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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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T679019_01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T679020_01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T679021_01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T679022_01
1993년,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40일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10월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스크린쿼터감시단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가졌으며, 최금동, 유현목, 이태원, 임권택, 유동훈 5인이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10월 27일 영화의날 기념행사 취소 및 이날 하루 모든 영화 제작 활동 중단을 결정했으며("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 출범, 《경향신문》, 1993.10.24., 17면), 같은 날 영화인 500여 명이 참석한 "의무상영일수 축소 규탄대회"를 열었다(「1993년 스크린쿼터감시단 활동백서」, 스크린쿼터감시단, 1994.3.10., 13쪽 참조).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T679023_01
1998년 11월, 한미투자협정 3차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일과 이에 대해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제시한 사실이 공개되자,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1일 하루동안 한국영화 제작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한편,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규탄대회에는 영화인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시위에 참석한 배우들은 근조띠를 두른 자신들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138_01
미국영화 직배저지·영화진흥법 쟁취 영화인투쟁위원회(영투위)가 주최한 1988년 10월 4일 UIP 사무실 앞(서울 장충동) "미국영화 직접 배급 회사 UIP 추방을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 벽보로 추정된다. 미국 UIP를 상징하는 거인이 영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소인을 밟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 그림으로, 미국영화 직접 배급이 한국영화 시장에 미칠 폐단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영화 직접 배급 회산 UIP 추방을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와 관련해서는 「영투위 성명서」(작성일: 1988.10.04., 관리번호 DZZ0001363_01)과 「UIP 추방을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 투쟁 구호 및 가사 유인물」(작성일: 1988.10.04., 관리번호 DZZ0001364_01) 참조.
1기(제5~6공화국) ·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영화인운동본부 · 온라인 열람
DPZ000204_01
1기(제5~6공화국) ·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영화인운동본부 · 온라인 열람
DZZ0001365_01
문서의 제목으로 미루어 이 자료는 1988년 10월 21일, 영투위가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을 방문하기 전에 작성한 것이며, 문서 본문 중에 작성일이 "29일에 이르는 오늘까지"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투위 결성(1988.9.21.)으로부터 29일째인 1988년 10월 19일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영투위의 조문진, 이장호, 정지영 등은 10월 21일, 민정당 윤길중 대표를 방문해 미국영화 직배 철회 및 영화진흥법 제정에 대한 민정당 협조를 요청했으며, 이 자리에서 "당내 협의를 거쳐 민정당의 공식태도를 밝히겠다"는 윤길중 대표의 약속을 받고 돌아왔다고 전해지지만, 이후 민정당은 "UIP 직배는 현행법 상 막을 수 없는 일"이라 발표하는 한편 영화진흥법 제정은 '졸속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각계의 폭넓은 의견을 들어서 결정할 문제"라 말해 영화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직배반대 영화법 투쟁 정치문제화 조짐", 《한겨레신문》, 1988.10.25., 7면 참조)
1기(제5~6공화국) ·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영화인운동본부 · 온라인 열람
DZZ0001366_01
1기(제5~6공화국) · 직배저지 영화인투쟁위원회/영화인운동본부 · 온라인 열람
DZZ0001367_01
정부-문화공보부-영화인협회-각 분과위원회-영화인'으로 도식화되는 영화 단체의 제도적,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영협 탈퇴,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단체 결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문서로, 한국영화감독협회 준비위원회가 1988년 11월에 작성한 것이다. 문서 하단에 명기된 것과 같이, 한국영화감독협회는 1988년 11월 30일, 창립총회를 열고 결성을 선언했으며, 권영순 감독이 회장을 맡았다. 한편 1989년 2월 20일, 한국영화감독협회는 민족영화위원회(위원장 이장호)와 공동으로 '미국영화 직배저지·영화진흥법쟁취·영화계민주화 영화인운동본부'(김정현, 이장호, 홍기선 공동대표, 약칭 영화인운동본부)를 결성한 바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ZZ0001368_01
문서 내에 언급된 '통일민주당 주최 영화 및 공연 관계법 개정 공청회'는 1988년 8월 5일의 일로, 이로 미루어 1988년 8월 이후에 작성된 문서로 추정된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ZZ0001369_01
1998년 한미투자협정 저지를 위해 결성된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김지미, 이태원, 임권택)가 국회의원 대상으로 발송한 "현행 스크린쿼터일수의 유지를 지지하는 서명" 요청 공문으로, 붙임자료의 서명문을 통해 비대위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다. 이후 국회에서는 1999년 1월 5일, 「한국영화의무상영제 유지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었으며, 이 결의안은 '정부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 존속과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을 촉구하는 한편 '한미투자협정 부속서에 영화를 포함한 시청각 서비스 산업에 대한 본문적용의 예외를 조건없이 명시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유지 결의안' 국회 통과", 《매일경제》, 1999.01.07., 27면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ZZ0000413_01
영화인회의 창립(1999년 8월) 및 기증자의 상임운영위원 활동 관련 문서철. 창립 당시의 영화인회의 회원 명부 및 정관, 창립대회 세부 계획안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영화인회의 창립 당시의 영화계 주요 안건(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진흥법 개정)과 관련해 영화인회의 활동 및 입장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문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영화인회의는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일환으로 "영화주권-문화독립展"(1999.10, 부산 민주공원 개관 기획전) 개최,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부산국제영화제 결합 행사 등을 기획했는데, 이 철에는 이와 관련된 기획·준비 단계의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본 문서철에는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주장하며 영화인회의가 작성한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서: 스크린쿼터는 반드시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를 비롯해 대국민 호소문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우리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의 초안 및 탈고문을 비롯해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계획 관련 회의 안건지 등 역시 수록되어 있어, 초창기 영화인회의의 활동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이 핵심 사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기(김대중 정부) · 영화인회의
ZZ0001382_01
사진 후경 정면에 'KAEYANG BLDG'라 적힌 건물과 후경 좌측 '조훈'이라 적힌 간판으로 미루어 서울 중구 명동으로 추정되며, 동일한 배경의 유사 사진이 《한겨레》 1988년 9월 27일, 7면에 보도되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는 1988년 9월 24일, 국내 첫 직배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한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 앞에서 열린 미국영화 직배 반대 시위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날 시위에는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 영화 배우겸 감독·제작자 하명중, 감독 박철수, 장선우, 홍기선, 제작자 이태원, 강대선, 황기성, 민족영화연구소 이정하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참가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직배영화 안보기 운동' 전국으로, 《한겨레신문》 1988.09.27., 7면) 또 다른 보도기사에 따르면, 이 시위로 "코리아극장에서 오전 10시 50분부터 하루 8번 상영될 예정이었던 미국 UIP 한국지사가 배급한 미국영화 <위험한 정사>는 개봉 첫회부터 상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미국 직접 배급 항의 영화인 2백명 농성, 《한겨레신문》 1988.09.25, 11면) 한편 이 사진은 영화에 이어 음반, 비디오 시장으로 직배 범위가 확장된 1990년,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에 실리기도 했다. ("UR 태풍이 온다-영화, 음반업계도 큰 타격", 《동아일보》, 1990.10.28., 6면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45_01
1988년 10월 3일,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 앞에서 진행된 '미국영화 직배반대 캠페인'에는 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위원장 윤일봉) 소속 영화배우 150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캠페인에 참여한 배우들은 미국 UIP의 국내 직접 배급을 반대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1시간 30분 가량 거리 시위를 벌였다. ("미 영화 직배 반대 시위, 《한겨레신문》 1988.10.04., 11면 참조) 이들이 배포한 호소문에는 ▲미국 UIP사의 <위험한 정사>의 직접 배급 절대 반대 ▲정부의 정책적 한국영화 육성 방안 강구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영화배우들도 거리에 나서", 《경향신문》 1988.10.02., 17면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ZT000144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개봉한 서울 신영극장 앞에서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영화인협회, 한국감독협회, 민족영화위원회, 영화인투쟁위원회 등 소속 영화인들이 모여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영화의 직배는 한국영화 시장을 독점하려는 음모"라 주장하며 직배 영화 관람 거부를 촉구했다. ("두 번째 직배 '007...' 개봉 맞춘 엄호조치인듯, 《한겨레신문》, 1989.02.05, 13면.) 한편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T751804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개봉한 서울 신영극장 앞에서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영화인협회, 한국감독협회, 민족영화위원회, 영화인투쟁위원회 등 소속 영화인들이 모여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영화의 직배는 한국영화 시장을 독점하려는 음모"라 주장하며 직배 영화 관람 거부를 촉구했다. ("두 번째 직배 '007...' 개봉 맞춘 엄호조치인듯, 《한겨레신문》, 1989.02.05, 13면.) 한편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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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개봉한 서울 신영극장 앞에서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영화인협회, 한국감독협회, 민족영화위원회, 영화인투쟁위원회 등 소속 영화인들이 모여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영화의 직배는 한국영화 시장을 독점하려는 음모"라 주장하며 직배 영화 관람 거부를 촉구했다. ("두 번째 직배 '007...' 개봉 맞춘 엄호조치인듯, 《한겨레신문》, 1989.02.05, 13면.) 한편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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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개봉한 서울 신영극장 앞에서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영화인협회, 한국감독협회, 민족영화위원회, 영화인투쟁위원회 등 소속 영화인들이 모여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영화의 직배는 한국영화 시장을 독점하려는 음모"라 주장하며 직배 영화 관람 거부를 촉구했다. ("두 번째 직배 '007...' 개봉 맞춘 엄호조치인듯, 《한겨레신문》, 1989.02.05, 13면.) 한편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한국영화인협회 · 온라인 열람
DST751807_01
1998년 11월, 한미투자협정 3차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일과 이에 대해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제시한 사실이 공개되자,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1일 하루동안 한국영화 제작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한편,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규탄대회에는 영화인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시위에 참석한 배우들은 근조띠를 두른 자신들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139_01
1998년 11월, 한미투자협정 3차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일과 이에 대해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제시한 사실이 공개되자,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1일 하루동안 한국영화 제작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한편,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규탄대회에는 영화인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시위에 참석한 배우들은 근조띠를 두른 자신들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140_01
1998년 11월, 한미투자협정 3차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일과 이에 대해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제시한 사실이 공개되자,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1일 하루동안 한국영화 제작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한편,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규탄대회에는 영화인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시위에 참석한 배우들은 근조띠를 두른 자신들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141_01
1998년 11월, 한미투자협정 3차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일과 이에 대해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제시한 사실이 공개되자,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1일 하루동안 한국영화 제작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한편,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규탄대회에는 영화인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시위에 참석한 배우들은 근조띠를 두른 자신들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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