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목록 (공공데이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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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노무현 정부 이후) · 기타
BKM009937_01
문화관광부의 1997년까지의 영화 정책 관련 자료로, 한국영화 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현황, 영화관람 현황을 비롯해 한국영화진흥시책 관련 자료, 영화관계법령, 영화단체 및 업체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외국직배사의 1988년~97년 연도별 직배 현황 및 1993년~97년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조정 현황, 이행 현황과 스크린쿼터 제도 관련 영화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기(김대중 정부)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BKR006098_01
문화관광부의 1998년까지의 영화 정책 관련 자료로, 한국영화 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현황, 영화관람 현황을 비롯해 한국영화진흥시책 관련 자료, 영화관계법령, 영화단체 및 업체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외국직배사의 1988년~98년 연도별 직배 현황 및 1993년~98년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조정 현황, 이행 현황과 스크린쿼터 제도 관련 영화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기(김대중 정부)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BKM004827
문화관광부의 1999년까지의 영화 정책 관련 자료로, 한국영화 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현황, 영화관람 현황을 비롯해 한국영화진흥시책 관련 자료, 영화관계법령, 영화단체 및 업체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외국직배사의 1988년~99년 연도별 직배 현황 및 1993년~99년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조정 현황, 이행 현황과 스크린쿼터 제도 관련 영화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기(김대중 정부)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BKM004829
문화관광부의 2000년까지의 영화 정책 관련 자료로, 한국영화 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현황, 영화관람 현황을 비롯해 한국영화진흥시책 관련 자료, 영화관계법령, 영화단체 및 업체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외국직배사의 1988년~2000년 연도별 직배 현황 및 1994년~2000년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조정 현황, 이행 현황과 스크린쿼터 제도 관련 영화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기(김대중 정부)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BKM004831
문화관광부의 2001년까지의 영화 정책 관련 자료로, 한국영화 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현황, 영화관람 현황을 비롯해 한국영화진흥시책 관련 자료, 영화관계법령, 영화단체 및 업체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외국직배사의 1988년~2001년 연도별 직배 현황 및 1995년~2001년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조정 현황, 이행 현황과 스크린쿼터 제도 관련 영화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기(김대중 정부)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BKM004832
문화관광부의 2002년까지의 영화 정책 관련 자료로, 한국영화 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현황, 영화관람 현황을 비롯해 한국영화진흥시책 관련 자료, 영화관계법령, 영화단체 및 업체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외국직배사의 1988년~2002년 연도별 직배 현황 및 1996년~2002년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조정 현황, 이행 현황과 스크린쿼터 제도 관련 영화 법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2003년도판에는 한미투자협정 관련, 그간의 추진 경과 및 문화관광부의 기본 입장, 스크린쿼터 축소·폐지 시 예상되는 문제점 및 경제부처 입장 등의 검토 내용이 수록돼 있다. 특히 2003년은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정책위원장을 맡은 바 있는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 해로, 이창동 장관은 임명 초기부터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 6월경, 이 장관은 스크린쿼터 축소 검토를 시사하며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4기(노무현 정부 이후) · 문화부 · 온라인 열람
BKM004833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민족경제 말살하는 수입개방 철회하라", "폭력·외설·섹스영화는 모두 미국으로!!!", "당신이 본 '007' 1500원 미국으로", "민족혼 팔아먹는 동보극장 각성하라" 등의 피켓 구호가 눈에 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1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2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보고싶어요!", "애국시민 단결하여 민족영화 꽃피우자", "경제침략 문화침략 UIP를 몰아내자" 등의 피켓 구호가 눈에 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3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4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푸른극장 앞에서 직배영화 상영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5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6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7_01
국내 두 번째 UIP 직배영화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을 상영하는 부산 동보극장 앞에서 직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동보극장·푸른극장은 각성하라", "경제침략 문화침략 UIP를 몰아내자", "민족영화 가로막는 민주악법 철폐하라" 등의 피켓 구호가 눈에 띈다. <더 리빙데이 라이트 007>은 1989년 2월 4일, 서울의 신영극장을 비롯해 부산의 동보극장과 푸른극장, 대구의 국제극장과 제일극장을 비롯해 인형극장(인천), 허리우드(대전), 라이카(대전), 아카데미(광주), 피카디리(전주), 강남극장(마산), 태화(마산), 하성(울산) 등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한겨레신문》 1989.01.27, 11면 광고 등 참조)
1기(제5~6공화국) · 기타 · 온라인 열람
DST751788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32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33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34_01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1998년 12월 정점에 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1999년 1월, 국회가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99년 6월, 한미투자협정 막바지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6월 11일, 비상긴급회의를 열고 영화인 단체 행동을 결의했으며, 이후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성당에서 삭발투쟁 및 단식투쟁, 가두행진 등을 벌였다. 6월 18일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한 범영화인 규탄대회"에는 영화인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광수, 장선우, 박종원 감독 및 이용관 교수, 차승재 대표 등 영화인 100여 명이 집단삭발식에 참여했다. ("근조 쉬리... 스크린쿼터 사수 삭발 시위, 《경향신문》, 1999.06.19., 19면; "90명 집단 삭발", 《한겨레신문》, 1999.06.19., 1면; "스크린쿼터 관련 일지", 《매일경제》, 1999.06.24., 33면 등 참조) 한편 임권택 감독은 이후 6월 24일,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삭발에 동참했다.
3기(김대중 정부) · 스크린쿼터사수(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 온라인 열람
DSZT000435_01