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스틸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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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스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창립준비 중 야구대회에서 야구선수에게 꽃다발을 주고있는 문예봉과 그 뒷편의 영화사 관계자들. 다카시마 긴지(高島金次)의 <조선영화통제사>(1943)에 ‘영화인야구대’에 대한 언급이 있다. 1942년 6월,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영화사들을 해산한 후 사실상 폐업 상태에 있었던 영화인들의 ‘연성(鍊成)’, 친목, 건강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야구인영화대’가 만들어졌다. 다카시마 긴지와 이창용이 먼저 돈을 내고 후원자들에게 기부를 받아 도구를 구비했다. 야구단의 주장은 이창용, 매니저 이병일이었으며, 문예봉, 김소영 등이 포함된 응원단의 단장은 김한이 맡았다. 20여 명으로 구성된 야구대는 금룡구락부와 첫 시합을 가졌고, 이후 경성일보와도 시합했으며, 육군병원 위문시합 등에도 출전했다고 한다. 이 야구대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로 인수되었다.
1940년대 · 기타 · 영화인야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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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스틸
194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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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협스틸
<조선해협> 경회루 로케이션 촬영을 마친 후 촬영한 단체사진으로, 제작자 이재명과 감독 박기채, 촬영기사 이명우 그리고 김신재, 문예봉, 남승민 등 출연배우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속 1열 왼쪽 첫 번째에 앉아있는 인물은 나카다 하루야스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서 상무이사 겸 촬영소장을 역임했다.
194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해협(1943) ·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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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스틸
196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제7회 아시아영화제(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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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 영화인회찬 기념스틸
198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영화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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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 영화인회찬 기념스틸
198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영화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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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스틸
청년 시절의 이재명. 조선영화주식회사 입사 전의 사진으로 짐작된다.
1930년대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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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스틸
시기 미상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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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행스틸
이재명의 장남 이경행의 어린시절 사진. 1930년대 후반이나 1940년대 초반에 촬영된 사진으로 추정된다. 조선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제작자들을 조명한 안석영의 글에 이재명의 아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안석영, "(속)은막천일야화: 험산준령을 달리는 조선영화제작부대의 삼총사", 《조선일보》, 1940.4.11.) 그 글에 기대어 짐작해 보면, 이재명의 아들은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는데 의정부촬영소에 자주 맡겨져서 촬영소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이 제작부장으로서 출장이 잦은 시기여서 더욱 그러했던 듯하다.
1930년대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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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스틸
시기 미상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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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이 다시 오면스틸
아세아영화사가 제작한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노필, 1958)의 제작진과 관계자가 함께 찍은 단체 사진. 시나리오 작가 나소운(좌1)과 김강윤(좌2), 제작자 이재명(좌3), 주연배우 이민(좌4)과 이빈화(우3)가 보이며, 사진의 오른쪽 마지막 인물은 노필 감독으로 추정된다. 정비석의 원작소설 『장미의 계절』을 각색한 <그 밤이 다시 오면>은 1958년 7월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50년대 · 단체·기념사진 · 그 밤이 다시 오면(1958) · 아세아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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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스틸
시기 미상 · 개인(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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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스틸
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스튜디오 건물을 배경으로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제2회 작품 <새출발>(이규환, 1939)의 제작진과 출연진, 회사 관계자들이 촬영한 단체 사진. 조선영화주식회사는 1938년 8월에 성봉영화원과 합병했다. <새출발>은 성봉영화원이 <나그네>(이규환, 1937), <군용열차>(서광제, 1938)에 이은 제3회 작품으로 기획한 영화(가제 '아버지')였으나, 조선영화주식회사(이하 '조영')가 성봉영화원과 합병한 후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가 되었다. 조영의 확장 후 제작진과 회사 직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영의 제작자 오영석(2열 좌4)과 이재명(2열 좌5)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음악감독 박영근(2열 좌1), 안석영(2열 좌2, 의자에 앉은 열), 감독 이규환(2열 좌3, 흰 셔츠)이 있고, 오른편으로 배우 서월영(2열 좌6)이 앉아있다. 앞줄에는 배우 김한(1열 좌3, 검은셔츠)과 촬영감독 양세웅(1열 우2)이, 그 뒷줄에는 미술감독 윤상렬(3열, 좌3)과 배우 이백희(2열 좌4), 독은기(3열 좌5)의 모습이 보인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새출발(1939)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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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아키라 환영회스틸
일본의 영화평론가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 1903~1981)의 조선영화주식회사 방문 환영 기념회 사진. 이와사키 아키라는 1938년 가을 만주영화계를 시찰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길에 조선을 방문했다. 이와사키는 경성에서 고려영화협회, 조선영화주식회사 관계자들을 만났고, 10월 30일에는 일본어 신문 경성일보가 주최한 좌담회 이와사키 씨를 둘러싸고, 조선영화를 말한다(岩崎昶氏を圍んで座談“半島映を語る”)에서 조선영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사진은 조선영화주식회사 관계자들이 별도로 준비한 자리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 이와사키 아키라 조선 방문(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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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아키라 환영회스틸
일본의 영화평론가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 1903~1981)의 조선영화주식회사 방문 환영 기념회 사진. 이와사키 아키라는 1938년 가을 만주영화계를 시찰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길에 조선을 방문했다. 이 사진은 일본의 영화잡지 《영화지우》 1939년 3월호에 게재된 이와사키의 조선영화계에 대한 인상이 서술된 글에도 수록되었다. 왼쪽부터 배우 정춘희(좌1), 제작자 최남주(좌2), 배우 문예봉(좌3), 이와사키 아키라(좌4), 배우 한은진(좌5)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 이와사키 아키라 조선 방문(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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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아키라 환영회스틸
일본의 영화평론가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 1903~1981)의 조선영화주식회사 방문 환영회 사진. 이와사키 아키라는 1938년 가을 만주영화계를 시찰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길에 조선을 방문했다. 이와사키 아키라 왼편으로 사장 최남주, 배우 문예봉, 한은진, 정춘희가 앉아 있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 이와사키 아키라 조선 방문(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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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스틸
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에서 조선총독부 도서과 검열실 오카다 준이치(岡田順一) 일행 방문 기념으로 촬영한 오카다 주임 일행과 <지원병> 스태프의 단체사진. <지원병>은 최승일이 설립한 동아흥업에서 제작했으나, 조영 스튜디오 부근 일대 오픈 세트에서 촬영했다. ("그 후의 문예봉 양 <지원병>에 출연중!", 조선일보, 1939년 11월 9일자) 감독 안석영(1열 좌1), 제작자 최승일(추정, 1열 좌3), 주연배우 문예봉(1열 좌4), 총독부 검열실 오카다 준이치 주임(1열 좌5), 배우 이선희(1열 좌6), 촬영감독 이명우(2열 좌6, 선글라스), 배우 최운봉(2열 우5), 음악을 맡은 김준영(2열 우6).
194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지원병(1940)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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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광주 개봉 환영회스틸
<무정>의 광주극장 개봉을 환영하는 기념행사 사진. 요릿집 방 안에 긴 상을 두고 영화관계자들이 둘러앉아 있다. 조선영화주식회사 로고가 그려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광주는 조선영화주식회사 사장 최남주의 고향이자 본가가 있는 곳이다. <무정>이 감독, 제작자, 그리고 사장의 연고지인 광주에서 개봉한 것은 1939년 4월이다. 사장 최남주를 비롯해 최일숙, 박기채 등 광주를 연고로 하는 사람들이 창립 초기부터 회사에 관여했던 만큼, 창립작 <무정>의 광주극장 개봉은 특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무정(1939)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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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덕수궁 로케이션스틸
<무정> 촬영을 위한 덕수궁 로케이션 현장. 중앙에 영화 간판과 카메라를 중심으로 둘러 싸고 앉아있는 배우들과 제작진. 영채 역을 맡은 주연배우 한은진(3열 좌1), 이형식 역의 배우 최남용(3열 우3), 선형 역의 배우 김신재(3열 우1), 감독 박기채(2열 우1), 선전부의 김정혁(1열 우1)이 있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무정(1939)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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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코러스 녹음스틸
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 녹음실에서 <새출발>의 코러스를 녹음하는 현장 사진. 녹음실은 1938년 11월에 완성되었다. <새출발>의 음악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수학한 박영근이 담당했다. 박영근은 일본에서 좌익 문예운동 단체에 몸담으며 프롤레타리아 예술 활동에 참여한 바 있으며, 1935년에 귀국해 홍난파, 이승학과 코리아음악연구소를 공동 설립하고 후학 양성에 나섰다. 1937년에는 경성음악스타디오를 설립하고 그 부설로 경성오페라스타디오와 오페라좌를 창립했다. 이 무렵부터 영화음악을 시작한 그는 <새출발> 외에도 안석영 감독이 연출하던 <여학생>(미완)과 김유영 감독의 유작 <수선화> 등 조선영화주식회사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의 음악을 맡았다.
1930년대 · 제작현장사진 · 새출발(1939)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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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낭독회스틸
안석영 감독의 <여학생>이 크랭크인에 들어가기 전에 동대문 밖에 있는 절 영도사(현 안암동 개운사)에서 낭독회를 진행하고 촬영한 단체 사진. 1939년 6월 경으로 추정된다. 조선영화주식회사 창립작 <무정>의 녹음을 담당했던 최인규(왼쪽 기둥 앞), 배우 문예봉(1열 좌3), 한은진(1열 좌4), 방란(1열 좌5), 김일해(1열 우1), 감독 안석영(1열 우3)과 이재명(2열 우4)이 있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여학생(미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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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주 가족사진스틸
조선영화주식회사 의정부촬영소 건물을 배경으로 촬영한 최남주의 가족 사진. 최남주 왼편에 이재명. 우측 첫번째 인물은 최남주의 여동생 최옥희로 니혼대학 예술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 최남주가 출자한 학예사의 실무를 맡았다. 문학비평가 임화가 주관한 학예사는 독일의 레크람문고나 일본의 이와나미문고와 같은 문고본 시리즈 '조선문고'를 간행하며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 조선영화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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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학원스틸
음악가 박영근이 운영한 학원 앞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 사진. 박영근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일본에서는 좌익 문예운동 단체에 몸담으며 프롤레타리아 예술 활동에 참여했는데, 1935년에 귀국해 홍난파, 이승학과 코리아음악연구소를 공동 설립하고 후학 양성에 나섰다. 1937년에는 경성음악스타디오를 설립하고 그 부설로 경성오페라스타디오와 오페라좌를 창립했다. 이 무렵부터 영화음악을 시작해 영화 <새출발>의 음악을 담당했고, 안석영 감독이 연출하던 <여학생>(미완)과 김유영 감독의 유작 <수선화> 등 조선영화주식회사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의 음악을 맡았다.
1930년대 · 단체·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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