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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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선화>(김유영, 1940)의 장면 사진. 조선영화주식회사가 <무정>(박기채, 1939), <새출발>(이규환, 1939)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한 작품으로, 김유영 감독의 유작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의 노력을 다했던 김유영이 1940년 1월 4일 사망한 후 완성이 미뤄지던 <수선화>가 같은 해 5월에 완성되자,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이재명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배급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개봉되지는 못했고, 조선에서는 1940년 8월에 성보극장에서 공개되었다. 사진에서 유 씨 어머니와 유 씨, 그리고 석매가 아픈 재길을 바라보고 있다. 당시 11살의 나이였던 정찬조가 이 영화에서 재길을 연기했다. 정찬조는 영화에서 유 씨 어머니로 출연한 배우 김복진의 아들이다. 같은 해 정찬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고려영화협회의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가 <수선화>보다 몇 달 먼저 개봉되었다.
1940년대 · 수선화 · 장면 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DSKT014642_04
최인규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국경>(1939)의 장면 사진. 빈농 김용태의 딸 영자(김소영 분), 김용태가 어려서부터 기른 고아 세림(최운봉 분). <국경>은 천일영화사가 <도생록>(윤봉춘, 1938)에 이어 제2회 작품으로 공개한 영화이다. 천일영화사의 기획부장 누카가 기요토(額賀淸人)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배급 계약을 추진했다. <국경>의 조선 배급은 고려영화, 일본 배급은 산에이샤가 맡았다. 최인규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제작된 <국경>은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 빈농 가족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소영은 색주가를 전전하며 타락해가는 ‘영자’ 역을 통해 요염하면서도 애수를 자아내는 연기로 주목받았다.
1930년대 · 국경 · 장면 사진 · 천일영화사
DSKT014640_04
영화 <수선화>(김유영, 1940)의 장면 사진. 극중 석매와 삼술 역으로 출연한 김신재(우)와 남승민(좌). 김신재는 고려영화협회에 전속으로 소속되어 있었으나, 고영의 협조로 조선영화주식회사 제작 영화에 출연했다.
1940년대 · 수선화 · 장면 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DSKT014643_04
영화 <수선화>(김유영, 1940)의 장면 사진. 극중 석매와 삼술 역으로 출연한 김신재(우)와 남승민(좌). 김신재는 고려영화협회에 전속으로 소속되어 있었으나, 고영의 협조로 조선영화주식회사 제작 영화에 출연했다.
1940년대 · 수선화 · 장면 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DSKT014644_04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45_05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한 영화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의 한 장면. 도와상사가 일본 배급을 추진했지만, 문부성 추천이 유명무실해져 일본 개봉 성적은 좋지 않았다. 도쿄에서는 흥행이 부진했으며, 교토, 아이치, 후쿠오카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다. 《영화순보》 제33호, 1941.12.1 참조.
1940년대 · 집없는 천사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69_04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한 영화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의 한 장면. 도와상사가 일본 배급을 추진했지만, 문부성 추천이 유명무실해져 일본 개봉 성적은 좋지 않았다. 도쿄에서는 흥행이 부진했으며, 교토, 아이치, 후쿠오카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다. 《영화순보》 제33호, 1941.12.1 참조.
1940년대 · 집없는 천사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70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46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47_06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48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49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0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1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2_04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3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4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5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6_05
『고려영화협회와 영화신체제 1936~1941』(한국영상자료원, 2007)에 수록된 도와상사의 관계 자료를 보면, 도와상사는 고려영화협회와의 협조적인 관계로 배급을 추진한 <수업료>의 사전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선 아동의 수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일본 관객에 친숙한 일본영화 <글짓기교실 綴方敎室>(1938)에 견주어 ‘반도의 <글짓기교실>’로 소개하며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고,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니와 후미오(丹羽文雄) 같은 소설가들의 짧은 감상평을 홍보에 활용했다. 요코미쓰 리이치는 “이 반도의 <글짓기 교실>은 느긋하다. 궁박한 느긋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끔 여유를 주는 것이, 영화 중 영화로서 무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위의 책, 71쪽)라고 소감을 남겼다. 도와상사가 시사회의 호의적인 반응을 전시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수업료>는 영화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비일반영화’로 검열을 통과해 일본에서는 아동이 볼 수 없는 영화로 분류되었고, 결국에는 일본 공식 개봉도 좌절되었다.
1940년대 · 수업료 · 장면 사진 · 고려영화협회
DSKT014657_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