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 인물 편
기증 컬렉션 · 230 점
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의 유족, 니시키 유리코가 2005년과 2008년에 기증한 문화예술인 관련 스틸 115점(학예연구팀 2024년 컬렉션 구축 용역사업, 연구자: 양인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기증 컬렉션 · 230 점
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의 유족, 니시키 유리코가 2005년과 2008년에 기증한 문화예술인 관련 스틸 115점(학예연구팀 2024년 컬렉션 구축 용역사업, 연구자: 양인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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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이 사진의 왼쪽 하단에는 화신백화점의 로고가 압인돼 있다. 화신백화점은 <그대와 나>(허영, 1941) 촬영 때 미쓰코시 백화점과 함께 조선 의상과 기모노를 각각 협찬했다.
배우 · 초상 · 화신백화점 사진부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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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배우 · 일상/스냅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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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사진은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한 김신재의 모습.
배우 · 일상/스냅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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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배우 · 일상/스냅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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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이 사진의 왼쪽 하단에는 화신백화점의 로고가 압인돼 있다. 화신백화점은 <그대와 나>(허영, 1941) 촬영 때 미쓰코시 백화점과 함께 조선 의상과 기모노를 각각 협찬했다.
배우 · 초상 · 화신백화점 사진부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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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재(1919~1998)는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1938년 <도생록>(윤봉춘)에서 주연을 맡았고, 문예봉과 함께 1930년대 조선영화계 여배우 세대 교체의 중심에 있었다(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김신재는 니시키 모토사다가 기획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에서 조선 아동들의 누나로 등장했다. 이 사진의 왼쪽 하단에는 화신백화점의 로고가 압인돼 있다. 화신백화점은 <그대와 나>(허영, 1941) 촬영 때 미쓰코시 백화점과 함께 조선 의상과 기모노를 각각 협찬했다.
배우 · 초상 · 화신백화점 사진부 촬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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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춘은 1933년 17세에 황금좌의 <그늘진 고향>(박영호 각본)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올랐다(『조선일보』 1937.01.04, 21면). 니시키 모토사다가 각본을 쓴 영화 <병정님>(방한준, 1944)에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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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일해(1906~2004)는 한국영화인정보조사(한국영상자료원, 2011)에 따르면,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중학교를 졸업한 후 약 20여 편의 일본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1932년에 귀국한 후, 1935년부터 조선영화에 출연했다. 니시키 모토사다가 원작과 각색을 담당한 영화 <집없는 천사>(최인규·방한준, 1941)에서 그는 길거리 아이들을 거두는 방성빈 역을 맡았다. 그리고 <병정님>(방한준, 1944)에서는 주인공 젠키의 형인 주키를, <우르러라 창공>(김영화, 1943)에서는 고물상을 연기했다. 영화감독 박기채는 김일해가 "성격이 온순하고 오래 동안 싼 경험으로서 자기가 맡은 역에 충실하려고 무척 애를 쓰"지만 "그 반면에 氏[씨]의 연기에 있어서는 도리여 그 효과를 상실하는 점이 없지 않다. 최근의 氏가 출연한 映畵[영화] 「水仙花[수선화]」와 「집 없는 天使[천사]」를 보드라도 俗談[속담]에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셈으로 스나오[すなお: 솔직함]야 할 연기가 큰 효과를 상실하야 버린 연기를 窺知[규지]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박기채, 「조선남녀영화배우 인물평」, 『삼천리』 제13권 제6호, 1941.06.01). * [ ]의 내용은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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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야 우지마라"를 작곡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작곡가 김준영(1907~1961). 1930년대 초부터 1940년대 초까지 조선중앙방송국의 악단으로 활동했다. 전옥과 노래한 "처녀총각"이 히트하며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19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시작으로 영화음악 작곡에도 참여했다(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정보조사, 2011). 그후 <지원병>(안석영, 1940), <반도의 봄>(이병일, 1941)을 비롯해 니시키 모토사다가 각본을 쓴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와 <병정님>(방한준, 1944) 등에서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음악 · 초상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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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김학성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미상 인물 2인이 눈길에 서 있다. 더 이상의 정보는 미상이다.
일상/스냅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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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민(1911~)은 1935년 방한준 감독의 <살수차>에서 단역을 맡으며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이규환의 <새출발>(1939), 김유영의 <수선화>(1940)에 잇따라 출연했으며, <수선화>로 주목받기 시작했다(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정보조사, 2011). 니시키 모토사다가 각본을 쓴 <우르러라 창공>(1943, 김영화)과 <병정님>(방한준, 1944)에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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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독은기(1911~)는 이규환의 <나그네>(1936)에서 이발사 연기로 이름을 알렸고, 서광제의 <군용열차>(1938)에서 주인공 점용의 친구 원진을 연기했다. 이규환의 <나그네>는 스즈키 시게요시(鈴木重吉) 감수로 일본에도 수출되기도 했는데, 이때 독은기는 문예봉, 왕평과 더불어 <나그네> 인기의 주역으로 평가됐다. 특히 줄리앙 뒤비비에(Julien Duvivier)의 <상선 테나시티 Le paquebot Tenacity> 속 바스티앙과도 견줄 정도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キネマ週報』 1937. 5. 21). 또한 영화감독 박기채는 <나그네>에서 독은기를 처음 봤다고 말하며 "그 스나오[すなお: 솔직함]한 연기가 평소의 독 씨 그대로"라 말하기도 했다(박기채, 「조선남녀영화배우 인물평」, 『삼천리』 제13권 제6호, 1941.06.01). * [ ]의 내용은 편집자 주. 이 컬렉션의 스틸 사진은 오른쪽 밑에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이하 '조영')의 로고가 압인되어 있어, 조영에 등록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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