네마타운 앞에서 "미 직배영화 저지 궐기대회"를 가졌다. ("영협 영화제작 중단, 《경향신문》, 1990.12.06., 17면) 영화배우 신성일, 김지미,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배우 윤일봉 등이 시위 대열에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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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 대책위원회 결성Stills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사진 속 정지영 감독은 당시 스크린쿼터 감시단 위원장을 맡았다.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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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 대책위원회 결성Stills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사진 속 정지영 감독은 당시 스크린쿼터 감시단 위원장을 맡았다.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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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 대책위원회 결성Stills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사진 속 정지영 감독은 당시 스크린쿼터 감시단 위원장을 맡았다.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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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 대책위원회 결성Stills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사진 속 정지영 감독은 당시 스크린쿼터 감시단 위원장을 맡았다.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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