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컬렉션명과 설명은 자료원이 제공한 한국어 원문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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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보호책으로서의 스크린쿼터제의 중요성 및 위반사례를 통한 제도 개선책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94년 전국극장연합회와 서울시극장협회가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영화법 제26조 등에 대한 위헌심판청구'에 대한 스크린쿼터감시단의 견해 및 헌법재판소 판결이 간략히 정리돼 있다. 별첨자료로 1993년부터 1996년 7월까지 '스크린쿼터' 관련한 주요 일지 역시 정리돼 있다.
2기(김영삼 정부) · 스크린쿼터감시단(문화연대) · 온라인 열람
BKR006281_01
3기(김대중 정부) · 기타
BKM002624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1998년 12월 7일 발간한 자료집으로, 12월 1일부터 5일까지의 비대위 활동 일지, 국내외 각계 지지 성명서, 관련 언론 기사들이 정리돼 있다. 1998년 12월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비대위의 활동이 집약된 기간으로, 이는 같은 해 11월, 한미투자협정 3차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일과 이에 대해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제시한 사실이 발단으로 작용했다. 비대위는 12월 1일 오전 11시, 서울 남산빌딩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날 하루 동안 한국영화 제작 전면 중단을 선언했으며,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본 자료집에는 12월 1일과 4일의 내외신 기자회견문과 성명서, 미 대사관 항의문 등의 전문이 수록돼 있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BKC000518_01
1999년 2월 9일,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영화산업정책연구회 심포지엄, "스크린쿼터와 한국영상산업의 발전방향" 자료집
3기(김대중 정부) · 기타
BKR006113_01
3기(김대중 정부) · 기타
BKM002994
3기(김대중 정부) · 기타
BKM004527
3기(김대중 정부) · 기타
BKM004617
3기(김대중 정부) · 영화진흥위원회
BKM003143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2001년 발간한 2000년도 스크린쿼터, 방송쿼터 활동결산 보고서. 전국 극장의 스크린쿼터 이행 실적 조사 및 위반 사례를 비롯해 방송사별 한국영화/애니메이션 편성 비율 등이 자세히 정리돼 있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감시단(문화연대) · 온라인 열람
BKM002215
4기(노무현 정부 이후) · 영화진흥위원회
BKR00002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1_01
부산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앞의 UIP 직배 반대 시위가 기록된 일련의 사진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같은 시위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시위 참여자가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2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극장 앞 바닥에 붙은 대자보를 읽고 있는 사람들 뒤로 시위 참가자들이 "동보극장·푸른극장은 각성하라", "경제침략 문화침략 UIP를 몰아내자"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본 컬렉션의 또 다른 사진(관리번호 DST751785_01)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 상영을 반대하는 부산 시위는 동보극장 외에 푸른극장 앞에서도 전개되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3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극장 앞 바닥에 붙은 대자보를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4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고 있는 부산 동보극장 전경. 개봉 첫날인 1989년 2월 4일 부산의 영화인들이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영화 상영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6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민족영화 가로막는 반민주악법 철폐", "동보극장·푸른극장은 각성하라", "애국시민 다려와서 직배 폐지 동참하자", "애국시민 단결하여 민족영화 꽃피우자", "당신이 본 '007' 1500원 미국으로" 등의 피켓 구호가 눈에 띈다. 본 컬렉션의 또 다른 사진(관리번호 DST751785_01)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 상영을 반대하는 부산 시위는 동보극장 외에 푸른극장 앞에서도 전개되었다.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7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8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79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0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26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27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28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29_01
4기(노무현 정부 이후) · 기타
BKM009435_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