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日間 世界一周Flyers
전단지 구성 홍보문구는 “사상(史上) 공전(空前)의 대여행(大旅行)!”, “온갖 오락(娛樂)의 요소(要素)가 담뿍 실린 최고(最高)로 재미있는 초(超) 데럭스 거편(巨篇)!” 이다. 전단지 전면에 아카데미상의 이미지와 함께 영화상 5개 부문 수상작이면서 그 외에도 전세계에서 47개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 해설면 옆에는 “2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세계최고의 영예(榮譽)와 초경급(超驚級) 오락대작!”이라는 글귀를 통해 이 영화의 제작 규모를 강조하였다. 영화노트 원작은 쥘 베른이 1973년도에 발표한 동명소설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모험담이다. 지구 곳곳에서 전개되는 진귀한 풍물과, 기차와 선뱍, 마차, 요트 등 모든 교통기관이 등장하고 분초를 다투는 스릴 넘치는 상황이 벌어지는 다소 이채로운 작품이었다. 내용에 걸맞는 영화의 스케일이 늘 화제였다. 영화화되자마자 세계 각국에서 상영된 기간과 기록적 수익은 물론이고, 영국 개봉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호화 파티에 얼마나 거액이 들었는지가 언론에 등장할 정도였다. 1959년 9월에 한국에 개봉되기 전부터 2년 여 동안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소식들이 전해졌다. 각종 수상 소식이 그러했다. 뉴욕 영화비평가협회가 수상하는 1956년도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아카데미 최우수영화상을 받았고 오스카 음악작곡상, 촬영상(천연색), 편집상을 수상했으며 1957년 칸영화제에 특별상영되며 화제를 몰았고 ‘필름 데일리’지가 선정한 1957년도 최우수 작품으로 지명되었다는 점까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특히나 영화의 제작자인 마이크 토드가 한국관객에게 이미 유명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화제였다. 마이클 토드가 선보인 초대형 스크린인 ‘톳드 AO 시스템’에 초점을 둔 홍보전략이 사용되었다. 게다가 1958년 3월에 마이크 토드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남편 사망 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받게 될 유산까지도 언론의 화제였다. 1959년에는 삼중당 출판사에서 쥘 베른의 동명 소설을 출간했다. 이 영화를 모방한 제목을 가진 <8주간의 세계일주 Peter Voss>라는 작품이 1960년 6월 9일에 대한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동경의 은좌거리와 차집의 진풍경, 국제적인 항구도시 리스본과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담은 이 영화는 만원사례를 기록하면서 연장 상영되기도 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9 · 기타 · 미상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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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地創造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이나 4면은 공란으로 되어 있어 실제로는 3면 구성의 전단이다. 1면에는 “금세기 최고의 스케일! 최고의 스펙타클! 경이와 감동의 3시간!”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주연 배우들의 모습과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컬러 사진을 인쇄하였고, 가운데에는 매우 크고 강렬한 붉은 색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인쇄하였다. 2면과 3면은 흑백으로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사진들과 제작진 및 출연진, 그리고 간략한 해설을 덧붙였는데, 주로 영화 제작의 규모와 다양한 로케이션 촬영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이다. 1950년대의 전단에 비해 내용이 매우 소략하고 간결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195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대대적으로 만들어졌던 성경을 기반으로 한 대작 영화들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이탈리아의 거물 영화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Dino de Laurentis)의 투자로 미국의 20세기 폭스 영화사가 제작을 맡아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약 3년 간에 걸쳐 촬영되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제 1장부터 22장, 즉 천지창조 및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자 했던 이야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감독 존 휴스턴이 직접 배우로 출연한 노아의 방주 장면은 총 5개의 초대형 방주 모형을 제작하여 베를린 동물원에서 공수해온 동물 300여 마리를 동원해 촬영하여 당시 제작비로 약 3백만 달러가 소요되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단일 장면의 제작비로는 영화 역사상 최대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1966년 9월 28일에 개봉해 1966년 미국 흥행 수익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대적인 흥행성공을 거두었으나 2천 7백만 달러에 육박하는 막대한 제작비 때문에 오히려 150만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한국에서는 1969년 8월 20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하여 그 해 9월 15일까지 상영되었다. 당시의 신문 광고에서는 “인류 최초의 모험! 사랑! 살인! 현대화된 휴먼 스펙타클!”, “성경은 교인만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달을 정복하였으나 하나님은 창세하시도다” 등등 다양한 홍보 문구를 사용하여 관객을 동원하고자 한 것이 이채롭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61~ · 중앙극장 · 미상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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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프리드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긴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에는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과 주요 장면들을 담은 사진과 일러스트를, 하단부에 붉은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크게 배치하였다. 전단의 오른쪽 측면으로 “게르만 민족이 자랑하는 대서사시에 나오는 지그프리트를 영화화한 초스펙타클 거작!”이라는 홍보문구가 노란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뒷면은 파란색 단색조로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영화해설, 영화 줄거리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전단지 하단에 “다음프로 부영”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1976년 말 부산 부영극장에서 재개봉되었을 당시 사용된 전단으로 추정된다. 영화노트 독일어 중세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를 토대로 제작된 이 영화는 1924년에 제작된 프리츠 랑 감독의 작품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된 작품이다. 본래는 1966년 제1부 <지그프리트>가, 1967년에 제2부 <크림힐트의 분노(Kriemhilds Rache)>가 1년의 격차를 두고 서로 다른 영화로 개봉하였으나, 이후 외국에 수출되는 과정에서 각 나라별로 다양한 판본으로 재편집되어 배급되었다. 제작 국가인 서독과 프랑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어느 정도 호응을 거두었으나, 그 밖의 나라에서는 크게 호응을 받지 않았고, 특히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증거로 지그프리트 신화가 차용되었던 탓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는 보이콧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76년 3월 서울 피카디리극장에서 처음으로 개봉하였다. 이 전단에 남아있는 상영시간 기록이나 당시의 신문 기사로 추정하건대 국내에 들어온 판본은 이탈리아에서 1968년에 개봉했을 당시 제작된 1-2편의 합본을 다시 미국 배급용으로 영어로 더빙한 판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61~ · 기타 · 기타 · 합작(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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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밤의 熱氣Flyers
전단지 구성 “새로운 디스코의 매력을 창조”하며 1978년도 세계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중앙극장 개봉 전단이다. 모두 6면으로 구성된 전단지는 “토요일 밤 너를 초대한다. 그리고 내 차의 뒷좌석을 예약해놓겠다.”는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존 트라블타의 스타성과 세계적인 ‘피버(Fever) 현상’을 강조하는 홍보 전략을 보여준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영화 그 자체의 흥행으로 그치지 않고, 음악과 댄스와 패션의 유행을 바꾸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존 트라블타가 입은 드레스셔츠와 판탈롱, 그리고 광택 낸 플랫폼슈즈가 유행하고, 이러한 복장으로 춤을 추는 디스코마니아들이 생겼으며, 영화에 삽입된 비지스(Bee Gees)의 음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단지는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를 변화시킨 이 영화가 바로 “현대 영라이프의 루츠”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젊은 관객들도 곧 동시대의 유행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디스코 DISCO의 王子 죤트라블타와 같이 춤을”이라는 제목으로 디스코 동작을 상세하게 소개한 페이지 구성 역시 한국에서의 ‘피버 현상’을 위한 참고 자료라고 할 만하다. 중앙극장의 전단은 “70년대의 청춘상을 부각시킨 ‘토요일 밤의 열기’ ”라는 문구를 그대로 싣고 있으나, 당시 신문광고에서는 “청춘상을 부각시킨”이라는 표현이 당국의 검열로 인해 삭제되었다. (이화진_영화사연구자)
1961~ · 중앙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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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탈출(1955)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에는 칼라로 주연배우들의 모습과 표제, 홍보문구 등을 인쇄하였으나 색분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인쇄 상태가 조잡하고 다소 판독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전단의 상단 왼쪽 부분에는 “민족의 피와 모험에 쌓인 작열의 로맨스!”라는 홍보 문구가 수록되어 있고, 전단의 하단 부분에는 상영예정작으로 오디 머피 주연의 영화 <황야의 추적(Ride Clear of Diablo)> (1954)을 광고하는 별도의 광고란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다. 전단의 뒷면은 초록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명단, 줄거리, 해설, 주연 배우들의 약전 등을 수록하였다.
1959 · 중앙극장 · 미상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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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피터의 여인(1955)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전지를 2등분하여 4면으로 구획을 나눈 전단이다. 편의상 1면과 4면을 앞면으로, 2면과 3면을 뒷면으로 구분하기로 한다. 먼저 앞면에는 주연 에스터 윌리엄스의 칼라 사진을 가운데 배치하고 영화의 표제와 주요 장면 등을 파란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였다. 뒷면은 갈색조 계열의 인쇄로 영화의 제작진, 출연진 명단, “이 영화의 간단한 소개”라 하여 영화의 줄거리와 해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뒷면 상단에는 “대망의 미국영화 극동 제1 개봉 단행!”, “MGM-수도영화사 특약기념 직수입 제 1회 영화”라는 홍보문구가 쓰여있어, 이 영화가 1954년 말 설립된 수도영화사가 MGM으로부터 처음 직수입해 들여온 영화임을 알 수 있다.
1955 · 수도극장 · 수도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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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전선(1955)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에 가로로 앞뒤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은 빨간색의 원색을 강렬하게 인쇄한 바탕에 흑백으로 영화의 표제, 주인공의 사진, 그리고 홍보문구 등을 인쇄하였다. 전단의 상단부에는 "빈고한 가정에서 태어나 격전 속에 살고 24개의 최고훈장을 받은 사나이! 미국 제일의 영웅 머피의 진실하고 영광에 가득 찬 인생기록!!”이라는 홍보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에는 파란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명단, 줄거리 및 해설, 그리고 실존인물이자 영화의 주연인 오디 머피의 약전을 수록하였다.
1958 · 국제극장 · 신흥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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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1943)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전지에 가로로 앞뒤면을 인쇄하였다. 본래는 가운데를 접어 총 4면으로 구성된 전단이나, 편의상 1면과 4면에 해당하는 쪽을 앞면, 2면과 3면에 해당하는 쪽을 뒷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앞면은 갈색과 적갈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표제와 출연진들의 사진, 스틸사진 등을 수록하였다. 1면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시산혈하(屍山血河)의 대 시가전! 충천한 폭연! 파사현정(破邪顯正) 보안관의 혈투!”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표지에 해당하는 4면에는 <탈파 주둔병(Ten Tall Men)> (1951)과 <정염 칼멘(The Loves of Carmen)> (1948)의 두 영화를 상영예정작으로 광고하고 있다. 뒷면인 2면과 3면에는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명단, 영화의 줄거리와 해설 등을 수록하였다.
1954 · 단성사 · 한국예술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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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안(1955)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8면으로 구성된 팸플릿형 전단이다. 먼저 앞표지인 1면에는 주연 버트 랭카스터의 모습을 가운데에 놓고, 위아래로 빨간색과 파란색 등의 단색을 골고루 배치하였다. 2면에는 출연진과 제작진 명단이, 3면과 4면에는 줄거리와 해설, 5면에는 주연 배우들의 사진과 약전이 수록되었다. 6면에는 특이하게도 이 영화의 베이스가 되는 “켄터키인의 기질”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있어 이채롭다. 7면에는 상영예정작으로 <사랑의 미로(Obsession)> (1954)의 광고가, 뒷표지인 8면에는 상영예정작 <아프리카 종단>의 광고가 실려있다. 각 면마다 자양강장제, 소화제 등 광고가 일제히 나오는 것은 당시 전단으로는 꽤나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1956 · 중앙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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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1952)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종이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편의상 1면과 4면에 해당하는 면을 앞면, 2면과 3면에 해당하는 면을 뒷면으로 부르기로 한다. 먼저 앞면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의 단색조들을 혼합해서 주연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화의 주요 장면 등을 인쇄하였다. 앞면의 곳곳에는 "영화사상 불멸의 최고연애 로맨스!",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킬리만자로의 눈>의 영화화!", "이것이야말로 영화예술사의 불후의 이름을 명기할 주옥의 러브 로맨스!" , "영화사상 누구나가 시도하지 못한 신경지!", "1953년도 최고의 거대작 <킬리만자로>, 이것이야말로 불란서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연애의 인간탐구이다!" 등등 다소 장황한 홍보문구들이 쓰여있다. 4면에 해당하는 앞면 오른쪽 하단에는 실제 킬리만자로 산의 위치와 지형에 대한 소개를 싣고 있다. 2면과 3면은 파란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여,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명단, 줄거리, 해설 등을 수록하였다.
1955 · 수도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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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집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인쇄한 전단이다. 앞면은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인 에바 가드너가 검은색 레이스로 된 다소 도발적인 옷을 입고 있는 사진을 크게 배치하였다. 전단의 오른쪽 상단에는 에바 가드너의 “목소리”로 “이 옷은 제가 남해 고도에 표착했을 때 입었든 옷이야요. 스튜어트 그레인저와 데이빗 니븐 두 사람과....”라는 홍보 문구를 검은색으로 인쇄하여 넣었고, 전단의 왼쪽에는 다시 “고도에 표착한 한 부부와 노총각! 사랑에 굶주린 노총각의 배짱은”이라는 홍보 문구를 넣었다. 뒷면은 파란색 단색조로 영화의 줄거리, 해설, 출연진과 제작진, 그리고 주연 배우들의 약전을 수록하였다. 영화노트 프랑스 극작가 앙드레 루생(Andre Roussin)이 1932년에 발표했던 동명의 코미디 연극을 각색한 이 영화는 원작 희곡의 다분히 외설적이고 도발적인 내용들로 인해 오랫동안 영화화가 미루어 지다가 1955년부터 제작에 들어갔으며, 당시의 사전심의제도를 통과하기 위해 상당한 내용 수정이 이루어졌다. 본래 스튜어트 그레인저의 배역은 데이빗 니븐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제작 과정에서 계약 문제로 촬영과 제작이 두 차례 연기되는 과정에서 캐스팅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원작 희곡이 상연되었던 프랑스에서는 흥행에 참패했으며, 비평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1958년 8월 24일부터 명보극장에서 처음 개봉하여 9월 5일까지 당시로는 장기간 흥행하였다. 당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서는 각각 “분위기와 딕션의 맛이 살아있는 영화”, “극한상황의 희극화가 이색적이다”라는 평을 게재하며 상당히 호평하였으며, 1958년 9월 2일에는 HLKA 라디오 방송의 <라디오 스크린>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의 내용 일부가 라디오 방송으로 극장 생중계되기도 하였다. 이후 같은 해 12월 시네마코리아 극장, 이듬해 1959년 1월 서대문극장, 동양극장, 2월 성남극장, 3월 자유극장, 8월 세기극장, 9월 화신극장, 12월 동화극장 등에서 1년 넘게 장기 흥행하며 인기를 끌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명보극장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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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子와 舞嬉Flyers
전단지 구성 전단지 앞면은 뇌쇄적인 마릴린 몬로를 뒤에서 안고 있는 로렌스 올리비에 모습을 매우 큰 이미지로 강조하고 있다. 뒷면은 해설 및 줄거리, 그리고 두 주인공과 원작 및 각색자인 테렌스 래티건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이루어져있다. 영화노트 신데렐라 이야기로 시작한 이 영화는 예상과 다르게 결말에서 엘시가 귀족의 곁을 떠나는 것으로 종결된다. 영화는 신분과 격식을 중요시하는 대공전하와 발랄하고 자유로운 미국처녀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의 복잡한 정치상황을 그린다. 이에 더해 냉랭했던 남자 주인공으로 하여금 가문이나 정치문제를 넘어서 그의 아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게 하도록 애쓰는 여자 주인공을 노력을 곁들인다. 그러면서 둘의 애정은 깊어지지만 대공의 명성을 지켜주기 위해 여성은 거짓말로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영국의 저명한 극작가 테렌스 래티건의 희곡 'The Sleeping Prince'로, 마릴린 몬로가 각색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IMDb에서는 원작자가 각색을 맡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영국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와 그의 아내였던 비비안 리에 의해 연극으로 상연되기도 했었다. 영화화가 되면서 몬로가 영국으로 건너가 촬영을 했고 로렌스 올리비에와 마릴린 몬로는 연기에 대한 의견차이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정통 연극배우였던 로렌스 올리비에는 몬로의 연기가 미흡하다고 생각했고 빈번한 지각 등으로 마찰이 심했다고 전해진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평가는 호의적이었으나 흥행성적으로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은 이 영화 제작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8 · 명보극장 · 신흥영화 · 합작(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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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Flyers
전단지 구성 총 7쪽이나 되는 긴 분량으로 기본적인 감독 및 배우소개, 해설, 스토리뿐만 아니라, ‘레·미제라블에 대하여’, ‘영화화된 주작품’, ‘불(란서) 각지 절찬’ 등 특집란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란은 소설과 영화에 대한 소개 및 기존에 소설을 바탕으로 나온 영화 8편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싣고 있다. 이미지는 가장 한국에 잘 알려진 장 가방을 중심으로 영화의 주요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 및 전단지의 분량은 이 영화에 대한 당시의 기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영화노트 전단지에 소개된 것처럼 빅톨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수없이 영화화되었고, 최근까지도 뮤지컬로 영화화되어 한동안 사랑받았다. 1958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1959년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되었다. 추석부터 시작해서 10월까지는 흥행성수기에 해당되었는데 10월에 단성사와 중앙은 <레미제라블>을, 대한극장과 아카데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그리고 을지극장은 <보바리부인>을 개봉했다. 이에 한 신문기사는 추석에 이어 최대 흥행경주에 들어간 개봉극장들이 호화로운 프로를 대기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특히 <레미제라블> 개봉에 앞서 “문호작품들의 영화화 콩클”(동아일보 1959년 10월 21일)이라는 특집기사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한다. 이 글은 빈번하게 영화화되는 문호들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톱은 『레미제라블』이라고 안내해주었다. 이미 1955년에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레미제라블>이 개봉하였고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유명배우인 장 가방이 선전한 프랑스 영화인 1958년작 <레미제라블>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높았던 것 같다. 이 영화는 흥행성적이 기대만큼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장 가방이 연기한 장발잔은 꽤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1년 김승호 주연의 <쟌발쟌>이 상영되었는데 김승호는 장 가방 연기를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길성_영화사연구자)
1959 · 단성사/중앙극장 · 미상 · 합작(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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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反逆者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4면으로 구성된 팸플릿 형태의 전단이다. 1면부터 4면까지 모두 붉은색 단색조로 인쇄되었다. 먼저 1면에는 주연배우 앨런 래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가운데 배치하고 영화의 표제와 원제를 기재하였으며, 개봉관이었던 대한극장의 마크와 표기가 있다. 2면에는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해설, 줄거리가 수록되어 있다. 3면은 2면에서 이어진 줄거리 소개와 더불어 <스타 메모>라는 코너로 주연배우 앨런 래드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약전과 사진을 수록하였다. 2면과 3면 하단부에 걸쳐 이탈리아 페라니아(Ferrania) 사의 필름 및 인화지 광고 문구가 들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마지막 4면에는 아역배우 데이빗 래드의 약전과 더불어 대한극장의 좌석배치도와 이용안내가 수록되어 있다. 영화노트 1947년에 쓰여진 제임스 에드워드 그랜트(James Edward Grant)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1955년에 제작이 시작되었으나 제작비 문제와 판권 문제 등으로 제작이 지체되어 1958년에야 완성되어 개봉되었다. 흥행 성적은 그다지 신통하지 않았으나 비평가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했고, 특히 남주인공인 앨런 래드의 실제 아들인 데이빗 래드가 그의 아들 배역을 직접 맡은 것은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59년 12월 대한극장에서 개봉하여 그해 연말까지 장기 상영되었고, 이듬해인 1960년 1월 세기극장을 시작으로 그 해 6월까지 서대문극장, 초동극장, 우미관, 약초극장, 청계극장, 봉래극장 등에서 꾸준히 재상영을 거듭하였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대한극장 · 세기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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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Flyers
전단지 구성 영화를 설명하는 홍보문구는 없고 이미 한국관객에게 ‘세기적인 미녀’로 알려져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상반신이 전면 사진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소개보다는 대한극장에 대한 홍보가 더 비중 있게 담겨 있다. 한 페이지 분량으로 대한극장의 우수성을 알리고, 극장 내부에 대한 도면과 시설, 교통편 등의 극장 이용 방법에 관한 상세한 정보, 그리고 좌석번호 등을 알리는 안내문을 곁들이고 있다. 또한 전단지 하단에 카메라 부품 관련 광고( “촬영용·카메라용 필림 및 인화지는 세계 제일의 Ferrania 제품을 사용하십시오! 한국총대리점 9125~9”)가 실려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영화노트 “물욕과 애욕으로 인한 갈등을 통해서 인간성을 추구한 가정극”으로 소개되었다. 원작은 1955년 3월 2일부터 뉴욕 모로스코 극장에서 다음해 10월 17일까지 85주간 69회 공연한 테네시 윌리엄스의 동명 연극이다. 연극 자체가 장기 흥행했으며 뉴욕비평가상, 퓰리처상을 위시하여 다수의 상을 획득한 연극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주연을 맡은 폴 뉴만이 58년도 칸영화제에서 주연남우상을 수상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음을 강조하여 이 영화가 사랑영화이면서도 작품성 있는 명작임을 인식시키는 홍보 전략을 썼다. 영화가 개봉되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극단에서도 이해랑 연출로 동명의 번역극을 국립극장에 올렸다. 서울의 대한극장과 부산의 국제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되었다. 개봉일인 1959년 12월 31일에 앞서, 30일 밤 7시에 1회에 한해 송년 시사회를 개최하여 신정특별 프로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9 · 대한극장 · 미상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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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나산 : 갈매기의 꿈Flyers
전단지 구성 포스터 형식으로 위아래가 긴 종이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갈매기 조너선을 형상화한 일러스트와 함께 영어 원제 및 표제 등을 다채롭게 인쇄하였다. 전단의 제일 위에는 “마침내 이 땅에 신비로운 사랑과 자유의 사자 조너선(갈매기의 꿈)이 온다! 닐 다이아몬드의 "Be"와 함께 꿈길처럼 펼쳐지는 영상시!”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은 초록색 단색조로 영화의 줄거리와 원작 소설에 대한 소개 등을 담은 짧은 홍보성 글이 수록되어 있고, 최하단에는 "당신이 그저 먹고 마시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생각한다면 구태여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라는 홍보 문구가 담겨있다. 영화노트 비행기 조종사 출신의 미국 소설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가 1970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갈매기 조너선 리빙스턴(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원작으로 한 영화. 비평가들에게는 최악의 졸작으로 혹평을 받았으나, 당대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관객 동원에 크게 성공하였다. 한국에서는 제작된 지 7년만인 1980년에 서울 허리우드극장에서 처음 상영되었으며, 이후 비디오(VHS)와 TV 방송 등을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61~ · 기타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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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Flyers
전단지 구성 카를로 폰티가 제작하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해바라기>(1970)는 이태리 출신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소피아 로렌의 대표작이지만, 한국에서는 1982년에야 개봉되었다. <해바라기>를 배급한 동아수출공사는 영화의 한국 개봉 지연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며, 그동안 금기되었던 ‘소련’의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각한다. 1970년대 초반 처음 수입이 교섭되던 때에 개봉되었다면, 이태리 영화계의 거장들의 참여나 소피아 로렌의 매력이 훨씬 강조되었겠지만, 영화를 개봉하는 1982년 시점의 한국 관객들에게는 대부분의 로케이션 촬영이 소련에서 진행되었고 소련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이 더 흥미로우리라 기대되었던 듯하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화 중 소련이 처음 공개!”, “소련 미모의 톱스타 ‘류드밀라 사베리야바’의 명연기!”, “소련의 우크라이나 대설원, 돈강 유역, 레닌그라드의 크레믈린 궁전, 끝없는 해바라기 밭에서 90% 이상 촬영! 나머지 10%를 이태리의 나폴리, 밀라노 등지에서 촬영!” 등 영화의 홍보 문안은 확실히 ‘소련’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대신, 영화의 해설에서 제작진과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 등 여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화노트 1982년 한국 개봉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영화 <해바라기>는 1974년 수입 교섭 후 벽에 부딪혔다가 8년 만에 공개되었다. (경향신문, 1982.10.15.) 일본에서도 1970년에 개봉되었고, AFKN 채널에서도 이미 방영된 바 있었으니 영화의 개요가 어느 정도 알려진 채로 유독 극장 개봉이 오래 지체된 경우다. 이태리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소피아 로렌의 대표작이자 ‘현대판 <전쟁과 평화>’라고 불렸던 <해바라기>의 한국 개봉이 이처럼 늦어진 것은 냉전과 남한의 유신 체제의 복합적 산물로 추정된다. 영화 전단에서 강조하듯이, <해바라기>의 주요 장면이 소련에서 촬영되었고, 마샤 역을 연기한 류드밀라 사벨레바가 소련 배우라는 것, 그리고 이태리 영화이지만 소련의 모스필름도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도 영화의 공개가 늦어진 원인으로 보인다. 198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소련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가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소련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태리영화 <해바라기>가 개봉될 수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10년 동안 기다렸든 영화, 전세계를 감동시킨 순애(純愛) 명편!”(동아일보, 1982.11.08.)이라는 광고문구와 함께 단성사에서 개봉된 <해바라기>는 하루에 6회 상영으로 개봉 2주 만에 10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멀티플렉스 이전에 단관 상영으로 하루 평균 5천 7백에서 8백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은 놀라운 기록이다. 우크라이나 지방의 초원과 설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 그리고 레닌그라드와 크레믈린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스펙타클과 금지되었던 명화를 보고자 하는 갈망이 영화의 흥행에 작용했을 것이다. (이화진_영화사연구자)
1961~ · 단성사 · 기타 · 합작(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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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Flyers
전단지 구성 8면으로 구성된 전단지 1면은 이 영화의 주연배우인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과 함께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2면에는 영화 포스터, 3면에는 영화해설, 4면부터 3페이지 걸쳐 줄거리가 적혀 있다. 마지막 두 페이지에는 감독 앤드류 마튼, 주연배우 그레이스 켈리, 폴 더글러스 스튜어트 그레인저, 존 에릭슨에 대한 사진과 소개가 있다. 당시의 다른 전단들과는 달리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한 카피가 없다. (김승경_영화사연구자)
1956 · 단성사 · 미상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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罪와 罰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향의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은 빨간색과 노란색을 주로 한 단색조 배경에 사진과 일러스트 등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앞면의 중앙부에서 약간 우측으로 치우친 부분에는 “죄의 공포에 몸부림치는 살인자의 고뇌! 청순한 사랑과 현대에 사는 불멸의 인간상을 그린 향기높은 감동!”이라는 홍보 문구가, 오른쪽 끝부분에는 "불란서 영화계 최고의 스태프와 캐스트를 동원하여 영화화된 사상 최대의 명화!"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앞면의 제일 왼쪽에는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미국 영화 <론리 맨(The Lonely Man)>(1957)의 상영예정 광고가 수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적갈색 계열의 단색조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명단, 해설, 줄거리, 배우 약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영화노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1909년에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영화화된 이래 지금까지 최소 25편의 직접적인 영화 각색판과 10여편의 개작 영화가 제작된 바 있다. 이 가운데 이 영화는 1923년 독일에서 제작된 <라스콜리니코프>, 1935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제작된 두 편의 각색판과 1969년 소련에서 제작된 영화와 함께 완성도를 갖춘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현대로 무대를 옮겨 각색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의 평론가들은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각색의 전반적인 내용에 호의적으로 반응하였으나,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한국에서는 1957년 11월 14일 단성사에서 처음 개봉하였으나 겨우 5일만에 막을 내렸다. 이것은 이 영화가 문예영화로 홍보되어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듬해인 1958년 3월 성남극장과 평화극장에서 동시에 재개봉된 뒤 4월에 경남극장, 5월에 동화극장에서 짧게 재상영된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상영기록을 찾을 수 없어 국내에서도 관객 동원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7 · 단성사 · 한국문화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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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의 叛Flyers
전단지 구성 전단지가 흑백으로만 인쇄되어 있다. 제작 에피소드로 해군의 전면적 협조, 획기적인 대 로케이션 등이 언급되었는데, 그 중에서 케인호는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미 군함 ‘도일호’와 ‘톰슨호’ 두 척의 배를 이용하여 촬영했다는 정보도 담고 있다. 또한, 원작에 대해서 “미국인이 제2차 대전 후 저술한 최대의 소설”(뉴욕 타임즈), “미국독서계를 석권한 나머지 ‘케인에 질렸다’라는 유행어마저 나온 원작의 위력” 등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박선영_영화사연구자)
1954 · 수도극장 · 한국예술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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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케이의 스파이 騷動Flyers
전단지 구성 전체 2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단이다. 앞면인 1면은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위아래에 걸쳐 크게 배치하였고 오른쪽으로는 표제를 배치하였다. 전단의 상단에는 “폭소 또 폭소! 대니 케이 희극 중 최대의 걸작! 전미국 각지 격찬의 선풍!”이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인 2면은 갈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여 제작진, 출연진, 영화 해설, 줄거리, 그리고 주연 배우 두 사람의 약전 (“스타 메모”) 등을 게재하였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코미디언이자 가수였던 대니 케이가 출연한 장편영화 중 후기 작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케이가 본격적으로 TV로 진출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기 직전에 제작된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1954년 2월 개봉하였으나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1957년 11월 6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뒤 12월 평화극장, 1958년 1월 성남극장, 2월 명동극장, 자유극장, 문화극장, 3월 동영극장, 4월 화신극장 등에서 상영되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1958년 9월 개봉한 양석천, 조미령 주연의 한국 영화 <사람 팔자 알 수 없다>가 부분적으로 이 영화를 각색, 번안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1950년대에 수입된 외국영화가 한국영화 제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7 · 단성사 · 불이무역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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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8241의 여인Flyers
전단지 구성 두 페이지로 구성된 전단지로 메인페이지에는 영화제목과 세 주연배우의 영화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뒷면에는 ‘술과 지향(립스틱 향기)의 환락가에 핀 악의 꽃! 세계 암흑가의 비밀을 폭로하는 국제경찰의 전모!’라는 카피를 통해 첩보액션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노트 <삼손과 데릴라 Samson And Delilah>(1949)의 빅터 머추어와 당시 관능적인 매력으로 가장 주목받던 신인 아니타 에크베르그를 내세운 이 영화는 영국,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현지 로케이션으로, 세트장면은 영국 런던의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촬영되었다. 1957년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배급사인 콜롬비아 영화사는 이 영화를 <Pickup Ally>라는 제목으로 변경하여 자사의 또 다른 첩보느와르영화인 <The Brothers Rico>와 함께 2편 동시 상영을 하였다. 007시리즈가 등장하기 5년 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아니타 에크베르그가 연기한 지나 브로거는 007의 본드걸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다. 국제경찰들이 서로 연계하여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범죄 수사를 한다는 소재 자체는 당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유럽 각지의 현지 로케이션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이에 전단지에는 당시 한국 관객들에게 전혀 정보가 없었던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대해 이례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제범죄를 국제적 협력하에 해결한 목적하에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국제형사경찰위원회의 명칭으로 설립을 본 것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이다. 2차 대전 기간 중을 제외하고 매년 1회 총회를 개최하였고, 회원국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하여 58개국이다. 56년도 총회에는 특히 약품류의 밀수 출입, 금괴의 불법수송, 밀입국 외인 피의자 인도 등이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김승경_영화사연구자)
1958 · 명보극장 · 한국예술 · 합작(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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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生涯의 最高의 해Flyers
전단지 구성 “THE UNFORGETTABLE STORY OF SOLDIERS AND SWEETHERTS!”라는 영문 홍보 문구를 번역 없이 그대로 실었다. 작품상을 비롯하여 아카데미상 9개 부문 수상작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외의 수상 내역에 대한 설명을 넣었다. 아카데미상의 유래에 관한 긴 글이 덧붙여진 것도 눈에 띈다. 다른 전단지들에 비해 스토리를 비중있게 실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또한 감독인 윌리엄 와일러에 대한 상세한 글을 덧붙여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드는 주역으로 이 노장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영화노트 1958년도에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전후 귀환병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영화이다. 1950년대 후반 한국에서 윌리엄 와일러는 꽤나 인지도 있는 감독이었다. 그는 이미 <로마의 휴일>(1953)과 <필사의 도망자>(1955), <우정 있는 설복>(1956) 등의 작품의 개봉으로 한국의 관객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특히 이 영화야말로 가장 격조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차분히 공감하게 만드는 그 특유의 스타일을 “순화된 연출 스타일”(경향신문, 58.10.04)이라 말하며 당대 논객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 작품성을 증명하듯이 1946년도에 작품상을 포함해 주연상, 감독상 등 9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수작이라는 점이 홍보의 포인트로 사용되었다. 이 영화가 한국에 수입된 시기는 작품이 제작된 때로부터 12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지 오래되지 않은 때여서 오히려 더 공감할 여지가 많았다. 인간관계의 붕괴만이 아니라 사회적 적응의 어려움이 정면으로 다뤄지고, 전후에 귀환병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심리적 고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정면으로 다루는 전후 사회의 문제는 전후의 한국이 대면하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에 따른 호평이 이어졌으며, 1959년에는 산업경제신문사가 제정한 ‘한국영화상’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외화극영화부문상과, 문교부가 선정한 우수외국영화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영숙_영화사연구자)
1958 · 단성사 · 기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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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騎兵聯隊 : 제7기병대Flyers
전단지 구성 장방향의 긴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은 칼라로 주연 배우들의 사진을 가운데에 크게 배치하였고, 표제와 기타 내용을 다양한 색깔로 강렬하게 인쇄하였다. 전단의 중앙부 오른쪽에는 "피살된 애인의 원수를 찾아 8년간이나 서부의 거리를 헤멘 정열의 사나이!"라는 홍보문구가, 왼쪽에는 "스릴과 모험이 넘치는 대액션드라마!"라는 홍보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파란색 단색조로 인쇄된 뒷면에는 영화의 출연진, 제작진, 해설, 줄거리, 주연배우 약전 등을 기재하였다. 특이한 점은 전단의 중앙부에 걸쳐 “아프레의 인디언들에게 전투훈련”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 촬영 당시의 소도구와 분장, 그리고 전투 씬 촬영을 위한 훈련 및 준비과정에 대해 소개한 것과, “한국전선에 전해진 제7기병연대의 전통”이라는 코너를 두어 실제 미 육군의 제7기병연대의 역사를 훑고 다시 이 부대가 한국전쟁 당시 활약했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노트 이 영화는 1950년대에 주로 제작된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인디언과 미국인들 간의 충돌을 다룬 서부극 영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B급 배우들을 출연시켜 겨우 25일 동안의 촬영을 통해 급조된 저예산 영화였으나 평단과 관객 동원에서 의외의 성적을 발휘하였다. 한국에서는 1958년 10월 중앙극장에서 처음 개봉하였으나 단 4일 간의 단기상영에 그쳤고, 이후 이듬해 1959년 1월 씨네마코리아극장, 3월 학림극장, 5월 동화극장과 초동극장에서 각각 1-2일 내외의 단기 재상영에 그쳐 흥행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석지훈_영화사연구자)
1958 · 중앙극장 · 고려영화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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