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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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29478) / SPX-128 프로젝트로 촬영한 영상이다. 1952년 4월 14일, 극동사령부 예하 통신사진대가 영등포 일대의 전쟁 피해 및 복구 장면을 배경으로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 서울팀의 교육 및 산업 재건 활동을 인터뷰 형식으로 촬영한 푸티지이다. 전반부는 교사가 파괴된 영등포국민학교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야외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UNCACK 서울팀 교육 원조 관계자와 한국인 교장이 등장하는 인터뷰가, 후반부에는 시설 복구 작업에 한창인 경성방직공장을 배경으로 UNCACK 요원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모든 장면은 연출에 의해 촬영됐고, 군데군데 반복 촬영한 테이크들이 이어져 있다. 슬레이트 정보에 의해 이 영상이 SPX-128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촬영된 것을 알 수 있는데, SPX-128은 명백히 전 과정에서 미 육군 심리전부의 통제 및 지원 하에 미군의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아시아 지역에서 선전할 목적으로 추진됐다. 지금까지 공개된 National Archives 기록문서에 따르면 극동사령부 사령관이 제안한 ‘민간 구호 및 경제 원조 프로그램 영상제작 프로젝트’에 대해 미 육군부 통신감실에서 1952년 2월 20일자로 프로젝트 번호를 ‘SPX-128’로 지정한 이후 여러 영상이 개별 실행승인 절차를 거쳐 촬영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 영상에 대한 정보는 그 중 초기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기록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특별프로젝트 SPX-128로 담은 UNCACK 활동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 SPX-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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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29481) / SPX-128 프로젝트로 촬영한 영상이다. 1952년 4월 15일부터 16일까지 영등포 및 그 일대에서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의 활동상을 담은 영상이다. 전반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한강철교를 배경으로 UNCACK 서울 및 경기도 지역팀장(Team Commander)인 Charles R. Munske 대령과의 인터뷰를 통해 UNCACK이 전시 남한의 민사 업무 전반을 감당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후반부에서는 영등포역 조차장(철도차량기지)으로 추정되는 곳의 구호품 집결 창고에 방문하여 세계 각국의 다양한 구호단체로부터 들어온 구호물자가 UNCACK의 주도로 시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수립한 계획 하에 요구호자 및 기관에 배분되는 과정을 UNCACK 보급담당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슬레이트 정보에 의해 이 영상이 SPX-128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촬영된 것을 알 수 있는데, SPX-128은 명백히 전 과정에서 미 육군 심리전부의 통제 및 지원 하에 미군의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아시아 지역에서 선전할 목적으로 추진됐다. 지금까지 공개된 National Archives 기록문서에 따르면 극동사령부 사령관이 제안한 ‘민간 구호 및 경제 원조 프로그램 영상제작 프로젝트’에 대해 미 육군부 통신감실에서 1952년 2월 20일자로 프로젝트 번호를 ‘SPX-128’로 지정한 이후 여러 영상이 개별 실행승인 절차를 거쳐 촬영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 영상에 대한 정보는 그 중 초기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기록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특별프로젝트 SPX-128로 담은 UNCACK 활동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 SPX-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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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29483) / SPX-128 프로젝트로 촬영한 영상이다. 1952년 4월 18일 서울의 어느 산 언덕에서 UNCACK(주한유엔민간지원사령부) 서울팀이 후원하고 학생, 보이 스카우트, 구세군 등 다양한 한국인 단체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나무를 심는 장면이 담겼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본격적인 재조림 사업이 전개되지는 못했지만 한국 정부가 제정한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이 이 해 1월에 시행되고 식목일을 맞아 숲의 중요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있었고, UNCACK도 지역별로 산림 부문 전문 요원을 두고 지역 사업에 자문을 하거나 지방 행정기관 등과의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다만 관련 기록문서에 따르면 UNCACK 서울팀은 1951년 기준으로 산림 부문이 편성되지 않았으므로 1952년 영상에 담당 요원이 등장한다는 것은 조직이 개편됐거나 임시로 산림 부문을 운영했을 것을 의미한다. 슬레이트 정보에 의해 이 영상이 SPX-128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촬영된 것을 알 수 있는데, SPX-128은 명백히 전 과정에서 미 육군 심리전부의 통제 및 지원 하에 미군의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아시아 지역에서 선전할 목적으로 추진됐다. 지금까지 공개된 National Archives 기록문서에 따르면 극동사령부 사령관이 제안한 ‘민간 구호 및 경제 원조 프로그램 영상제작 프로젝트’에 대해 미 육군부 통신감실에서 1952년 2월 20일자로 프로젝트 번호를 ‘SPX-128’로 지정한 이후 여러 영상이 개별 실행승인 절차를 거쳐 촬영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 영상에 대한 정보는 그 중 초기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기록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특별프로젝트 SPX-128로 담은 UNCACK 활동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 SPX-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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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0574) / 1952년 4월 1일에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 서울팀이 후원하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재조림사업을 기록한 영상이다. National Archives 온라인 카탈로그의 정보, ‘Chong-Am school on the slopes of Yong Du San’에 따르면 서울 용두동(현 제기동)의 종암초등학교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용두산으로 불린 서울 내 산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용두동의 유래가 되었을 용머리 모양의 용두산은 인근의 개운산, 천장산 중 하나이거나 모두를 일컫는 말일 수도 있다. UNCACK이 전시 민간원조의 여러 분야 중 외형상이나마 재조림사업을 포함했다는 것, 그리고 시장이 현장에 참석했다는 것은 당시 한국에서 파괴된 산림의 재건이 중요한 사안이었음을 방증한다. 다만 전시이고 재정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므로 본 영상을 포함한 여러 영상에서 보듯이 자선단체 또는 초중고학생들을 투입하여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시적 UNCACK와 미시적 AFAK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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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29485) / 1952년 5월 5일과 8일,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 본부가 있는 부산의 고무신 공장과 본부 사령관 집무실을 찍은 영상이다. 이 영상에 직접적인 묘사는 없으나 UNCACK의 한국 산업 재건을 위한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고무신 공장에도 원자재 및 기술지원이 있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한국에서 고무신 제조업은 1940년대부터 활황이었고 전쟁기 미국의 원조도 방직, 고무신 등 생필품 위주의 경공업에 우선 투입되었으므로 특히 부산 지역에 삼화고무, 태화고무 등 고무신 제조 공장이 성장하기 시작, 1950~1960년대의 국내 경공업을 주도하게 된다.
거시적 UNCACK와 미시적 AFAK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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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4161) / 이 영상은 6.25전쟁 정전을 앞둔 1953년 6월에 열린 미 육군 제10군단과 1군단의 행사를 기록하고 있다. 전반부는 6월 8일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로 추정되는 곳의 제이드 민사처병원 준공에 따른 민간 이양식 풍경으로서, 건립에 참여한 제4통신대대가 촬영했다. ‘제이드 병원’은 미 장로교 선교사 주도로 운영했던 병원인데, 이 중 인제군에서 천막 병원 형태로 운영되던 것을 미 육군 제10군단 및 군단 민사처, UNCACK(주한유엔민사지원사령부)의 지원 및 감독으로 10군단 예하 제4통신대대가 건립을 추진, 6월 3일에 준공함에 따라 6월 6일 오후 2시 반부터 민간 이양 기념식을 연 것이었다. 작은 병원 하나의 건립 지원사업에 대해 미 10군단장, 강원도지사, 한국 국방장관이 참석하여 훈장 및 표창장을 수여하는 모습은 전시 의료 시설 부족 문제, 특히 강원도 등 낙후 지역에 대해 한국 정부와 미군 모두의 고충이 있었음을 방증한다. 이후 유엔군사령부 경제조정관실의 기록에 따르면 이 병원은 재정난 등으로 이후에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영상의 후반부는 의정부 캠프 잭슨(이후 캠프 레드 클라우드)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열린 미 육군 1군단의 한국 파병 1,000일 기념식 장면으로서, 6월 8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이승만 대통령 부부, 유재흥 참모총장 서리, Maxwell D. Taylor 미8군 사령관, Bruce C. Clarke 미 1군단장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국군 1사단, 영연방 제1사단 등 미 육군 1군단에 편재됐던 다국적 부대의 의장대, 그리고 군단 지역 의료 담당 조직이었던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 소속원들이 등장하여 전쟁의 장기화와 이를 지탱했던 다국적 지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6.25전쟁에서 1군단은 수도권 지역을 담당했고 평양 점령 등 초기 북진의 선봉 부대였기도 했던 만큼, ‘파병 1,000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굳건한 군사력과 변함없는 국제적 지원의 상징으로 과시할 만한 것이었다.
거시적 UNCACK와 미시적 AFAK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 제이드 민사처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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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5291) / 1953년 3월 중순에 강원도 인제군, 경기도 파주, 서울에서 각각 진행된 AFAK(대한미군원조) 건설 원조 현장 풍경을 기록한 영상이다. 강원도 인제군 내면 자운리의 제이드 민사처병원은 미 제10군단 제4통신대대가 건설 자재를 지원하여 수술실과 병동을 추가 확충하는 AFAK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한국인 병원장 인터뷰를 포함하여 미군 원조 사업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형식을 취한 것은 홍보용 TV방영물에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장면은 미국의 군 홍보 시리즈 <The Big Picture>의 한 에피소드인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에 수록됐고, 이로써 이 장면이 AFAK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음향이 남아 있지 않은 이후 장면들은 파주 법원리의 천현국민학교와 서울의 숙명여대 교사 건설 현장을 담고 있다. 천현국민학교 재건(AFAK 프로젝트 번호 7001-I-M-I) 사업은 제48야전포병대대를 주축으로 제1343전투공병대대, 제512공병덤프트럭중대가 협조하여 추진됐으며, 기록에 따르면 같은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이 해 10월에 KCAC(한국민사원조사령부)에 의해 미 해병대 제1사단의 건설 및 교육 재료 기증 사업이 이어졌다. 9월의 서울 용산 본교 복귀를 앞둔 숙명여대의 강당 등 교사 건설 장면은 영상 내에 별다른 단서가 남아 있지 않고 관련 기록도 부재하여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이전했던 대학들이 서울로 복귀하기 시작하면서 파괴된 교사의 재건, 공간 부족 등의 문제에 당면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추정한다.
거시적 UNCACK와 미시적 AFAK · AFAK · RG111-미 육군 통신대 · 제이드 민사처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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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6288) / 이 영상은 1954년 3월 23일 AFAK(대한미군원조) 프로젝트 제8083호로 진행된 입석리중학교 건설 현장으로 시작한다. 관련 AFAK 보고 문건에 공사 장소가 ‘Ip-song-ni’로 표기돼 있고, 이 프로젝트를 후원했던 미 제2보병사단 예하 제38야전포병대대가 최소한 1953년 4월까지는 미 제9군단 지역에 합류해 있었다는 기록이 확인되므로 이 곳이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입석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제10군단이 1953년 6월에 UNCACK(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 원조에 의해 건립한 제이드 민사처병원 진료소에서 1954년 3월에 AFAK(대한미군원조) 프로젝트 제9219호로 진행된 공간 조정 및 추가확보 공사 장면이다. 영상에 담긴 AFAK 안내판은 제9219호에 대한 것 뿐이지만, 이 시기에 병원 공사 관련 AFAK 프로젝트는 동시에 두 건이 더 진행 중이었다. 이 영상 속의 병원 공사 진척 상황을 감안하면 바로 이 공사 현장 앞에서 김봉무 병원장의 인터뷰를 촬영한 다른 영상(National Archives, local ID: 111-LC-35291)과 거의 같은 시기에 촬영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시적 UNCACK와 미시적 AFAK · AFAK · RG111-미 육군 통신대 · 제이드 민사처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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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1575) / 이 영상은 1952년 가을의 강원도 지역 피난민 소개(疏開)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슬레이트와 National Archives 카탈로그 정보에 따르면 1952년 10월 22일부터 4일간 UNCACK(주한유엔민간지원사령부)이 피난민들을 인솔하여 춘천에서 홍천으로 소개하는 여러 시퀀스와 10월 29일의 호송트럭 이동 장면이 순서 없이 혼재되어 있고, 화면이나 슬레이트 상으로는 장소정보도 명확히 식별되지 않는다. 난민 소개는 정부의 대상자 선별 및 통제하에 각 지역 행정기관과 지역별 UNCACK팀이 긴밀히 협조하여 진행됐다. 정부는 행정기능, 치안, 구호대책이 마련된 ‘완전수복지구’에 한하여 복귀를 허용하는 등 전쟁기 내내 난민의 소재지와 이동 상황을 철저히 통제하고자 했고 미군도 전시 작전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기준 하에서 난민의 분산 이동 및 임시 수용에 관한 사항들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들은 난민들의 다양한 사정과 생계 문제를 세심히 고려하지는 못한 것으로서 현실적으로는 관리와 구호 측면에서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군정과 민사 사이 : 피난민 소개 및 귀환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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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1577) / 1952년 10월 14일자로 춘천지구 유엔군 사령관 및 국군 계엄사무과 과장의 이름으로 ‘계속 거주 허가자’를 제외한 시민들은 홍천군 이남으로 이동하라는 포고령이 붙는다. ‘인구과밀로 인해 군사작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영상은 약 일주일 후인 10월 22일과 23일의 춘천 난민 소개 상황을 기록하면서 한편으로는 춘천의 번잡한 거리를 촬영하여 군사적 이유로 추운 가을에 난민을 소개시키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선전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춘천 시내에 잔류한 계속 거주 허가자들의 활기찬 모습과 떠나는 난민들의 밝은 표정이 연출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촬영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한편으로는 민사원조 기관이지만 결국은 미8군 8201부대 패치를 달고 있는 UNCACK(주한유엔군민간원조사령부) 요원들이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군정과 민사 사이 : 피난민 소개 및 귀환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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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1576) / 1952년 10월 하순, 전쟁 피난민들이 춘천의 집결지에 모이고 명부 확인을 거쳐 군용 호송트럭을 통해 수용지로 이동하는 과정을 촬영한 일련의 영상 중 하나이다. 후반부의 10월 27일자 촬영본은 ‘김만복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연출하여 특별히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피난민 소개 작전이 국군, 경찰, 주한유엔민간지원사령부(UNCACK)와 미군의 협력으로 진행됐음을 잘 보여주는 영상으로서, 오히려 연출되지 않은 부분에서 피난민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군정과 민사 사이 : 피난민 소개 및 귀환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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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Local ID: 111-LC-31578) / 김만복과 그 가족이 횡성 소개지에 도착하여 밝은 모습으로 거주 난민 명부에 등록하고 구호식량을 배급받아 임시 배정된 초가집에 머무르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1952년 10월 27일의 영상과, 춘천에서 타 소개지로 떠나는 난민 호송트럭의 모습을 반복해서 촬영한 10월 28일과 11월 4일의 영상이 합본되어 있다. 김만복 시퀀스는 UNCACK(주한유엔민사지원사령부)가 난민 대상으로 식량을 배급하고 거주지를 배정해 주는 과정을 통해 인도주의적 시혜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이런 목적에서 김만복 가족을 위해 난민 대다수에 해당되었을 집단 수용소가 아닌 주택을 배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군정과 민사 사이 : 피난민 소개 및 귀환 · UNCACK · RG111-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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