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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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ID: HNR 22.245) / 이 영상은 뉴스릴 시리즈 ‘오늘의 뉴스’(News of the Day) 중 한 대목으로서, 제주도로 이송된 전쟁고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극동 제5공군이 서울에서 철수를 준비한 것과 관련, 러셀 L. 블레이즈델(Russell L. Blaisdell) 중령과 서울 고아원에서 일했던 조종사 딘 헤스(Dean Hess) 공군 대령은 아이들과 보호자들을 대피시킬 계획을 세웠다. 헤스 대령는 한국 본토 남서쪽 섬인 제주도를 제안했다. 블레이즈델 대령과 그의 목사 조수인 마이클 스트랭(Michael Strang)은 생후 몇 주부터 12세까지 806명의 고아와 80명의 보호자를 맡았다. 그들은 고아들을 배로 제주도 공군기지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피난민들이 인천항에 몰렸다. 결국 12월 19일 블레이즈델 대령은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미 제5공군 작전사령관인 T.C 로저스(T.C. Rogers) 대령을 만났다. 전투화물사령부(Combat Cargo Command) 사령관인 윌리엄 터너(William Tunner) 중장은 일본의 제61병력수송단(61st Troop Carrier Group) 소속 C-54 스카이마스터(Skymasters) 12대에게 지원을 명령했다. 그들은 1950년 12월 20일, 작전명 ‘크리스마스 키드리프트(Christmas Kidlift)’로 서울 김포에서 제주도 제주시공항까지 전쟁고아들을 이송했다. 김포공항에서는 제501항공의료후송대(501st Medical Air Evacuation Squadron) 소속 비행 간호사와 의무병들이 아이들의 탑승을 도왔다.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 1951 · 전쟁고아 · Hearst Corporation · Hearst Metrotone Newreel Collection - News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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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ID: USMC 102173) / “배경 쇼트”라는 슬레이트 제목이 알려주듯, 이 푸티지 영상은 미 해병대 제1사단이 1951년 3월 16일 마산 진동리의 산과 들판, 나무들, 한적한 산촌의 모습, 지게를 메고 오가는 사람들, 다리, 묘지와 비석 등 다양한 풍경들을 기록한 것이다.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 1951 · 지형 촬영 · 미 해병대 · Hearst Metrotone Newreel Collection - News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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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ID: USMC 102544) / 이 영상은 미 해병 제1사단이 1951년 4월 14일과 15일, 춘천의 어느 산봉우리와 들판과 민간의 전경, 언덕의 소나무와 잡풀, 멀리 펼쳐진 산맥들, 해병대 군악대의 연주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풍광을 기록한 장면들은 구도와 내용으로 보아 작전용 지형 기록 등 군사적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 1951 · 지형 촬영 · 미 해병대 · US Marine Corp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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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ID: USMC 104673) / 미해병대의 한국전쟁 경험 전반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미 육군 정보교육처(Office of Armed Forces, Information & Education)에서 제작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는 유엔군과 중국군의 참전 이후 후퇴 과정, 흥남철수, 고지전의 전개, 휴전협상과 포로 송환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2개 중 뒷 부분의 영상이다.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 · 1953 추정 · 선전 다큐멘터리 · 미 해병대 · US Marine Corp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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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567) / 이 영상의 전반부는 1952년 2월 9일, 미 제7보병사단의 콜롬비아 제1보병대대 배속 환영식을 촬영한 영상이다. 6.25전쟁 유엔 참전 부대 중 하나인 콜롬비아대대는 미 제24사단 소속이었다가 사단이 일본으로 복귀함에 따라 1952년 1월 28일자로 미 제7사단 제31연대에 배속됐다. 이 영상은 그에 따른 환영 및 부대 사열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원 소장처인 National Archives 정보에 따르면 장소가 ‘원당리’이고, 당시 제7사단 주둔 지역을 감안하면 강원도 양구군 원당리에서 촬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반부는 1951년 11월 16일, 미8군 극동사령부 산하 일본군수사령부(Japan Logistical Command, JLC)의 월터 레오 웨이블(Walter Leo Weible) 사령관이 집무실 책상에 앉아 담화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영상의 장소는 일본군수사령부가 있던 일본 요코하마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군수사령부는 전쟁 중에 한국에 군수품을 보급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National Archives · 1952 · 유엔군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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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5128) / 6.25전쟁의 정전 이후에도 한국에 잔류하고 있던 미군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를 섭외하여 기획된 1954년 2월의 미군위문협회(USO) 순회공연 일부 실황 기록영상이다.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신혼여행으로 도쿄에 체류 중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2월 16일에 C-54 수송기 편으로 K-16 여의도공항으로 입국, 2월 19일까지 3박 4일동안 10여 군데 이상의 미군 부대를 순회하며 총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군인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 일정 내내 조 디마지오의 동료 야구인의 부인인 진 오둘(Jean O’Doul)이 동행했으며, 육군 피아니스트 알버트 과스타페스테(Albert Guastafeste)와 이 공연의 이름을 그대로 딴 군인 밴드 ‘Anything Goes’가 함께 공연했다. 이 순회공연은 역대 USO 위문 공연 중에서도 역사에 남을 인상적인 행사로 평가되며, 우울한 성장기와 결혼생활을 보냈고 평생 연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워했던 마릴린 먼로 자신으로서도 큰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다고 후술하고 있다. 이 영상은 마릴린 먼로의 내한 위문공연 일정 중, 양구 또는 인제 인근에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미 제3보병사단에서의 1954년 2월 17일 오후 공연 장면, 당시 동두천에 소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7보병사단에서의 16일 방문 및 공연 모습, 마지막 날인 19일에 C-54 수송기로 K-2 대구 공군기지에 내려 환영 인파 속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 그리고 17일에 미 제40보병사단 제160보병연대의 ‘Grenadier Palace’ 공연장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이 차례로 편집되어 있다. 대구 공군기지 장면에서는 마릴린 먼로를 환송하기 위해 나온 영화배우 최은희와 연극배우 백성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군위문협회(USO, United Service Organizations)는 미국 내와 해외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을 격려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에서 창설된 비영리단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에 YMCA, YWCA, 구세군. 유대인 복지 위원회, 카톨릭 공동체 자선단체, 여행자 원조 협회 등의 6개의 봉사단체가 하나로 통합되어 만들어졌다. 군을 위한 USO의 여러 지원 활동 가운데 본래의 임무를 수행한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행사는 위문공연이었다. 전선에 있는 장병들에게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캠프 쇼는 USO의 창설 초기부터 기획되어, 1941년부터 1947년까지 425,0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렸으며 쇼에 참가한 연예인의 수는 7천 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USO 쇼는 중단되었지만, 한국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면서 다시 복원되었다.
National Archives · 1954 · 미군위문협회(USO)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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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5129) / 6.25전쟁의 정전 이후에도 한국에 잔류하고 있던 미군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를 섭외하여 기획된 1954년 2월의 미군위문협회(USO) 순회공연 일부 실황 기록영상이다.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신혼여행으로 도쿄에 체류 중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2월 16일에 C-54 수송기 편으로 K-16 여의도공항으로 입국, 2월 19일까지 3박 4일동안 10여 군데 이상의 미군 부대를 순회하며 총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군인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 일정 내내 조 디마지오의 동료 야구인의 부인인 진 오둘(Jean O’Doul)이 동행했으며, 육군 피아니스트 알버트 과스타페스테(Albert Guastafeste)와 이 공연의 이름을 그대로 딴 군인 밴드 ‘Anything Goes’가 함께 공연했다. 이 순회공연은 역대 USO 위문 공연 중에서도 역사에 남을 인상적인 행사로 평가되며, 우울한 성장기와 결혼생활을 보냈고 평생 연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워했던 마릴린 먼로 자신으로서도 큰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다고 후술하고 있다. 이 영상의 전반부는 내한 일정 중 2일차인 2월 17일, 미 제40보병사단 제160보병연대에 방문하여 탱크 위에 올라 퍼레이드하는 유명한 순간의 영상과 이 부대의 별칭인 ‘Grenadiers’(척탄병)을 따 명명한 가설무대 ‘그레나디어 궁전’(Grenadier Palace)에서의 열정적인 공연 장면이 기록돼 있다. 위치는 양구, 인제 인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반부는 전날인 2월 16일에 C-54 수송기로 여의도 공군기지(K-16)에 도착하여 몰려든 군인들의 환호에 답하고 첫 일정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헬리콥터로 갈아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때의 행선지는 당시 임진강 유역 남단과 판문점 인근의 방비를 담당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 해병 제1사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군위문협회(USO, United Service Organizations)는 미국 내와 해외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을 격려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에서 창설된 비영리단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에 YMCA, YWCA, 구세군. 유대인 복지 위원회, 카톨릭 공동체 자선단체, 여행자 원조 협회 등의 6개의 봉사단체가 하나로 통합되어 만들어졌다. 군을 위한 USO의 여러 지원 활동 가운데 본래의 임무를 수행한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행사는 위문공연이었다. 전선에 있는 장병들에게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캠프 쇼는 USO의 창설 초기부터 기획되어, 1941년부터 1947년까지 425,0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렸으며 쇼에 참가한 연예인의 수는 7천 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USO 쇼는 중단되었지만, 한국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면서 다시 복원되었다.
National Archives · 1954 · 미군위문협회(USO)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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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ID: HNR 24.206) / 이 영상은 오늘의 뉴스(NEWS of the DAY)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된 뉴스릴로서, 미군이 북한 지역에 공중폭격을 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폭격 전후에 살포했던 ‘삐라’의 회유 및 경고성 내용도 촬영됐다. 폭격은 농업지대, 평야의 탱크, 도로에서 이동하는 병력, 산악지대의 고지 등 여러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6.25전쟁기 미군은 주요 군사 거점을 파괴하고 보급로와 작전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한 지역에 막대한 물량의 폭격을 지속했으며 전쟁이 고착화된 1952년에는 정전 협상의 우위를 얻기 위한 압력의 수단으로 북한 후방 지역의 발전소, 공장,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그러나 북한은 주요 군사시설을 의도적으로 민간인 거주 지역에 인접하게 배치했고 당시 공중폭격의 정밀도도 낮았으므로 민간인들의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공중폭격을 전후하여 민간인의 대피를 유도하고 폭격의 당위성을 선전하는 전단지를 살포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특히 6.25전쟁기의 공중 살포 전단지는 막대한 공중폭격과 이로 인한 민간인 피해에 대한 형식적인 면죄부의 성격도 있었다.
UCLA Film & Television Archive · 1952 · 공중폭격 · Hearst Corporation · Hearst Metrotone Newreel Collection - News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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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919) / 이 영상은 1952년 10월 중하순에 한국여성경찰의 훈련과 활동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서울의 한 교차로에서 교통정리 실습 교육을 받거나 학교 운동장에 줄맞춰 서서 교통정리 수신호 방법을 교육받는 모습을 통해 주한 미 군사고문단(KMAG)이 여경 육성에 관계했음을 알 수 있다. 후반부는 여경들이 미 군사고문단의 지프를 타고 거리를 순찰하며 혼자 헤매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 여경이 상주하고 있는 고아원에 데려다 주는 과정을 연출한 시퀀스로 채워졌다. 여성경찰제는 1946년 6월 3일 국립경찰전문학교에서 여성경찰관 64명을 모집하면서 시작됐으며, 1947년 9월 전국 주요 도시에 여자경찰서가 개설되는 등 미군정에서 정책적으로 실시되었다. 영상에도 등장하지만, 여성경찰은 한국전쟁 이후 ‘거리 부랑아들의 선도를 담당’하도록 했다. 1951년 12월 20일 서울 여자경찰서의 여경 20명은 신문장사와 구두 닦기 등 종별로 각 10명을 1개반으로 구성해 매주 1회 회의를 열고 계몽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1952년 4월부터 5월 사이 여경들은 미군기지 주변이나 성매매 업소 등지에서 단속 업무를 담당했다. 정부는 교통정리뿐 아니라 시민위생확보 차원의 가내 변소 개량운동 계몽과 강연회에도 여성들을 투입했다.
National Archives · 1952 · 여자경찰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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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964) / 1952년 11월 영등포 제121후송병원에서 미국 적십자사 대원들이 입원한 미군 장병들을 돌보는 모습을 기록한 영상으로서, 시간표에 따라 다양한 놀거리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군인들의 모습과, 적십자사 현장감독관을 통해 담배, 면도칼, 카드 등의 보급품 및 선물을 각 관할 부대로 운송하고 이를 환자들이 받기까지의 과정을 촬영했다. 의료구호가 단지 병사들을 육체적으로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와 유대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일까지를 아우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통제된 상황에서 연출된 영상이다. 시기상 미국 적십자사 대원들의 활동을 기록한 다른 영상(111-LC-30966)으로 이어지지만 내용과 장소는 다르다.
National Archives · 1952 · 적십자/야전병원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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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966) / 1952년 11월, 미 적십자사 대원이 위문품, 구호물자 등을 챙겨 제8063육군이동외과병원(MASH) 병동의 환자들에게 제공하거나 손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대신 편지를 써 주는 모습, 서울의 적십자사 본부에서 행정사무를 보는 모습 등을 기록한 영상이다. 의료구호가 단지 병사들을 육체적으로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와 유대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일까지를 아우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통제된 상황에서 연출됐다. 시기상 미국 적십자사 대원들의 활동을 기록한 다른 영상(111-LC-30964)으로부터 이어지지만 내용과 장소는 다르다.
National Archives · 1952 · 적십자/야전병원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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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장처: 미국 National Archives II (ID: 111-LC-30617) / 이 영상은 크게 세 종류의 시퀀스가 묶여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원 소장처인 National Archives의 정보를 참고하면 1952년 5월 7일에 철의 삼각지 중 김화(당시 ‘금화’로 불렸음) 지역에서 전차 진격 작전을 펼치고 있는 미 제7보병사단 예하 제73중전차대대의 모습을 기록한 장면들이다. 작전 브리핑, 진격 시작, 진창에 빠진 전차를 견인하는 과정들이 담겼다. 두 번째 시퀀스는 5월 2일에 촬영된 것으로, 미 육군참모대학(Army War College)에서 미 제9군단 관할 전방 지역의 터널 또는 벙커형 지휘소들을 둘러보는 모습을 담았다. 마지막 시퀀스는 그 다음 날인 5월 3일에 9군단 지하지휘소 내부의 상황 수신 및 기록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촬영된 푸티지이다. 전화 또는 전신으로 받은 상황 정보를 직접 구두 전달 또는 새로 타이핑한 후 결재받는 방식으로 작전지도 상황판에 갱신하는 과정이 담겼다. 이 영상의 '미 제9군단 지역'은 National Archives 카탈로그에서 ‘Kin Sal’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정확한 지명은 확인되지 않으나 앞의 푸티지가 김화에서 촬영된 점을 고려하면 철의 삼각지 어느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
National Archives · 1952 · 작전 · 미 육군 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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