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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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김종원)가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에게서 받은 <만추> 녹음대본. 본 자료에는 추가된 녹음대본 역시 간지 형태로 끼워져 있다.
1960년대
CKN006335_01
기증자(김종원)가 유현목 감독에게서 받은 <장마>의 수정 준비용 시나리오. 표지에 유현목 감독의 사인이 게재돼 있으며, 시나리오 중간중간, 유현목 감독이 직접 작성한 수정 내용, 화면 구도 및 카메라 앵글 등의 단상이 기록돼 있다.
1970년대
CKO003257_02
『조선일보』 1926년 10월 1일자에 게재된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광고. 해당 광고에는 "아리랑"의 가사 일부분이 수록되어 있는데, 식민치하의 조선 민족의 비애를 그리고 있다. 이에 검열 당국은 해당 광고를 삭제 조치했다. 이로부터 이틀 후인 1926년 10월 3일자 『매일신보』의 광고에서는, 아리랑 가사가 "근사초일대만원"이라는 문구로 대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검열 전의 <아리랑> 광고를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라 할 수 있다.
192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ZK0000468_01
유효기한 1952-10-30자 수도극장 발행 우대권. 이를 발급받은 인물, 우승규(1903~1985)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1923년 상해 혜령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1931년부터 『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등의 기자로 활동했다. 1947년부터 『경향신문』 편집부장 겸 편집부 차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1949년 『시사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 겸 논설위원을 거쳐 1952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평화신문』 논설위원, 1963년 『국도신문』 주필을 역임했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본 우대권은 우승규가 『평화신문』 기자였을 당시에 발급된 것이다. 한편 우대권을 발행한 수도극장은 1935년 '약초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문을 연 극장으로, 해방 이후 1946년 수도극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편 수도극장을 관리·경영했던 홍찬은 1949년, 『평화일보』의 판권을 인수해 『평화신문』을 창간했다.
1950년대 · 온라인 서비스 제공
ZZ0000035_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