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집가 홍영철 소장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 컬렉션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기증 컬렉션 · 132 점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홍영철 소장 자료 중 일제강점기 영화 관련 사진 132점(복본 제외)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기증 컬렉션 · 132 점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홍영철 소장 자료 중 일제강점기 영화 관련 사진 132점(복본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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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한국 장편영화 중 가장 오래된 필름’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의 한 장면. 무성영화 시대의 많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청춘의 십자로>도 영화 사업과는 전혀 무관했던 ‘전주(錢主)’의 투자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제작자 박창수는 남원 출신으로 배우를 지망하던 청년이었다. 사재를 털어 안종화에게 영화 연출을 맡긴 박창수는 ‘박연’이라는 예명으로 영화 속의 악인인 돈 많은 모던보이 ‘개철’을 연기했다.
1930년대 · 청춘의 십자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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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한국 장편영화 중 가장 오래된 필름’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의 한 장면. 무성영화 시대의 많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청춘의 십자로>도 영화 사업과는 전혀 무관했던 ‘전주(錢主)’의 투자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제작자 박창수는 남원 출신으로 배우를 지망하던 청년이었다. 사재를 털어 안종화에게 영화 연출을 맡긴 박창수는 ‘박연’이라는 예명으로 영화 속의 악인인 돈 많은 모던보이 ‘개철’을 연기했다.
1930년대 · 청춘의 십자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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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한국 장편영화 중 가장 오래된 필름’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의 한 장면. 무성영화 시대의 많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청춘의 십자로>도 영화 사업과는 전혀 무관했던 ‘전주(錢主)’의 투자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제작자 박창수는 남원 출신으로 배우를 지망하던 청년이었다. 사재를 털어 안종화에게 영화 연출을 맡긴 박창수는 ‘박연’이라는 예명으로 영화 속의 악인인 돈 많은 모던보이 ‘개철’을 연기했다.
1930년대 · 청춘의 십자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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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감독의 영화 <강건너 마을>(1935) 스틸 사진. 1930년대 조선영화 제작 붐과 함께 새로 생겨난 프로덕션인 한양영화사에서 제작했다. 1934년에 나운규와 전택이가 만든 한양영화사에 차상은이 합류하며 <강건너 마을>을 제작했다. 패기 있는 출발이었지만, 영화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봉춘의 일기"에 따르면, 금광업자였던 김규영이 출자해 제작에 들어갔지만 그가 필요한 만큼 자본을 대지 못하자 차상은이 제작과 출연을 동시에 하면서 혼란을 겪었다. 그러는 와중에 김규영이 투자금을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결국 그가 투자한 자금만큼 필름을 돌려주는 사태로 치달았다. 또한 현상한 필름의 화면이 뿌옇고 동시녹음된 사운드는 거의 들리지 않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운드 보완과 현상을 조정하는 부가적인 작업이 필요했으며, 흥행 성적 역시 좋지 않았다고 전한다. (전택이, "배우생활 10년기(제3회)", 《삼천리》, 1941.7, 149쪽)
1930년대 · 강건너 마을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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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감독의 영화 <강건너 마을>(1935) 스틸 사진. 가난 때문에 색주가에 팔린 학실(현순영 분)은 빚을 갚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사이 오빠 용수(전택이 분)는 절도죄로 감옥에 다녀왔다.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며 갖은 소문에 시달리던 가족은 결국 마을을 떠난다는 내용. ("한양영화사작품 <강건너 마을>", 《조선일보》1935.09.19., 3면 참조)
1930년대 · 강건너 마을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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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와 윤봉춘이 함께 한 영화 <무화과>(나운규, 1935)는 무명의 예술가들의 삶을 그렸다. 이 영화에서 나운규는 문학에 뜻을 둔 홍인식으로, 윤봉춘은 음악에 뜻을 둔 문병선으로 분했다. 영화의 제목인 ‘무화과’는 극 중 홍인식이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1935년 한 해 동안의 영화를 돌아보며 쓴 글에서 박기채는 <무화과>의 제작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소위 조선의 예술진영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무명작가를 학대하는가를 표현하기에 애를 쓴 작품”이라는 점을 평가했다(박기채, "영화 1년의 개관적 회고, 특히 제작된 영화를 중심으로 (1)", 《조선일보》 1935.12.21).
1930년대 · 무화과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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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와 윤봉춘이 함께 한 영화 <무화과>(나운규, 1935)는 무명의 예술가들의 삶을 그렸다. 이 영화에서 나운규는 문학에 뜻을 둔 홍인식으로, 윤봉춘은 음악에 뜻을 둔 문병선으로 분했다. 영화의 제목인 ‘무화과’는 극 중 홍인식이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1935년 한 해 동안의 영화를 돌아보며 쓴 글에서 박기채는 <무화과>의 제작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소위 조선의 예술진영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무명작가를 학대하는가를 표현하기에 애를 쓴 작품”이라는 점을 평가했다(박기채, "영화 1년의 개관적 회고, 특히 제작된 영화를 중심으로 (1)", 《조선일보》 1935.12.21).
1930년대 · 무화과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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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환 감독의 영화 <바다여 말하라>(1935)의 한 장면. 안석영 원작을 영화화한 것으로 촬영은 이명우가 맡았다. 젊은 어촌 사람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이 영화는 해금강 로케이션을 통해 살아있는 자연을 담아냈다. 비록 등장인물과 스토리는 단조롭지만 “촬영 잘된 여러 화면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평가(《동아일보》 1935.1.15)를 받았다.
1930년대 · 바다여 말하라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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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하에 흐르는 정열>(안종화, 1935)의 한 장면. 금강키네마의 <청춘의 십자로>로 영화계에 복귀한 신일선이 이어서 출연한 안종화 감독의 영화.
1930년대 · 은하에 흐르는 정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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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하에 흐르는 정열>(안종화, 1935)의 한 장면. 금강키네마의 <청춘의 십자로>로 영화계에 복귀한 신일선이 이어서 출연한 안종화 감독의 영화.
1930년대 · 은하에 흐르는 정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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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하에 흐르는 정열>(안종화, 1935)의 한 장면. 금강키네마의 <청춘의 십자로>로 영화계에 복귀한 신일선이 이어서 출연한 안종화 감독의 영화.
1930년대 · 은하에 흐르는 정열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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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촬영소가 제작한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 <춘향전>(이명우, 1935)의 한 장면. 발 너머로 춘향(문예봉 분)과 몽룡(한일송 분)이 있다. 이전에도 무성영화 <춘향전>(하야카와 고슈, 1923)이 제작되었지만, 안석영은 1935년의 발성영화 <춘향전>을 가리켜 “각본을 가지고 감독과 촬영이라는 부분을 나누어 영화화”한 첫 번째 <춘향전>이라고 썼다("조선 토키 <춘향전>을 보고", 《조선일보》, 1935.10.11). 조선인 감독이 조선인의 시나리오로 조선인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 춘향전(1935)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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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영남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이규환 감독의 <무지개>(1936)의 한 장면.
1930년대 · 무지개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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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발성영화 <미몽>(양주남, 1936)의 한 장면. 집을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던 애순(문예봉 분)이 탄 차에 딸이 치이는 사고가 난다. 교통사고를 당한 딸이 입원한 병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침대에 누워있는 딸을 살피는 애순, 창가에서 먼곳을 바라보는 애순의 남편(이금룡 분), 그리고 애순의 옆에 서있는 딸의 담임교사(나웅 분).
1930년대 · 미몽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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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발성영화 <미몽>(양주남, 1936)의 한 장면. 범죄를 작당한 두 남자(김한, 최운봉 분).
1930년대 · 미몽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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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영화사가 제작한 나운규의 첫 발성영화 <아리랑 제3편>(1936)의 한 장면. 무성영화 <아리랑>(1926)과 같은 방식으로 나운규가 원작, 각색, 감독, 연기 등을 모두 맡았다. 발성영화 <아리랑 제3편>은 무성영화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영진의 ‘절규’를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으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나운규의 연기는 ‘킹콩 흉내’에 불과해 불쾌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1930년대 · 아리랑 제3편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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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영화사가 제작한 나운규의 첫 발성영화 <아리랑 제3편>(1936)의 한 장면. 무성영화 <아리랑>(1926)과 같은 방식으로 나운규가 원작, 각색, 감독, 연기 등을 모두 맡았다. 발성영화 <아리랑 제3편>은 무성영화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영진의 ‘절규’를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으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나운규의 연기는 ‘킹콩 흉내’에 불과해 불쾌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1930년대 · 아리랑 제3편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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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영화'를 표방했던 안종화 감독의 <역습>(1936)의 한 장면. 고무공장 직공이었던 이금룡이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도를 저지른 남자를 연기했다.
1930년대 · 역습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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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촬영소가 <춘향전>(이명우, 1935), <아리랑고개>(홍개명, 1935)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발성영화 <장화홍련전>(홍개명, 1936).
1930년대 · 장화홍련전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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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후편)>(이명우, 1936)에서 흑두건 일당에게 붙들린 양반(이금룡 분). <흥길동전(후편)>에는 주인의 재산이 탐나 흑두건이라는 악당을 조직한 하인이 등장한다. 홍길동이 흑두건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
1930년대 · 홍길동전(후편)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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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봉영화원과 일본 신코키네마가 제휴한 영화 <나그네>(이규환, 1937)의 한 장면. 일본에서 공개된 제목은 '여로'이다.
1930년대 · 나그네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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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정해협>(신경균, 1937)의 한 장면.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애정을 그린 함대훈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신경균 감독의 첫번째 연출작으로, 역시 일본영화계에서 활동했던 양세웅이 촬영을 맡았다. 조선영화계가 발성영화로 한참 이행하던 중이었으나,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김일해, 김영옥, 김덕심, 손일포 등 출연.
1930년대 · 순정해협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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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급사인 기신양행이 제작부를 신설하고 만든 영화 <심청>(안석영, 1937)의 한 장면. 이기세의 각색, 안석영의 연출, 이명우의 촬영으로 제작되었다. 김소영이 '심청'으로 출연했다.
1930년대 · 심청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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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몽녀>(나운규, 1937)의 한 장면. 나운규가 일본 개봉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집필한 후 원작자 이태준의 허가를 얻어 영화화에 착수했다.
1930년대 · 오몽녀 ·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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