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과 검열(1971~1984)
주제 컬렉션 · 127 점
1971년~1984년 사이 한국 반공/분단영화의 검열서류 127건을 모은 컬렉션. 반공과 검열(1955~1970)의 후속편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주제 컬렉션 · 127 점
1971년~1984년 사이 한국 반공/분단영화의 검열서류 127건을 모은 컬렉션. 반공과 검열(1955~1970)의 후속편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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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없음 ㅇ 특이사항: 1977년 제작신고 후 제작이 진행되다, 거의 1년 후인 1978년 9월에 제명 및 스탭 변경이 이루어지며 절차가 재개시되고 있다. 주조연배우 뿐 아니라 감독, 촬영 및 조명감독까지 교체신고가 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영화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것으로 짐작된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불명확하다.
1977_1979 · 한국전쟁 · 중학생이상관람가
RK03301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자막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애니메이션 작품의 검열서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기본적으로 그 절차에 있어서 장편 극영화와 큰 차이는 없으나, “문화영화 “똘이장군” 제작신고 수리”라는 문서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만화영화는 당시 문화영화의 한 갈래로 행정당국에 의해 취급되었다.
1977_1979 · 기타 · 미성년자관람가
RK05309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자막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 국방부가 문공부에 발신한 “극영화 제작편수 배정”이라는 서류가 있다. 한진흥업이 제작하는 <전우가 남긴 한마디> 영화가 “젊은 세대의 국가관 확립에 많은 기여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이미 한진흥업에 할당된 제작쿼터 외에 추가로 쿼터를 배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이다. - 이와 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인지, 한진흥업은 이후 “우수특별영화 제작에 따른 제작권 추가배정 요청의 건” 서류를 통해 추가 쿼터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 공문에 따르면 제작사는 자의가 아니라 육군본부의 의뢰를 받아 영화제작을 하고자 했다. 영화의 취지에 대해 제작사는 “북괴들의 남침야욕을 분쇄하고 막강한 국력을 과시 다시는 이 땅에 6.25 같은 참상의 전철이 되풀이 되지 않게 투철한 반공정신을 앙양시키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스스로 호국정신을 갖도록...”이라 밝히고 있다. - 1985년 1월에 돌연 한진흥업이 이 영화의 반공영화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공문을 공보부에 발송했고, 공보부는 공윤에 의뢰하여 반공영화임을 확인하는 회신을 하였다. 1985년 1월에 이와 같은 과정이 어떤 배경에서 진행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후 확인이 필요하다.
1977_1979 · 한국전쟁 · 중학생이상관람가
RK03314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6, 화면단축 2개처 ㅇ 특이사항: 1978년 10월 4일 진행된 공윤의 1차 시나리오 검열에서 개작 명령을 받았다. “반공을 빙자한 도색적인 분위기가 짙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후 10월 16일 심의에서 무수정 통과하였다.
1977_1979 · 한국전쟁 · 미성년자관람불가
RK03320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삭제 2, 화면단축 1, 대사삭제 1개처 ㅇ 특이사항: 검열합격 이후 예고편 검열까지 대략 7-8개월이 소요되었다. 개봉이 지연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1977_1979 · 간첩 · 중학생이상관람가
RK03326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1개처 ㅇ 특이사항 - 공윤의 1차 시나리오 검열에서 개작 명령을 받았다. 사유는 다음과 같다. “1. 테마에 교훈적인 요소 내지 기성 모랄을 도입한 것은 좋으나 동심의 세계가 잘 남아있지 않은 점을 감안, 아이들이 공부하고 성장하는 생활에 알맞게 이를 반영시키기 바람. 2. 자칫 형식만으로 끝나버릴 반공내용을 정서적인 요소(아이들과 동물)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그리기 바람. 3. 저속한 대화, 북에서 사용하는 극단적인 언어를 다른 말로 바꾸기 바람. - 공윤이 심의를 받아 제작신고를 하였으나, 문공부가 수급조절상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제작사는 다시 제작신고를 하면서 수급조절상 신고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자사에서 이미 제작신고 수리를 받은 <은하함대 지구호>를 미루고 대신 수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제작신고는 수리되었는데, <은하함대 지구호>를 대체하여 수리된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 검열신청 시 제작비 명세서가 첨부되어 있다. 이 시기에 한시적으로 요청되었던 양식이었다. - 1979년 4월부터 공윤이 본편 검열까지 수행하게 됨에 따라 공윤 영화심의위원들이 본편 검열을 수행하였다. 15명의 검열위원들이 기명으로 검열에 참여하였는데, 차종호, 임광수, 호현찬, 한형모, 최종률, 이범준, 윤석중, 예용해, 여석기, 안명기, 손세일, 박명진, 나영균, 최창봉, 김광섭 등이다.
1977_1979 · 간첩 · 미성년자관람가
RK05280
ㅇ 상영허가 시 검열사항: 화면단축 3, 대사삭제 2개처 ㅇ 특이사항 - 공윤의 시나리오 검열에서는 무수정 통과하였으나, 문공부의 제작신고 수리 유의사항에서는 서류에서와 같이 상당한 분량의 수정사항을 제시하였다. 이는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의 수정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 해당 전사편찬위원회의 수정의견은 70년대 초중반의 검열 주안점을 접근하는 태도가 다소 다른 점이 있어 흥미롭다. 바 항목에서 언급된 대사에 대해 “전통 단일 민족으로서의 분열과 상쟁은 배격되어야 한다는 울분의 표현인데서 일용 공명감을”고 하는 부분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원인이 된 대사는 삭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이전과 같으나, 감상적 민족주의에 대해 일정한 동질감을 표현하고 있는 점은 다소 다르다. 마 항목의 “제네바 조약”이라는 명칭 역시 이전 영화들에서는 대부분 삭제사항이었으나, 여기서는 삭제되지 않았고, 아 항목에서 “양반 쌍놈”이라는 단어들 대신 ”부르죠아와 플로레탈리아“라는 단어로 대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전 같았으면 오히려 삭제되어야 할 북한군의 언어였다. 이러한 변화가 79년 검열 당시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결과인지, 담당자의 주관을 표현한 결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김광섭, 이옥자, 박명진, 최정호, 나영균, 여석기, 손세일, 예용해, 한형모, 안명기, 차종호, 최종률, 윤석중, 최창봉, 임광수, 호현찬 등 16명의 검열위원이 기명으로 검열의견서를 작성하였다.
1977_1979 · 한국전쟁 · 중학생이상관람가
RK03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