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외화전단 컬렉션
디지털원문 컬렉션 · 378 점
1952년부터 1960년 사이 수입개봉된 영화 전단 중심 컬렉션. 부분적으로 61년 이후 개봉작 전단이 소수 포함되어 있다. 총 330개의 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디지털원문 컬렉션 · 378 점
1952년부터 1960년 사이 수입개봉된 영화 전단 중심 컬렉션. 부분적으로 61년 이후 개봉작 전단이 소수 포함되어 있다. 총 330개의 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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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 앞뒷면에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은 칼라로 영화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일러스트와 표제 등을 배치하였다. 전단의 상단부에는 “동아프리카 현지에 로케 촬영한 생생한 색채의 장절(壯絶)한 스릴과 앙분(昻奮)!”이라는 홍보문구가 게재되어 있다. 전단의 최하단부에는 원래 소장자(장인정)가 전단의 입수일을 “단기 4288년(1955년) 10월 16일”로 표기한 손글씨가 있다. 뒷면은 갈색 단색조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해설, 줄거리를 소개하였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4 · 국도극장 · 기타 · 미국
DBFB002266_01
전단지 구성 전체 2면으로 되어 있는 전단지로 장방형의 종이에 길게 인쇄되어 있다. 1면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초록색 등의 단색조 바탕에 파란색 계열로 인쇄된 만화풍의 그림으로 영화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1면의 테두리 전체에 걸쳐 1950년대 당시의 Universal International 영화사의 로고를 반복인쇄 해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1면 윗부분으로는 “포학 몽고군을 무찌르는 의적단!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벌어지는 모험과 사랑!”이라는 홍보 문구, 다시 1면의 오른쪽 테두리를 따라 “화려무비의 색채와 모험과 검의 통쾌편!”이라는 홍보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1면의 하단부에는 마릴린 먼로 주연의 <나이아가라>를 홍보하는 별도의 광고란이 인쇄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2면에는 갈색과 적색의 단색조로 영화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와 해설을 덧붙였으며, 영화의 스틸 사진 역시 여러 장 수록하였다.
1954 · 수도극장 · 고려영화 · 미국
DBFB003960_01
전단지 구성 전체 2면의 전단으로, 초록색과 파란색, 빨간색의 단색조를 사용하여 간결하게 인쇄하였다. 영화의 스틸사진을 가운데에서 약간 비껴나게 배치하고, 왼쪽에는 빨간색 계열의 큰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인쇄하였다. 전단의 오른쪽으로는 “북아프리카 사막 벌판에서…. 몸부림쳐 보아도 애처로운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샤를 보와이에의 생명을 건 환희와 낭만의 비가!”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 있다. 뒷면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해설, 캐스트를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한편 앞면의 스틸 사진의 중 하단부에는 영어로 1956년 3월 24일의 날짜가 별도로 타이프되어 있는데, 이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가 문화극장에서 재개봉되었던 시기(1956년 3월 19일27일)와 겹치므로, 이 전단지 역시 1955년 수도극장에서의 최초 개봉이 아니라 이듬해 3월의 재개봉에서 문화극장에서 배포된 전단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전단에는 배급사가 쓰여있지 않으나, 당시의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칠양문화사의 배급이었음이 거의 확실시된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제작 당시 테크니칼라로 촬영된 세 번째 장편 실사 극영화로 당대 평단과 관객의 상당한 호응을 얻었으며, 그 해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칼라 촬영기술을 인정받아 특별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제작된 지 거의 20년 뒤인 1955년 7월 17일에야 수도극장에서 개봉되었던 관계로, 제작 및 최초 개봉 당시와 같은 호응은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수도극장에서 같은 해 7월 22일까지 개봉된 이후, 8월에는 성남극장, 9월에는 명동극장과 동화극장, 10월에는 아현극장, 11월에는 계림극장과 남도극장을 거쳐 이듬해 3월과 7월에는 문화극장과 자유극장 등 1년여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재개봉, 재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수도극장 · 기타 · 미국
DBFB002945_01
전단지 구성 전단지 앞면은 세 개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왼편부터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메르세데스가 같이 서있는 장면, 메르세데스 얼굴 클로즈업, 그리고 오른편은 감옥에서의 당테스와 신부의 대화 장면, 복수를 위해서 사교계에 진출한 뒤 일어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활약이 나눠져서 실려 있다. 뒷 편 해설부분은 스텝과 캐스트 소개, 해설과 줄거리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해설에는 간략한 제작 진행 소개 및 감독과 배우들의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해설에 실린 소개는 이 영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감독이 1943년에 만들었던 동명의 영화에 대한 설명이다. 선전영화를 강요당했던 나치 치하에서 감독 로버트 버네이가 소극적인 저항의 의미로 환타지적인 오락영화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이 이야기에 매혹되어서 다시 1954년 컬러로 리메이크 하였다. 이 영화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많은 영화 중 최초의 컬러 영화이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5 · 국도극장 · 기타 · 합작(불이)
DBFB002056_01
전단지 구성 1면에는 노란색 단색조 바탕에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의 단색으로 인쇄한 영화의 스틸컷과 영화의 제목을 눈에 띄게 배치했다. 당대의 일반적인 전단지와는 달리 영화를 소개하는 홍보문구나 주연 및 감독 소개 등이 거의 쓰여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2면과 3면에서는 영화 제작에 얽힌 해설과 주연 배우들의 약전, 줄거리 요약을 비롯해 영화의 원작이 되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관련된 해설까지 매우 빼곡하게 전체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데카메론>을 소개함에 있어 "서양 호색담으로서 널리 이 방면의 호사가들에게 알려진" 작품이라고 반복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고,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근래의 외화 가운데서 새로운 흥미를 끄는 호색 엽기 대작"이라고 소개하는 것 역시 이채롭다. 영화 해설과 4면 하단부 등등에서 이 영화의 제작 뒷 이야기, 특히 스페인에서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제 4면에는 당시 세기영화사의 배급으로 개봉 예정이었던 <미시시피의 도박사 The Mississippi Gambler>와 <제2의 찬스 Second Chance>를 알리는 신문광고 형태의 소형 개봉예정작 광고가 들어있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당시 미국에서는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평단의 반응도 싸늘했으나, 오히려 해외에서 상당한 흥행을 거두어 이탈리아와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이 전단에서도 강조하듯,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한 스페인 현지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1955년 5월 <경향신문>에서 세 차례에 걸쳐 홍보 기사가 나간 이후, 7월에 단성사에서 개봉해 이후 명동극장, 평화극장, 동화극장에서 재개봉을 거치며 이듬해 1월까지 상영되며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보카치오와 <데카메론>에 대해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던 만큼, 당시의 신문기사나 홍보는 주로 보카치오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임을 강조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점이 이채롭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단성사 · 세기영화 · 미국
DBFB002275_01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이다. 앞표지인 1면에는 주연 에스터 윌리엄스의 사진을 칼라로 인쇄해 가운데 배치한 뒤 그 아래에 파란 바탕(바다)에 흰색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적어두었다. 상단에 원 소장자에 의해 “단기 4289(1956)년 12월 12일”이라는 입수 날짜가 쓰여있는데, 이를 보아 이 전단은 수도극장에서 최초 개봉될 때가 아니라 그 해 12월 광무극장 혹은 문화극장에서 재개봉될 때 배포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면과 3면에는 적갈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줄거리를 소개하였다. 상단부에는 “남해의 정서와 청춘의 환희! 대 MGM이 보내는 명랑의 명편, 드디어 극동 제1 개봉의 기대작품!”이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표지인 4면에는 상단에는 주연배우들이 보트에 타고 있는 사진을 단색조로 인쇄하였고, 하단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상영을 예고하는 별도의 광고가 수록되어 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6 · 수도극장 · 수도영화 · 미국
DBFB002243_01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이지만, 4면에는 인쇄가 없어 실제로는 3면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앞표지에 해당하는 1면에는 주연 배우들의 얼굴을 담은 사진들을 왼쪽 전면에 크게 배치하고, 배경이 되는 포로수용소의 망루와 철조망은 일러스트로 처리하였다. 전단의 상부에는 “웃음과 눈물이 명멸하는 인간감정의 압권! 결사적 탈출! 숨막히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육박하는 포로생활의 실태”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고, 영화 표제의 오른편으로는 다시 “1953년도 아카데미 상 주연남우상에 빛나는 윌리엄 홀든의 불후의 명연기!”라는 내용이 쓰여있다. 2면과 3면에는 남색/보라색 계열의 짙은 청색의 단색조 인쇄로 영화의 출연진, 제작진 소개, 주연 배우들의 약전, 줄거리, 해설 등을 소개하였는데, “포로수용소 내막”이라는 작은 코너를 통해 세계대전 중 유럽 전선에서의 실제 포로생활의 일화를 간단히 소개한 것이 이색적이다. 영화노트 제 2차대전 종전 후 나온 전쟁 당시의 포로생활을 다룬 가장 이른 시기의 영화 중 하나로, 종전 후 불과 8년만에 제작되었다. 원작은 1951년에 초연된 동명의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이는 작가들인 도널드 베번(Donald Bevan)과 에드먼드 티르친스키(Edmund Trzcinski)가 실제 미국 공군으로 참전 중 격추되어 포로로 잡힌 후, 오스트리아에 있던 제17B 연합군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약 3년 뒤인 1956년 6월 23일에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 동시 개봉으로 처음 소개되었는데, 당시의 영화 소개평(<경향신문> 1956.5.25.)에서는 “유머와 서스펜스와 스릴이 혼합된 빌리 와일더 감독의 특작”으로 소개하고 있다.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 약 열흘 간 상영된 이후로는 같은 해 9월 성남극장, 10월 평화극장, 11월 동양극장 및 동화극장, 12월 계림극장을 거쳐 이듬해인 1957년 2월에는 동영극장, 6월 화신극장에서 계속해서 재개봉을 거치며 흥행하였고, 이듬해인 1958년 8월 23일부터 30일까지는 일주일간 대한극장에서 “대학생 우대 특별상영회”를 거치는 등 장장 3개년 동안 대규모로 흥행하였다. 대한극장이 상영회를 통해 “대학생”을 특별히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 영화가 당시의 대학가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이 영화가 극장 상영 이외에도 1958년 10월, 1959년 3월과 4월에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에서 대학 순회 상영회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연세대학교 극예술연구회(1959년 7월)와 동국대학교 연극회(1960년 5월, 1964년 6월)에서는 이 영화의 대본을 무대연극으로 다시 각색, 번역하여 공연했다는 사실에서, 전쟁의 비참함과 아이러니함을 냉소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가 당시 대학생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어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6 · 단성사/중앙극장 · 불이무역 · 미국
DBFB000306_01
전단지 구성 긴 장방형의 장지를 앞뒤로 인쇄한 전단이다. 앞면에는 칼라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인쇄한 뒤 표제와 기타 정보를 배치하였다. 상단부에는 “7대양의 바닷물을 산산이 분쇄하여 버린 용감무쌍의 대혈투!!”라는 홍보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그 위 모퉁이에는 전단의 원소장자로 보이는 인물이 찍은 단기 4289년 12월 5일이라는 고무인이 찍혀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전단이 1956년 12월 5일 문화극장에서의 재개봉 당시 원소장자에 의해 수집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뒷면에는 초록색 계열의 단색으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영화 해설과 줄거리의 요약을 게재하였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기를 전후하여 대거 제작된 시대극 모험영화 가운데 하나이자, 흑백영화를 고집해왔던 RKO 영화사의 두 번째 칼라 영화이다. 평단의 반응은 다소 좋지 못했으나 흥행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특히 1947년에 프랑스에서 개봉하였을 때는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최대의 관객인 2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최고의 히트 영화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제작한 지 11년이 지난 1956년 6월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뒤 그 해 9월 남도극장, 10월 평화극장, 11월 동화극장, 12월 문화극장에서 재상영되었다. 한편 영화의 당시 번역제목인 “해적 바라쿠다”는 1950년에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의 번역 제목 <海賊バラクダ>를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해적선의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영화가 일본을 거쳐 수입되었으며, 수입 및 홍보 당시에 영화의 내용을 실제로 확인하지 않고 기존 일본에서의 홍보 자료를 그대로 번역해 재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6 · 중앙극장 · 남양문화 · 미국
DBFB002226_01
전단지 구성 연속영화 시대 ‘시리얼 퀸(serial queen)’ 펄 화이트의 전기 영화 <폴린의 모험>의 주연을 맡은 베티 하튼은 미군 위문 공연으로도 유명한 배우였다. 그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에도 미군 위문공연단(USO)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해 참전군인들 앞에서 공연한 바 있었다. 불이무역 영화부는 이 점을 강조해 “그는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실로 한국전선(韓國戰線)을 순회하면서 남이 따를 수 없는 모험위문(冒險慰問)을 감행하여 모험여우(冒險女優)로서의 위표(威票)를 보였다. 과연 포-린의 운명은 어찌되려나 웃음과 눈물과 노래로 아로새긴 일대 모험활극(冒險活劇)!!”이라고 선전했다. 연속영화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위험천만한 연기를 선보여 명성을 얻은 펄 화이트, 그리고 위험한 전선에서 군인들을 위문하는 모험을 감행한 베티 하튼이 바로 그 시리얼 퀸의 생애를 연기했다는 점을 연결해 ‘모험여우(冒險女優)’라고 칭송한 것이다. 춤과 노래, 연기에서 모두 재능을 보인 베티 하튼의 스타성을 강하게 내세우며, 아카데미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한 그의 또 다른 출연작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 1952)>의 제목도 함께 내걸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이듬해인 1955년에야 공개되었다. 전체 4면으로 구성된 전단에서는 베티 하튼을 비롯한 출연진과 영화의 줄거리를 공들여 소개하고 있다. (이화진_영화사연구자)
1954 · 단성사 · 불이무역 · 미국
DBFB002280_01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표지와 뒷표지에는 여러 색깔로 인쇄된 영화의 스틸사진들과 함께 붉은 색으로 영화의 제목이 크게 쓰여있다. 갈색 계열의 단색으로 인쇄된 2면과 3면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출연진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영화 해설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짧은 설명을 부기해 두었다. 표지와 속지에서 모두 왕관 모양의 “BCFC” 로고가 발견되는데, 이는 2면 하단에 제공자로 쓰여있는 “영국영화협회”, 즉 “영연방영화사”(British Commonwealth Film Corporation)의 로고이다. 영연방영화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의 구 영국 식민지 지역 및 그 주변 지역에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인데, 특히 1952년부터 1961년까지는 일본 도쿄에 사무소를 두고 “극동 지역 배급”을 총괄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미양실업이 이 영화를 일본의 영연방영화사 사무소를 통해 수입해 들여왔을 것으로 보이며, 전단 역시 일본에서 영연방사무소가 사용한 전단을 그대로 복제해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서울 중앙극장의 로고도 있는데, 이는 이 전단이 이 영화의 2차 개봉인 1955년 12월 중앙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영화노트 당시의 신문 기사 및 광고를 살펴보면 이 영화는 외화로서는 국내에서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재개봉과 재상영을 반복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1954년 12월 23일 국도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어 이듬해 1월까지 상영되었다가, 다시 1년 뒤인 1955년 12월 23일부터는 중앙극장에서 상영되어 12월 27일까지 상영되었고, 그 해 12월 28일부터 이듬해 1월 7일까지 다시 영등포의 영보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그 후 1956년 5월 명동극장에서 재개봉되고, 1958년 7월에는 씨네마코리아극장에서, 1960년 12월에는 다시 초동극장에서 재개봉되는 등, 거의 6년간에 걸쳐 곳곳에서 재개봉을 거치며 계속 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4 · 국도극장 · 기타 · 합작(미영)
DBFB000298_01
전단지 구성 전체 8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책자 형태의 전단이다. 1면에는 영화의 표제와 스틸사진, 그리고 배급을 맡은 동양영화주식회사의 표기가 있다. 2면에는 <원작과 영화>라는 코너를 두고 원작이 되는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에 대한 소개와 영화의 제작에 관련된 내용을 서술하였다. 3면에는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영화의 해설을 소개하였으며, 4면에는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였고, 5면에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월터 스콧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6면에는 <스타 소개>라는 항목 아래 영화의 주연을 맡은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조안 폰테인 등의 약전을 수록하였으며, 7면에는 <감상 메모>라는 코너 아래 영화의 주요한 소재 중 하나인 고대 노르만 인과 색슨 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 이채롭다. 뒷표지인 8면에는 “동양영화가 새해에 드리는 메트로 3대 총천연색!”이라는 홍보 문구 아래 <황원의 질주 Ride, Vaquero!(1953)>, <형제는 다 용감하였다 All the Brothers Were Valiant(1953)>, <철화의 박차 The Naked Spur(1953)>를 소개하는 토막 광고가 실려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4 · 단성사 · 동양영화 · 미국
DBFR000083_01
전단지 구성 길쭉한 장방형의 종이를 3등분한 빌폴드 형태의 전단이나, 각 쪽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1, 5, 6면에 해당하는 앞면과 2, 3, 4면에 해당하는 뒷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앞면의 경우 적갈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였으며, 2면에 걸쳐 영화의 주연 배우들이 등장하는 스틸사진을 첨부하였다. 뒷면은 파란색 단색조로 인쇄하였는데, 영화의 해설과 줄거리(경개), 제작진 및 출연진 명단이 소개되어 있으며, 특이하게도 <감상 메모>라는 코너 아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바그다드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붙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또 <스타 소개>라는 코너 아래 주연 배우 로널드 콜먼과 마를렌 디트리히의 약전을 소개하였는데, 이 글의 뒷부분은 다시 전단의 1면 후반부로 이어져 인쇄되어 있다는 점에서 명확한 쪽수의 경계와 구분이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단성사 · 동양영화 · 미국
DBFB002108_01
전단지 구성 홍보 문구는 “하염없이 불타오르는 사랑의 정열(情熱)! 슴여드는 이별(離別)의 애수(哀愁)! 예리(銳利)한 감각(感覺)으로 데리케트한 여자(女子)의 감정(感情)의 흐름을 아로색인 주옥편(珠玉篇)!” “사랑을 깨끗이 간직하고 안타가히 살아갈려고 애쓰는 가냘픈 여자(女子)의 비애(悲哀)는 아름다운 감동(感動)을 자아낸다”이다. 감성적인 멜로드라마임을 강조하는 이미지 컷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노트 에로드라마와 같은 외양과는 다르게, 전락한 한 여성을 둘러싼 남성들의 심리를 묘파한 걸작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신상옥은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를 만들어 이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했다. 주연을 맡은 알리다 발리는 캐롤 리드가 연출한 <제3의 사나이>(1949)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센소>(1952)로 이미 한국 관객에게 유명세가 있었다. 그녀는 마를렌 디트리히나 그레타 가르보에 견줄만한 존재로, 1950년대에 실바나 망가노와 소피아 로렌, 지나 롤로부르지다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태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그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반대하면서 도피생활을 한 탓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1946년 할리우드로 건너갔을 때 제작자 데이빗 셀즈닉은 “제2의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타났다”며 그를 반겼다. 이 영화 이후로도 조연으로 출연한 <얼굴 없는 눈 Les Yeux Sans Visage>(조르주 프랑주, 1959)이나 <서스페리아>(1976)와 같은 호러영화와, <고교교사 La Prima Notte Di Quiete>(1972), <신들린 여인 L’anticristo>(알베르토 데 마리티노, 1974)등의 작품이 개봉되어 한국관객에게 친숙한 이태리 배우로 자리할 수 있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5 · 수도극장 · 고려영화 · 합작(불이)
DBFB002255_01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총 4면 구성으로 된 전단으로, 1면과 4면에는 컬러로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스틸컷이 수록되어 있다. 1면 상단에는 “이태리 룩스필름 사 1955년도 최신 거대작품”이라는 소개문구와 함께, 타이틀 롤을 맡은 쟌나 마리아 카날레를 “이태리 최신 육체 여우(女優)”라고 소개한 것이 이채롭다. 1면의 왼편으로는 “호화! 현란! 요염!”이라는 소개 문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4면에는 이탈리아어로 된 영화 내용이 들어 있는데, 대체적인 내용은 1면과 대동소이하지만 한국어 소개문구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은 쟌나 마리아 카날레의 이름이 크게 소개된 것에 반해 이탈리아어 소개문은 당시 중견배우였던 조르주 마레샬의 이름이 더 크게 들어있다. 한편 이들 컬러 페이지의 하단부에는 이탈리 필름(Italifilm Co. Ltd)의 표기가 들어간 로고와 “NCC”라는 글씨가 새겨진 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1949년 2월 도쿄 치요다 구에서 설립되어 1962년까지 일본에서 <자전거 도둑>과 <길> 등의 이탈리아 영화를 수입, 배급한 “이탈리 필름 유한회사”(イタリフィルム有限會社)와, 그 모회사로 1950년대 일본에서의 외화 배급을 주도했던 배급사인 일본 시네마 코퍼레이션(Nippon Cinema Corporation)의 로고이다. 이를 통해 당시 동화영화사가 수입, 배급한 이 영화의 판본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이탈리아어 판본이었으며, 이 전단 역시 일본에서 사용된 도안을 그대로 복사해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면과 3면에는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와 제작 해설에 대한 글과 함께, 역시 영화의 여러 장면을 담은 스틸 컷들이 수록되어 있다. 3면 상단부에는 “제왕의 위기 대망에 불타는 요염 "데오도라"의 운명은 운명의 전차경주와 귀족과 민족의 대립을 상징하여 흥분과 열광의 거대편! 금년도 최대의 흥취편!" 이라는 문구가 있고, 2-3면 하단부 전체에 걸쳐서는 “전통의 역사에 빛나는 이태리 영화가 세계에 자랑하는 관능과 스펙타클 초노급편 (超弩級篇)!” 이라는 글이 들어있는데, 문장 구조의 어색함이나 한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역시 일본에서 사용된 전단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수도극장 · 기타 · 합작(불이)
DBFB002258_01
전단지 구성 전체 8면으로 이루어진 팸플릿 형 전단이다. 앞표지인 1면에는 빌리 더 키드 역을 맡은 로버트 테일러의 모습을 칼라로, 표제를 노란색으로 인쇄하였다. 2면부터는 모두 파란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였다. 2면에는 영어 원제와 말을 탄 로버트 테일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3면에는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해설을 게재하였다. 4면에는 영화의 줄거리, 5면에는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 더 키드”라는 코너를 두고 실존인물 빌리 더 키드에 대한 소개를 실었다. 6면부터 면까지는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약전을 게재하였다. 마지막으로 뒷표지인 8면에는 개봉예정작으로 <트로이의 헬렌(Helen of Troy)>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전단에는 배급사 기록이 없으나, 상영예정작으로 소개된 두 편의 영화들이 모두 동양영화사 배급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영화 역시 동양영화사에서 배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영화노트 1880년대에 미국 남서부 일대를 휩쓸며 활동했던 무법자 빌리 더 키드의 생애를 다룬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빌리 더 키드를 포함한 당대의 서부 무법자들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킨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에는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일개 강도에 살인 청부업자에 가까웠던 빌리 더 키드를 영웅적으로 묘사한 사실에 불편함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1957년 8월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약 1주일 간 상영되었고, 이후 같은 해 10월 평화극장, 12월 남경극장, 이듬해인 1958년 1월 동도극장, 2월 우미관, 3월 신도극장, 4월 동영극장에서 재상영을 거쳤다.
1955 · 단성사 · 동양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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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홍보문구는 “세계적 화제의 육체파 여우 No.1 쏘피아 로우렌 주연 / 초련(初戀)에 눈뜬 야성의 여인이 남성의 배반과 부실을 불구하고 순정일로를 고수하는 순애영화!”이다. 1956년도 이태리 영화의 최고 걸작이며 미국의 콜럼비아사가 특별 배급했음을 알리고 있다. 소피아 로렌의 야성미 돋보이는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반바지 차림에 장화를 심은 그녀의 몸매를 드러내는 사진을 배치했다. 배우의 설명은 오로지 소피아 로렌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녀가 같은 이태리의 실바나 망가노나 지나 롤로 부리지다의 인기를 능가하는 매력을 지닌 배우임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노트 총천연색의 이태리영화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예술영화사가 배급하고 1956년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소피아 로렌에게 육체파 스타의 명성을 안겨 준 출세작이다. <하녀>가 개봉하는 첫날에는 3천 8백, 가장 많은 날엔 8천여 명이 영화를 보았다(한국일보, 57.04.07). 당시 하루 관객 최고수가 5천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거둔 흥행 성적은 이례적이다. 영화의 주제가인 ‘맘보바칸’의 인기도 상당해서, 한국에 ‘맘보 리듬’이 범람하는 주요 계기가 되기도 했다(동아일보, 59.09.09). 통속 멜로드라마의 외양을 지닌 탓인지 비평계의 호평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하녀>를 비롯하여 <애정의 쌀>(1949)이나 <길>(1954)과 같은 이태리 영화는 한국영화계에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상대적으로 저자본이어서 “시설도 별 것 없고 자연환경하고 개인연기를 가지고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큰 감명과 공감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파한다면 큰 자본이 투여되지 않아도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하녀>의 흥행 성공은 한국영화에도 자극이 되었다. 실제로 <하녀>의 모방작이 제작되기도 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노필 감독이 연출한 <그 밤이 다시 오면>(1958)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해변가 벽촌을 배경으로 어린 딸을 키우며 힘들게 사는 여인의 비극담이라는 설정 면에서는 <하녀>와 유사한 데가 있었지만, “이태리제 <하녀>에서 논리·동기·정열을 빼”버린 것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았다(한국일보, 58.10.24)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6 · 국도극장 · 한국예술 · 합작(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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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이 시기의 전단지는 보통 7페이지 정도이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긴 경우는 24장까지 되기도 한다. 반면, <프렌치 캉캉>처럼 5장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이 영화는 비슷한 시기 개봉했던 다른 영화들의 전단지에 비하며 매우 소략한 편이라 할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광고가 전단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보통 해당 영화를 개봉하는 극장의 광고(대한극장 광고 등), 전단지 마지막 페이지에 곧 배급 예정인 다음 영화의 포스터를 게재하는 경우는 비일비재 하지만, <프렌치 캉캉>처럼 전단지 중간에 영화와는 아무 관련 없는 증권회사와 치과의 광고가 들어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또한, 다음 영화의 광고 역시 전단지의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가는 일종의 관행과 달리, 이 전단지에는 ‘그렌미라 스토리(The Glenn Miller Story)’, ‘폴-월스가의 흑순(The Black Shield)“ 두 영화의 광고가 전단지의 내용 가운데 함께 배치되어 있다. 전단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공포의 지옥(Devil’s Canyon)>이라는 영화의 컬러 광고 역시 수록되어 있다. 영화노트 프랑소와 트뤼포는 이 영화를 “컬러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그만큼 강렬한 색채와 뮤직홀이라는 화려한 공간이 잘 어우러지는 일종의 ‘백스테이지 뮤지컬’(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뮤지컬)이다. <프렌치 캉캉>은 장 르느와르 감독 후기작 중에서 감독이 가장 사랑했던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데, 영화는 화가였던 아버지 르누아르와 감독 자신이 사랑했던 20세기 초 파리의 뮤직홀과 댄서들, 예술과 낭만이 어우러진 그 시간과 공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툴레즈 로트렉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포스터를 비롯한 화려한 캉캉 댄스 장면, 명백히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과 장면들, 경쾌하고도 아름다운 음악과 낭만적인 노래, 당대 유명 가수였던 에디트 피아프와 파타슈의 출연 등으로 화려한 볼거리들을 전시하고 있는 <프렌치 캉캉>은 영화가 여타 예술, 문화와 교류하는 역동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 중 한 편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선영_영화사연구자)
1956 · 단성사/중앙극장 · 세기영화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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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매우 긴 장방형의 종이에 앞뒤로 인쇄하였다. 보관 문제로 약간의 수해를 입어 일부 지면이 손실되거나 지워진 부분이 있으나 내용 판독에는 큰 무리가 없다. 앞면에는 화산섬을 배경으로 주연 배우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장면을 칼라 일러스트로 묘사하였고, 그 위로 “불을 뿜는 화산의 정열과 덧없는 로맨스가 엉클어진 최고의 거작!”이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전단의 왼쪽으로는 차회 상영작으로 <애수의 사랑(Daisy Kenyon)>(1947)의 광고가 게재되었고, “욕정과 이성의 교착하고, 삼각연애의 갈등 속에 몸부림쳐 고민하는 현대 여인의 애욕도!”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에는 파란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줄거리와 해설을 실었고, 주연 배우 세 사람의 프로필을 별도로 소개하였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1912년 미국의 극작가 리처드 툴리(Richard W. Tully)가 발표한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여, 킹 비더(King Vidor) 감독, 돌로레스 델 리오(Dolores del Rio) 주연으로 1932년에 제작된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원작 영화는 당시의 인기배우였던 돌로레스 델 리오의 전라(全裸) 수영장면이 있어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식민지 조선에서도 1933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조선극장에서 상영된 바 있었다. 이 영화는 1932년 원작의 내용 거의 대부분을 리메이크하고 있지만, 폴리네시아인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의 철저한 욕망을 드러낸 1932년 작품과는 달리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갈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1950년대를 전후하여 달라진 미국의 시대상을 볼 수 있게 한다. 한국에서는 1955년 2월 1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였고, 이후 4월 남도극장, 5월 계림극장, 6월 동양극장, 8월 성남극장, 10월 명동극장 등에서 꾸준히 재상영을 거듭하며 흥행하였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국도극장 · 세기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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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전단지 앞면의 이미지는 쇼걸인 마릴린 몬로와 제인 러셀의 여러 가지 포즈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부분에는 수입사의 차기작인 <흑장미>와 <영원의 암바>의 작은 포스터를 배치했다. 뒷면은 스탭과 캐스트 소개, 해설과 줄거리 등으로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 부분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인기절정의 육체파의 2대 여우의 관능미 영화! 외국영화 상영의 최고기록을 수립한 ”나이아가라“에 이어서 입하한 마리린·몬로의 제2회 주연영화”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5 · 국도극장 · 고려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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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1955년임에도 불구하고 전단지는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장 이미지 면에는 죠셉 코튼과 제니퍼 존스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으로 전면 개제되어 있고 뒷면에는 그레고리 펙까지 가세한 세 명의 모습이 영문, 한글로 된 스탭 소개와 함께 실려있다. 두번째 장은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의 제작과정과 주요 배우와 스탭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있으며, 뒷장은 줄거리가 자세히 수록되었다. 세 번째 장은 감독 및 주요 세 배우의 프로필이 자세하게 실려 있고 그 뒷면에는 <삼총사>의 홍보포스터가 있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5 · 수도극장 · 불이무역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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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홍보문구를 사용하지 않고 마릴린 먼로의 상반신을 크게 담은 사진으로 대신했다. 매 장마다 마릴린 먼로의 육체미를 강조한 이미지들을 사용하였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부른 주제가 “키스”의 악보를 가사를 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고려영화사가 수입 배급한 영화 3편(<키리만자로>, <아라비아 공주(公主)>, <흑장미(黑薔微)>)에 대한 광고를 전단지 뒷부분에 배치해 놓았다. 영화노트 현지 로케이션으로 담은 나이아가라의 장대함도 매력이었지만, 이 영화의 중심은 단연 마릴린 먼로였다. 전 세계 최고의 인기여배우라는 지위를 먼로에게 부여한 영화라 소개하였고 홍본 전략도 먼로의 관능적 육체와 성적 매력을 알리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그녀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걸음걸이는 화제였다. 선정적인 의상을 하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걷는 대담한 동작은 이른바 '먼로 워크'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5 · 수도극장 · 고려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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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일반적인 전단지와는 달리, 가로가 매우 긴 전단지 1장의 앞뒷면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에는 영화의 내용을 묘사한 칼라 그림과 함께 우측으로 “다비데왕과 미녀 바스시바 연애의 모습을 그린 세기의 초걸작!”이라는 광고 문구가 쓰여있다. 총천연색 초거편(超巨篇)이라는 표기로 이 영화의 규모를 선전하고 있다. 전단의 뒷면에는 영화의 줄거리 소개와 제작 과정을 수록한 해설이 쓰여 있고, 전단의 양 옆에는 영어와 한글로 출연진 및 제작진의 명단이 기술되어 있다. 전단의 중앙 하단부에는 “스타 메모”라는 란을 따로 두어 영화의 출연진에 대한 상세한 약전을 덧붙이고 있는 것 역시 특징이다. 전단의 하단부에는 <탈옥자의 비밀>, <남해의 겁화>, <영원의 비가> 등 당시 개봉 예정작들을 광고하는 광고 문구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20세기 폭스 사의 사장이자 제작총괄 프로듀서였던 대릴 F. 자눅(Darryl F. Zanuck)의 기획으로 1947년부터 제작 기획이 시작되었다. 본래는 구약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등장하는 다윗왕의 일대기 전체를 다룬 작품으로 기획되었으나, 제작 여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영화의 기획 내용이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며 결과적으로는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으로 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1950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 이듬해 2월에 촬영이 완료되었고, 1951년 8월 14일에 정식으로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1940년대 말 이후 본격화된 할리우드의 성서 대하사극 장르에 있어 초기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한 영화로, 1951년 개봉 당시에는 같은 해 개봉한 대하사극 <쿠오 바디스>와 함께 쌍벽을 이루며 그 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하였고 평론가들과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구약성서의 내용을 “인간적”으로 각색하여, 밧세바가 다윗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나, 다윗이 언약궤에 대한 금기를 미신으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비가 내린 것이 신의 은총이 아닌 자연 현상으로 인한 우연일 수도 있다는 암시 등을 넣은 것 때문에 당대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52년도 아카데미 상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기타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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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전체 12면으로 구성된 팸플릿 형 전단이다. 앞표지에 해당하는 1면은 칼라로, 페넬로페 역을 맡은 실바나 망가노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영화의 표제와 제작정보 등을 배치하였다. 2면과 3면은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명단, 그리고 영화 해설을 수록하였는데,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인쇄 방식과는 달리 음화(陰畵, negative) 형태로 글씨와 사진을 인쇄한 것이 돋보인다. 4-5면에는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였고, 6-7면은 주연 배우들 및 제작진의 약전을 사진과 함께 상세히 기술하였다. 8-9면에는 영화의 스틸사진과 함께 호메로스의 원작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였고, “시성 호머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영화화 수(遂; 드디어) 완성! 이태리가 과시하는 오락미 100퍼센트이 세기적 대사극!”이라는 홍보 문구가 들어있다. 10-11면에는 <제작여담>이라는 코너를 두어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뒷표지인 12면 역시 단색조를 여럿 활용한 칼라 인쇄를 통해 사진, 원제, 배급사 정보 등을 수록하며 다채롭게 꾸몄다. 영화노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각색한 영화. 방대한 서사시의 내용을 2시간 채 못되는 짧은 시간안에 압축적으로 각색하였다. 이탈리아와 미국의 합작으로 막대한 제작비와 물량을 동원해 제작되어 당대에 큰 주목을 받았으며, 개봉 후에는 그 해 이탈리아 흥행작 1위로 막대한 돈을 벌며 이후 1950-60년대를 풍미한 이탈리아의 이른바 “검과 샌들(Sword-and-Sandals)” 장르 영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55년 9월 수도극장에서 처음 개봉한 뒤 이듬해인 1956년 연말까지 동양극장, 명동극장, 남도극장, 남부극장, 명동극장, 계림극장, 경보극장, 중앙극장, 광무극장, 문화극장, 자유극장에서 거의 매달마다 재상영을 거치며 대흥행하였다. 이후 1963년 8월에도 재수입되어 피카디리극장에서 재개봉한 뒤 경남극장, 중부극장, 명동극장 등에서 그해 연말까지 재상영되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5 · 수도극장 · 한국예술 · 합작(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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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구성 별다른 홍보문구가 없다. 주연 배우인 클라크 게이블과 에바 가드너의 상반신을 담은 사진만이 전단지 전면을 채우고 있다. 배우들과 스탭 명단을 담은 영문 전단지를 그대로 싣고 그것을 번역하여 함께 수록하였다. 줄거리 소개와 해설 및 배우와 감독 설명을 담은 것은 다른 전단지와 같지만, ‘로케이숀 이문(異聞)’이라는 제목으로 아프리카에서 고릴라 촬영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실었다. 영화노트 개봉 당시 신문 광고용 포스터에는 “아프리카의 대자연(大自然) 속에 내던진 남녀(男女) 4인(四人)! 애욕(愛慾)은 야수(野獸)의 노여움보다도 거세고 불륜(不倫)은 밀림(密林)의 어둠보다도 깊었다!”라 쓰고 있다. 지난한 고릴라 촬영을 비롯하여 3개월여 동안 아프리카 산속에서 체재하며 진행한 촬영담을 소개하며 이 영화가 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모험영화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개봉관인 단성사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영사장치와 완전 방음되는 입체음향설비를 갖춘 한국 최초의 극장으로 새로 개관했음을 크게 알리고 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5 · 단성사 · 동양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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